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4일]진주성싸움 때 날틀이 날아다녔습니다

[김영조의 우리문화 편지]
 
하늘을 날아다니는 백성의 희망

임진왜란의 3대 대첩 가운데 하나인 진주대첩에는 '날틀'이 활약했었다고 합니다. 날틀은 한자말로 비거(飛車)라고 하여 하늘을 나르는 차입니다.

일본 쪽 역사서인 ≪왜사기(倭史記)≫에 전라도 김제의 정평구라는 사람이 비거를 발명하여 진주성 전투에서 썼는데 왜군들이 큰 곤욕을 치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비거에 대한 국내 기록은 18세기 후반에 쓴 신경준의 문집 ≪여암전서(旅菴全書)≫에도 있습니다. ≪여암전서≫의 <책차제(策車制)>란 글을 보면, "임진왜란 때 영남 진주성이 왜군에게 포위되자, 정평구는 평소의 재간을 이용하여 만든 비거를 타고 포위당한 성 안에 날아 들어가, 30리 성 밖까지 친지를 태우고 피난시켰다고 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또 이규경의 백과사전 ≪오주연문장전산고≫에도 전주부인(全州府人) 김시양(金時讓)에게 들은 말을 기록해놓고 있지요.

내용을 보면 "충청도 노성(魯城) 지방에 사는 윤달규(尹達圭)라는 사람이 비거를 창안하여 이에 기록하여두었다. 이러한 비거는 날개를 떨치고 먼지를 내면서 하늘로 올라가 상하 사방을 여기저기 마음대로 거침없이 날아다니니 상쾌한 감은 비길 바 없다. …물에서 목욕하는 사람이 헤엄치는 것처럼 또한 자벌레나비처럼 굽혔다 폈다 하는 것처럼 하여 바람을 내면서 날개가 저절로 떠올라가니 잠깐 동안에 천 리를 날아다니는 기세를 발휘하여 십여 일의 시간을 단축하게 된다. 이것은 큰 붕새가 단숨에 삼천리를 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비거는 정확한 모양이나 어떤 쓰임새였는지 확실하게 나와 있지 않지요. 당시 비거는 포위된 진주성과 외부와의 연락을 담당했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해일처럼 밀려오는 10만 왜적과 맞서는 진주성 사람들에게 날틀은 희망이었을 것입니다.

또 이것이 비행기처럼 날았다면 라이트 형제를 앞선 세계 최초의 발명일 것이고요. 일본 쪽 역사서에도 나와 있는 것을 보면 진주성엔 분명히 백성의 희망, 날틀이 있었던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