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님, 졸리면 집에 가서 주무시죠"

[현장포착] 국민대토론회에서 있었던 일

19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1층 소회의실.

한나라당, 민주노동당, 새천년민주당, 자민련 등 4개 야당이 공동으로 주관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예정된 시간을 10분 정도 넘겨서 막이 오른 이날 토론회의 명칭은 거창했다. 이름하여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국민대토론회'.

   
▲ 야 4당 대표와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 김진석 기자
국민대토론회는 제1부와 제2부와 제3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제1부의 주인공은 '국민'이 아닌 '정치인'이었다. 박근혜, 김혜경, 한화갑, 김학원 등 야당 대표는 물론이고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까지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거물 정치인들이 한꺼번에 등장한 때문인지 취재 열기는 뜨거웠다. 그 중에서도 박근혜 대표가 집중적으로 카메라 후래쉬 세례를 받았다.

각당 대표의 토론이 있었던 제3부가 시작되기 전 진행된 제2부는 '국민에게 듣는다'의 시간. 재래시장 상인, 중소기업 사장, 대기업 관계자, 노동자, 농민, 가정주부 등이 패널로 참석해 생생한 발언을 쏟아냈다. 그러나 '국민대토론회'에 정작 '국민'들이 등장했건만 정치인들은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고, 덩달아 취재 열기도 금방 시들었다.

   
▲ 19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장에서 야 4당이 주관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국민대토론회가 열렸다. ⓒ 김진석 기자
이날의 해프닝은 마지막 패널로 참가한 가정주부가 발언할 때 발생했다.

자신을 신용불량자라고 밝힌 주연지(37·대구 거주)씨는 현재 인터넷 홈쇼핑으로 살아가는데, 한 달 수입이 30∼40만원 정도일 때도 있을 정도로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주 씨는 본격적인 발언에 나서기 전 약간 흥분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은 요지의 '쓴소리'를 퍼붓기 시작했다.

"앞에 앉아 계신 분들이 졸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내가 여기 왜 왔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차비가 없어서 같이 올라온 사람이 내 차비를 내 주었어요. 그런데 우리 국민들의 소리를 듣겠다고 이 자리에 오신 국회의원들이 잠이나 자고 있다니 말이 됩니까? (국회의원들도 피곤하겠지만) 나도 평소에 일하느라 2∼3시간밖에 못 잡니다."

주씨가 그렇게 흥분한 데는 물론 이유가 있었다. 사실 몇 명의 국회의원은 토론회 중반 무렵부터 졸기 시작했는데, 주 씨가 마이크를 잡을 무렵에는 그 숫자가 꽤 늘어난 상태였다. 어느 의원은 이 기회에 아예 모자라는 잠을 보충하려고 작심했는지 깊이 잠든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패널석 맨 오른쪽에 앉아서 그 추태를 바라보던 주 씨가 울음 섞인 분노를 표출한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은근히 화가 난 기자는 카메라 앵글을 잠자는 의원들에게 맞추었다.

본능적으로 카메라에 예민한 직업의 소유자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들의 주인인 '국민'의 질타에 부끄러움을 느꼈던 것일까. 잠자던 국회의원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 졸고 있는 한나라당 국회의원 최연희 ⓒ 김진석 기자
그러나 국민의 목멘 소리에도, 사진기자의 카메라 초점 맞추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깊이 잠든 국회의원이 한 명 있었다. 최연희 의원(한나라당)이 바로 그 장본인이었다.

기자가 최 의원의 잠자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을 눈치챈 이계진 의원(한나라당) 등 주변의 동료 의원들이 열심히 눈치를 보내며 깨워 보지만 최 의원은 이내 다시 깊은 잠 속으로 빠졌다.

기자가 토론회장 뒤쪽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한 참석자는 볼멘 목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물론 피곤하면 정치인도 졸 수가 있어. 하지만 국민의 이야기를 듣겠다고 나온 국회의원이 국민의 울먹이는 소리에도 계속 잠자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동료 의원들이 그렇게 열심히 깨우는데도 말이야. 졸려면 집에 가서 아예 자리 펴고 자던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국민대토론회'는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글/사진= 김진석 여의도통신 사진기자 seok@suwonilb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