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세습은 성직 계승의 영성 결핍증세?

[열린세상] 민병소 (기)감리회 수원남부교회 담임목사

교회세습에 관하여 신학적으로 말한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아주 생소하게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이겠으나, 새 시대의 한국교회가 마땅히 걸어가야 할 방향을 신학적으로 성찰한다는 것은 필요불가결한 과제이다. 먼저 세습 옹호론자들은 구약성서의 레위인들의 경우를 강변하고 나선다. 레위인들은 가나안 정복 때에 토지를 분할 받지 못하고, 도리어 성전의 성직을 대신 세습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유대교의 독특한 성직 세습제도이다. 그런데도 교회세습을 레위인들의 성직 세습에 근거해서 주창하고 있다면, 그들은 곧 세습주의자들로서 구약을 과대평가하고 신약을 과소평가하는 편협적인 성서 해석자들이다(신구약 성서 해석의 불연속성주의자들).

이에 반해, 기독교의 성직계승은 먼저 로마 천주교가 마태복음 16장 16절 이하에 근거하여 사도적 계승을 주장한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반석 위에, 즉 사도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세워졌다. 사도는 하늘과 땅을 관리하는 열쇠를 받았다. 바로 사도 베드로는 그의 신앙고백 때문에 그 큰 위임을 받은 것이다. 따라서 사도직 계승의 기초는 신앙고백에 있고, 이 신앙고백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서적 영성의 핵심이다.

성직임명과 계승은 인간의 뜻이나 인간의 혈통이나 인간의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로마 천주교의 사도직 계승론에 대하여 개신교는 로마 교회의 수위권이나 혹은 교황의 베드로 직분 독점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지역적으로 로마교회가 모든 교회 위에 군림한다는 교회의 관념은 로마제국의 망령이 아직도 천주교 속에 살아남아 있다는 증거일 뿐이다. 이는 결코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는 교회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이다.

이와 같이 개신교와 천주교 사이의 근본적인 입장차이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성직계승은 신앙고백과 신적 약속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유대교의 성직 세습과는 달리 혈육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다. 즉 기독교의 성직계승은 혈통적 세습을 단호히 거부하고 신앙고백과 신적 약속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직계승에 관한 성서적인 기독교적 영성은 제도화의 과정에서 왜곡되었던 것이다. 천주교의 교황제도가 바로 그 대표적 사례이다. 이에 또한 개신교의 목사직 이해조차도 오랜 세월을 흐르는 동안 제도화를 거치면서 점차적으로 아전인수적인 태도로 이기심의 독재성과 함께 철저히 주관화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은 참 우려할 만한 일이다. 이 우려할 만한 일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 바로 오늘날 서슴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교회세습인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교회세습은 성직계승의 영성에 어긋난다. 어떤 이유로든지 전임자의 후임자 선택권은 성서적인 기독교적 영성에도 어긋난다. 물론 전임자의 의견을 존중할 수는 있어도 후임자의 선택은 회중들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그럼에도 막무가내로 그 얄팍한 교권을 휘둘러 교회세습을 강행하는 목회자들이 있다. 천사의 말을 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들은 성직을 계승해 주는데 있어서 영성 결핍증세를 보여주고 있는 중증환자들이다. 단호하게 회개해야만 한다. 마땅히 믿음의 잘못된 방향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이에 영성 결핍증세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회개하는 것 외에는 없다. 따라서 이 회개는 화려한 말장난(Wordplay)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서 현저히 표출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