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세습은 부도덕성의 결과물이다

[열린세상] 민병소 (기)감리회 수원남부교회 담임목사

최근에 와서 갑작스럽게 소위 ‘교회세습 문제’가 교회 안팍의 초미 관심거리가 되었다. 아마 20년 전만 해도 목회자가 자기 자식에게 교회를 대물림한다는 사실이 그다지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30∼40년 전 만해도 자식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회자가 되고 아버지가 시무하던 교회에서 봉직하게 되면 칭찬 받을 만한 일로 생각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오늘에 와서는 그것이 도덕성의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추정해 보건대 그것은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세습을 통해 유리한 지위를 확보한다는 데 대한 거부감 때문일 것이다.

1990년대 초부터 교회성장이 정체되고 교세 또한 점차적으로 감소되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신학대학교 졸업자들이 갈 곳없이 대기하고 있는 판국이 세습을 부도덕하다고 판단하게 만든다. 이것 역시 IMF 이후에 두드러지게 불거진 신자유주의의 정글의 법칙적인 경쟁력과 무관하지 않다. 이에 더 유능한 목회자를 모시지 않고 전임자의 자식을 담임목사로 초빙한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경쟁원리에 어긋난다.

그러니까 교회세습은 경쟁력 문제와 관련하여 경쟁없는 기득권 확보에서 도덕성 시비로 발전되고 있다. 이는 과거에는 차라리 미덕일 수도 있었던 것이 오늘날에는 부도덕의 징표로 보고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마치 대기업의 경영권 세습문제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 기업이 정상적으로 도덕성을 갖고 발전하려면 세습체제로서는 안 된다는 것이 경영학자들 뿐 아니라 일반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물론 더러는 유능한 상속자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경영권 세습이나 교회의 세습은 기득권 보호 차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변화와 개혁을 요청하는 시대정신의 전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 없다.

누가 뭐라해도 대형교회가 갖고 있는 사회적 영향력과 막대한 재정운영을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물려받는 다는 것은 특혜로 간주될 뿐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교회가 물려줘야 할 것은 물질적 자본과 교권이 아니라 사랑과 봉사 그리고 참된 희생이다. 이제부터라도 늦지 않았으니 교회세습이라는 구조악을 과감히 떨처버리고 도덕성을 회복해야 만 할 때다.

더 부언하자면 라인홀드 니비라는 신학자는 개인은 얼마든지 성숙도에 따라 도덕적인 인간이 될 수가 있지만, 사람들이 모여 조직화된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이 비도덕적인 사회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천명한 바 있다. 대부분의 대형교회는 구조악을 범하고 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사람들을 인격체로 보이는 것이 아니다. 단지 조직을 움직이는 하나의 도구 정도로 간주되고 있는 셈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건대, 교회세습은 부도덕성의 결과물인 것임에는 틀림없다. 교회가 교회다우려면 세상의 그 어느 조직보다도 차원 높은 도덕성을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의 부도덕성에 대한 질타는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실로 도덕재무장으로 교회의 명예를 하루 빨리 되찾아야만 할 때이다.

주지하는 대로 도덕재무장이란 상실된 도덕성을 다시금 되찾는 것을 말한다. 만일에 한국교회가 교회세습과 관련된 그 부도덕성을 끝끝내 떨쳐버리지 못한다면, 박물관 교회로 추락하고야 말 것이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런 역사적인 자의식을 가지고 근신하면서 옷깃을 여미는 준엄한 태도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