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과 지혜로운 사람

[열린세상] 이달순(수원대 명예교수·hello sports.net 발행인)

우리는 흔히 지식인이라면 무엇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C.브린톤교수는 “현존사회질서의 결함을 감지하고 이에 대하여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를 갖는 사람이 지식인이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K.만하임은 지식인을 기존질서에 대한 이의신청자라고 했고 J․P사르트르는 “학자는 연구를 상명으로 하고 지식인은 비판을 생명으로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W.리프만은 “지식인은 아이디어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냉철한 가치판단으로 정오의 구분을 행동화하여야 한다.”고했다. 심지어 브린톤교수는 “자기자신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이 세상에 대해서 만족하고 있는 따위의 지식인이라면 도저히 지식인이라고 할 수 없다” 고 하였다. A․J토인비교수도 “진정한 지식인은 험악한 운명을 지닌 존재, 권위체재에 대해 타협자채를 굴복으로 간주하고 양보를 패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라고 갈파하였다. 그리고 H.벨그손은 후진사회의 병원을 예리한 메스로 도려내고 전통사회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능률과 합리논에 입각한 새로운 사회의 전이를 위하여 국민적 정력을 집중시키는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지식인이란 비판하고 도전하는 반항형 지식인이 참다운 지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판적이고 반항하는 생각을 지니고도 이를 실천하지 못하고 고뇌하는 지식인들이 많다. 우리는 그들을 소극적 지식인 또는 창백한 지식인 그리고 하므렛형 지식인이라고 한다. B럿셀은 “이 세상의 근본적 문제거리는 어리석은 자들은 너무 독단적이고 머리 좋은 자들은 너무 앞뒤를 가린다는 데 있다”고 하였다. 어쨌거나 아부형 지식인이나 출세하는 세상만 되지 않아도 좋겠다.

원래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이다. 행복을 위해서는 지식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지혜도 함께 높여야 한다. 지식은 말하려 하지만 지혜는 들으려 한다. 지혜는 지식을 관리한다. 지혜는 단순한 지식보다 경험, 경륜, 도덕, 겸손, 헌신, 명료성 식별력과 관련이 있다. 겸손하지 않고는 지혜로울 수 없다. 소크라테스는 지혜는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통찰력이라고 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가르치는 스승들이라고 여기며 산다.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처럼 되기 위해 살지 않고 오직 하나밖에 없는 내가 되기 위해 산다.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듣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반응하기에 앞서 참고 기다린다. 나이 든 사람이 젊은 사람보다 항상 지혜롭게 느껴지는 것은 지혜란 자신이 살아온 삶의 경험을 통해 얻어지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이를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인도의 한 유명한 영적인 스승은 행복의 비결이 무엇인가는 질문에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이를 좋고 나쁘게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행복해 질 수 있다고 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오직 이 순간에 집중하며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분노하거나 저항하지 않으므로 행복과 평온을 누릴 수 있다. 제퍼슨은 화가 나면 말하기 전에 10을 세고 매우 화가 나면 100을 세라고 했다. 어리석은 사람은 용서하지도 않고 잊어버리지도 않으며 순진한 한 사람은 쉽게 용서하고 쉽게 잊어버리지만 현명한 사람은 용서는 하지만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잊어버리지 않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깊이 생각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내 마음을 현재 이 순간에 머물게 한다. 내 마음을 현재 이 순간에 머물게 하면 무슨 생각에서 든 자유롭기 때문에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 지혜로운 사람은 남으로부터 원하는 것이 있으면 이렇게 해달라고 말하기 이전에 자신이 그렇게 먼저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나는 아직도 모른다는 심정으로 다른 사람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지혜로운 사람은 남이 나를 칠 때 굽힐 줄 안다.

우리는 행복을 누리기 위해 지식인이 되는 것보다 지혜로운 사람으로 삶을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