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에 따라 목회 생산성은 교인 수와 헌금 증가라는 두 가지의 축(軸)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바, 그에 대한 두 가지 서로 반대되는 입장 때문에 교회세습은 찬반 양론으로 갈라지게 된다. 먼저 교회세습을 반대하는 이들은 무능한 상속자가 목회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현상유지만 할 수 있다면 그런대로 성공적이겠으나, 교인들이 바라는 목회생산성 지수에 못 미치는 결과가 나타날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 실제로 상속자가 혈연관계에 있지 않더라도 전임자가 자신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여 후임자로 선택할 경우에는 교회 발전에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목회 생산성을 재고하기 위하여 과감하게 유능한 목회자를 초빙했다 하더라도, 원로목사가 된 전임자와 유능한 후임자 사이에 큰 갈등이 빚어져 교회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또한 많이 있다. 즉 세습찬성론자들은 전임자와 후임자가 부자 관계이거나 그 밖의 끈끈한 정(情)의 인간 관계로 얽혀있을 때 교회의 평화가 유질될 수 있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원로목사가 퇴임 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 말미암아 사실상의 담임목사로 남아 있게 되는 결과를 초래케 한다. 뿐만 아니라 후임자의 무력화 또한 촉진시킬 수가 있다는 심각한 부작용이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를 위한 목회 생산인가를 진지하게 자문자답할 때다. 다시 말해서 누구를 위해 교인 수를 늘리고 헌금 액수를 늘리고자 함인가 말이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이 내용은 교회 성립의 기초 단위로서, 작은 교회라 할지라도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 예수께서 유기적으로 연합하고 계심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목회 생산성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바는 먼저 들어와 신앙생활하고 있는 믿음의 가정들을 물질로 돌봐주는 일이다(갈 6:10). 즉 이제는 교회성장에만 급급하지 말고 교인들에게 헌금을 나눠주는 분배를 통한 복지목회를 시도할 때인 것이다.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는 교회를 영리단체인 기업과는 달리 그 본질과 사명에 충실해야만 하는 비영리 단체라고 규정하였다. 그런데도 세습교회는 교회 자체를 기업으로 간주하고 이윤추구에만 몰두해왔다. 그래서 그토록 성장 위주의 생산성에 몰입해 있는 것이다.
그 누가 뭐라해도 교회는 비영리단체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라도 교회는 비영리단체인 것을 지각하고, 그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는 환원운동을 전개해야 함이 마땅하다.
이 환원운동은 성경 말씀에 따라 그리스도의 종의 형체(빌 2:5∼11)를 닮아가고자 하는 믿음의 정신이다. 따라서 오로지 천민자본주의에 바탕을 둔 나머지 생산성에만 몰두하고 있는 세상과는 달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분배에 더 열심을 내는 모본을 보여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