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거리에 나혜석이 없다

[김훈동 칼럼]

 

▲ 수원예총 회장

“나혜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곳을 왜 나혜석거리라고 했나요?” 얼마 전에 열린 나혜석학회에 참석한 이들 가운데에서 나온 물음이다. 이제껏 그런 의문표를 던진 이는 없었다.

당연히 나혜석 동상이 세워져 있고 조형물에 나혜석의 시가 새겨져 있기에 그곳을 ‘나혜석거리라 명명했겠지’하는 정도로 여겼다. 나혜석거리는 2000년에 수원 인계동 효원공원 옆에 조성됐다.

당시 도시개발로 빌딩이 들어서면서 수원이 낳은 최초의 여성 유화가 나혜석을 기리기 위한 나혜석거리를 만들자는 필요성이 제기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깊게 생각하지 않은 탓에 나혜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곳을 지명했다.

나혜석의 발자취는 나혜석 생가 터를 중심으로 화령전, 삼일여학교 터, 화홍문, 종로교회, 수원포교당, 못골시장으로 이어진다. 나혜석은 1896년 4월18일 수원군 수원면 신풍리(현재 팔달구 신풍동)에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나기정은 군수(시흥, 용인)를 지냈고 어머니 최시의는 남양 서여제면장의 딸이다.

이들 양가는 개화된 부모 덕택에 나혜석은 신식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화령전은 현재 호암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화령전 작약』을 그린 곳이다. 이 작품은 수원을 배경으로 그린 회화성이 다분한 그림이다.

삼일여학교 터는 1910년 나혜석이 제1회로 졸업한 학교 터다. 종로교회에서 시작된 이 학교는 군기동(현재 장안동)으로 이전했다. 1913년 삼일여학교는 현재 매향여중학교가 자리한 매향동에 새로운 교사를 신축하여 이전했다.

종로교회는 화성 성안의 보시동(현재 행궁동)에 교회를 세워 매일학교를 개설했다. 삼일여학교와 삼일남학교를 세워 삼일여학교는 장안동으로, 나중에 삼일남학교는 매향동에 독립된 교사가 마련했다. 종로교회는 수원의 최초의 교회다.

수원포교당은 1929년 9월 23~24일 이틀 동안 수원 남수리 불교포교당(현재 조계종 수원사) 회랑에서‘동아일보사 수원지국 주최, 중외일보사 수원지국 후원’으로 나혜석의 유럽여행 이후 귀국전시회가 열렸다. 수원에서 최초로 이루어진 서양화 전시회다.

특이한 것은 신문사가 주최하고 후원했다는 점이다. 유럽에서 직접 그린 그림과 서양의 유명한 그림의 복제품을 전시했다. 수원출신의 당대 여류명사로 일컬어지던 나혜석의 전시회였던 까닭에 성황을 이루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35년 나혜석은 수원군 태장면 지리(현재 팔달구 지동)에서 2년여 동안 낙향하여 글쓰기와 그림을 그렸다.

지금은 못골장터 3길로 불리는 전통시장으로 순대로 유명한 못골시장 안이다. 화홍문은 1916년 쯤 그의 시『냇물』을 착상한 곳이다. 화홍문루상(樓上)에서 수원천의 흐름을 통해 자신의 내면세계를 시로 적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졸졸 흐르는 져 내물/ 흐린 날은 푸르죽죽/ 맑은 날은 반짝반짝/ 캄캄한 밤 흑색갓치/ 달밤엔 백색갓치/ 비 오면 방울방울/ 눈오면 녹혀 주고/ 바람불면 문의지어/ 아침붓허 저녁까지/ 밤붓허 새벽까지/ 춥든지 더웁든지/ 실튼지 좃흔지/ 언제든지 쉬임업시/ 외롭게 흐르는 내물/ 내물! 내물 (이하 생략)

나혜석의 발자취를 답사하는 이들이 의아해 하는 ‘나혜석거리’를 없앨 수 없다면 ‘제2의 나혜석거리’라고 부르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아마도 주민이나 영업을 하는 상가에서는 그마저도 반대하리라 미루어 짐작이 간다.

화성행궁에서 팔달문에 이르는 거리가 ‘공방거리’로 이미 조성됐다. 행궁에서 나혜석 생가 터가 있는 행궁동사무소를 거쳐, 수원화성의 최고의 건축물인 공심돈이 있는 화서문까지를 ‘제1의 나혜석거리’로 명명하여 팔달문에서 화서문까지 역사의 거리, 테마가 있는 관광거리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

나혜석이 태어나고 수원에서 거주하였던 1935~1936년 즈음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화령전 작약』의 탄생지이기에 그렇다. 현재 나혜석거리가 조성된 지도 10여년이 지났지만, 음식점, 호프집, 모텔, 커피숍 등만 들어섰을 뿐 그 흔한 미술학원마저 없다.

골동품점, 갤러리, 문방구, 서점, 화방 등도 없다. 문화의 거리와는 다소 거리가 먼듯하다. 나혜석을 알리는 표지석과 나혜석동상, 나혜석 연보가 새겨진 조각물이 있을 뿐이다. 이제 바로 잡아야할 필요가 있다. 그 역시 나혜석 학회가 나서야할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