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은 인문학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문학, 종교, 역사, 예술을 망라하는 인문학을 통해 우리들은 무엇을 느끼고 얻는 걸까. 결국은 그 속에 담겨진 한 구절이 아닐까. 한 구절에 녹여낸 생각이 우리 마음을 흔들고 울림을 준다. 그 글귀에 빨려 들어간다. 치열한 현실의 한복판에서 생각이 굳어지면 꿈도 희망도 사라진다. 이럴 때, 어떤 글귀는 삶의 단면을 보여 줄 수도 있다. 또한 우리들 삶에 대한 해답을 보는 듯 정갈한 글을 만날 수도 있다. 너무 강한 메시지는 시민들에게 거부감을 느끼게 할 우려가 있다. 그러다보면 아무래도 함축해 전달하는 시 구절이 많이 선택될 듯하다. 좋은 시는 간결하면서도 많은 내용을 압축해서 담고 있기에 그렇다. 글의 길이는 짧지만 시민들의 상상력으로 압축을 풀면 많은 내용을 담고 있어 좋다.
글판은 시민들이 눈여겨보게 해야 한다. 실은 시민이 많이 모이거나 지나가는 대로변 고층건물벽이 제격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시작이 중요하다. 글판을 보는 시민들이 ‘싱싱하다.’ ‘인상적이다.’ ‘새롭다’는 탄성을 늘 자아낼 수 있길 바란다.
수원시 홈페이지를 통해 많은 시민들이 공모에 참여케 하여 산뜻하고 정감어린 글귀가 최종 낙점되게 만들어가야 한다. 글귀를 살릴 디자인도 중요하다. 지나가던 시민이나 버스, 택시 승객이 한눈에 읽어낼 수 있도록 글자크기도 가급적 커야 한다. 불안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공허함과 외로움을 느끼는 시민들에게 힘이 나고 새로운 용기를 얻게 하는 글귀를 만나면 반갑고 좋다. 어느 때는 날카롭고 지혜로운 글귀도 담길 것이다. 맨봉상태로 멍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정신을 번쩍 깨워주기도 할 것이다. 안개 속에서도 길을 보여줄 지혜와 통찰의 힘이 될 것이다. ‘희망글판’을 읽을 때마다 도시의 삭막함 속에서 시간의 지혜, 세월의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글귀를 가다듬는 일은 심성을 가다듬는 일과 통한다. ‘희망글판’은 아름다운 언어의 성찬(盛饌)을 만끽하는 즐거움도 선사한다. 버거운 일상에 매몰되어 잃어버린 감정을 되찾을 수도 있다. 의기소침한 기분을 추스르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준다. 한껏 늘어지기 딱 좋은 순간에 글판의 글귀에 저자가 쏟았을 무수한 땀방울이 느껴져서 한 자 한 자 호흡하듯 들이키게 만들 것이다. 곱씹을수록 지당하고 지혜로운 글귀라는 생각도 들 것이다.
단순히 광화문글판의 모방이나 답습이 아니라, 사람이 반가운 휴먼시티-수원에만 존재하는 ‘희망글판’이 되도록 글귀 선정이나 글자 디자인도 남달라야 한다. 시민들이 글판을 통해 시각적으로 마음의 영토가 광대해지고 풍요로워질 수 있도록 지혜를 짜야 한다. 희망이 넘실대는 수원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청 담가에 세워진 ‘희망글판’은 결코 작은 내딛음이 아니다. 시민들에게 좋은 길동무가 되고 차고 맑은 샘물이 되어 줄 것이다. ‘가을 크다. 가을은 올 시간보다 가버린 시간이 더 크다.’ 그런 가을이 점점 농익어간다. 일상에 쫓겨 바쁘게 지나가다가도 문득 글판 구절이 떠올라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때도 있다. 한 구절의 의미와 힘을 실감케 한다.
앞으로 수원역 AK프라자 건물벽에도 수원시청 글귀와 똑같은 문안을 담은 글판이 세워질 것이라고 한다. 기업이미지에도 좋은 듯싶다. ‘수원희망글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시민들이 희망과 염원을 읊조릴 수 있는 도시명물의 글판으로 오뚝 서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