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존헌의 “조선책략”과 중립국론

[열린세상] 이달순(수원대 명예교수·hello sports.net 발행인)

1876년 강화도조약이 성립되고 김기수 일행이 수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뒤 조선 정부는 일본의 현저한 발전상과 새로운 세계정세에 대한 보다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때 동양정국에 있어 일대 공포와 불안을 느끼게 한 것은 러시아세력의 남하였는데 여기에 제일 불안을 느낀 나라는 일본과 중국이었다.

1880년 일본수신사로 일본에 간 김홍집은 동양3국이 힘을 합쳐 외국세력의 침략을 막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권고받고 귀국 시에 주일 중국(청국)참찬관 황존헌 자신이 지은 “조선책략”이라는 책자를 얻어 가지고 돌아왔다. 그것은 조선의 당면한 외교정책론과 부국강병책을 피력한 것이었다. 이제 그 책의 내용을 조금 들여다보자.

“조선이라는 땅덩어리는 실로 아시아의 요충을 차지하고 있어 형세가 반드시 다투게 마련이며 조선이 위태로우면 중동의 형세도 날로 위급해질 것이다. 따라서 러시아가 강토를 공략하려 할진대 반드시 조선으로부터 시작할 것이다. 아! 러시아가 이리떼 같은 진나라처럼 정벌에 힘써 경영해 온 지 3백여년 그 첫 대상은 유럽이었고 다음에는 중아시아였고 오늘날에 와서는 다시 아시아로 옮겨져 마침 조선이 그 피해를 입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조선의 책략은 러시아를 막는 일보다 더 급한 것이 없을 것이다. 러시아를 막는 책략은 어떠한가? 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맺고 미국과 이어짐으로써 자강을 도모할 따름이다. 미국이 남의 토지를 탐내지 않고 남의 인민을 탐내지 않음은 천하 만국이 함께 믿는 바이다. 그런데 도리어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제국과 연이어 맹약을 간청하고 있으니 이는 곧 서양에서 이른바 세력균형이라 하는 것이다.”

“세력균형”에 관해서 하여장은 김홍집과의 필담에서 상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근일 서양 각국에는 세력균형이라는 법칙이 있어서 만약 한나라가 강국과 인접하여 후환이 두려우면 다른 나라들과 연합하여 견제력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이전부터 내려온 부득이한 외교의 한 방법입니다.”

이에 대해 김홍집은 “‘균서’두 글자는 근래에 와서 비로소 공법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 나라에서는 옛 법도를 고수하며 외국을 대하기를 마치 홍수나 맹수같이 합니다. 근래 이교도를 그처럼 물리친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다만 선생님의 높은 가르침이 이와 같으니 마땅히 돌아가 조정에 보고하겠습니다.”

김홍집은 귀국하여 “조선책략”을 고종에게 바쳤고 고종은 이를 여러 대신에게 검토케 하였다. 그리하여 대신들은 정세의 변천에 따르는 외교정책의 전환은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 “조선책략”을 복사하여 전국의 유생에게 배포하게 하였다. 그것은 유생들의 식견을 넓혀서 그들의 전통적인 관념에서 벗어나도록 계몽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실제에는 도리어 유생들의 전적인 반발을 사게 되었다.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종을 비롯하여 새로운 세계정세에 대처하려는 정부는 개화의 방향으로 이끌어 갔다. 김홍집이 귀국한 다음 해인 1881년에는 “신사유람단”을 일본에 파견하였다. 그들은 체제 70여일 간에 일본의 각지를 다니면서 행정기관을 비롯하며 군사교육, 공업계 등등의 상황을 상세히 시찰하였다.

한편 청국 권고에 따라 김윤식을 영선사로 삼고 문·무자제의 총명한 자 100여명을 데리고 청국으로 가서 신식무기의 제조법과 조련법을 배우게 하였다. 이리하여 세계 변천에 따라가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표면화하게 되었다. 이 같은 정세에서 일본은 청국쪽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정한논”을 접어두고 조선왕조의 “독립주권”을 보호한다는 명분아래 청국과 더불어 조선을 공동보호하자든가 혹은 관계열강과의 공동보호안에 찬성한다는 정도였고 어쨌든 조선의 중립화론은 신흥일제의 일부정치인과 신문으로부터 발설되기 시작하였다.

이때 중국과 불란서양국이 당장 전쟁 중에 있었기에 조선왕국이 섣불리 청국만을 의뢰하고 청국을 지지한다면 전쟁에 휩쓸리기 쉬우니 우선 “국외중립”을 지키게 하자는 정략을 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국외 영세중립을 직접 들고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왕조의 조정중신들 가운데 이제 열강들의 조선에 대한 야욕을 벗어내기 위해 “영세중립국” 외교정책이 필요하다고 느낀 분들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