인터넷신문 원고료로 '우리식구들' 부채를 갚았다,

원고료내역을 보면서 모처럼 활기를 되찾아
모처럼 원고료가 왠만한 월급쟁이수준 가깝게 모아졌다.

현재까지 지급된 고료를 합하면 그만큼 되지만 수중에 들어오는 고료는 거의 없었다. 지급되자마자 곧바로 카드빚등 각종 세금으로 나가기 때문이었다. 물론 완전히 탕감한 것도 아니다.
동생은 연구원으로 재직당시 굴리기 시작한 자가용도 팔았으나 완전탕감에는 그 절반수준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었다.

필자는 <수원일보>외에도 몇 개의 인터넷신문사이트에 기사를 올리고 있어 명실상부한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있는 셈이다.

그러나 지금 하고있는일도 왠지 안정되는것인는 미지수라 생각한다.
몇 개월전 비교적 원고료가 짭짤했던 인터넷신문이 공중분해되었다는 관련 시민기자분의 답변을 받고는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

최근에는 스포츠신문의 조선일보로 불리던 투데이가 어음을 막지못해 도산했다는 기사를 보고 과연 이 일도 며칠을 갈까하는 절망적인 시각으로 세계를 보기도 했다.

무료신문이 원인이라고 하지만 얼마나 불황이 심각하면 무료신문이 나왔겠냐며 반격하는 사람도 있다. 무료신문제도는 IMF가 한창이던 98년부터 목격되었다고 한다. 92년말 대학을 자퇴하고 비정규직에서 활동하면서 1년을 넘기지못한 일이 대부분이었으니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언 13년의 세월이 흐른 셈이다.
고로 7월에는 여름성경학교기간이어서 인형극공연도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거의 매일있다시피했으나 금년은 7월공연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아버지도 금년에 퇴직하면서 어머니께서는 생계를 잇기위해 빌딩 청소부나 강남의 파출부일을 거론하셨는데 명문대출신에 월드모델경력까지 있는 사람이 그런일을 한다는 것이 쪽팔림 그 자체였고 자존심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었기에 보류했다.
그러나 그 속뜻은 어머니의 나이가 60을 넘겼기에 나이가 걸렸던 것.
원래 패션모델이었으나 당시만해도 무학의 소유물이라는 모델이 국내 최초의 명문대출신이라며 해외토픽에까지 보도되었던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그만큼 외국어실력 또한 능통했다고 한다.

동생은 최근 식사도 거른 채 고통스러워하고 있으나 가면 갈수록 빚만 쌓이고있는 형편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무리 급해도 절대 사채는 안된다며 신신당부하고 있으나 듯는둥 마는둥 하고있다.
하지만 요즘들어 대출받기도 불가능한 상황인지라 사채를 빌리는 신불자가 늘고있는 현실이라고 한다.
동생은 연구원시절 복제배아 실험에도 참여했는데 실험에 성공하자 가족들과 기독교계에서는 반발이 일어난 것이었다.

더구나 필자의 가족들은 독실한 종교인이어서 신의 뜻에 위배되는 행위라며 복제인간의 실험을 재고해 달라며 만류했다.
결국 동생은 복제배아 실험을 전면 백지화하고 더 가치있는 연구와 실험을위해 대출을받아 무리하게 연구비를 투자한 것이 화근이었다.
의약분업으로 인한 의사들의 파업사태를 보면서 의료계 현실에 환멸을 느껴 사직한 이후 본전을 건지지 못한것도 원인이었다.

따라서 은행빚을 탕감하기위해 주식에까지 손을댔으나 오히려 빚만 더욱 가중되었을 뿐이다.

노벨상을 꿈꾸며 오직 한 분야에만 몰두해오던 동생이 이토록 쪼들리는 모습을 보았을때는 인생에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4대째 이어온 모태신앙인 만큼 지금은 잠시 고난주간이라 생각하고 미국의 링컨대통령처럼 포용,순수,온유,겸손,인내심으로 더 나은 내일을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