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일련의 형태는 정신(正信)에서 이탈해 퇴행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종의 신앙질병현상이다. 이 현상들은 종교의 역기능으로써 구조악에서 비롯된 것이다(라인홀드 니버). 최근에 와서 한창 주장하고 있는 경제 민주화는 재벌개혁과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양극화 해소를 요체로 한다. 다시 말해서 일부 사람들의 끊임없는 탐욕으로 말미암아 양극화를 만든 장본인이 바로 재벌이니, 먼저 대대로 혈연관계로 이어지는 재벌들의 세습경영은 물론 문어발식의 착취 사업을 척결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바는 오늘의 한국 기독교가 오히려 더 적극적인 태도로 그같은 세습형태를 닮아가고 있다는 데 있다. 교회세습을 염두에 두고 있으니 그토록 전도지상주의에 빠져 교회성장만을 추구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능으로 탐욕적인 것이다. 지나친 대형화 교회는 부익부 빈익빈 교회라는 양극화를 만든 원인 제공자인 셈이다.
이같은 일부 대형화 교회의 세습형태를 신앙질병으로 진단하고 이미 4년 전에「교회세습의 바벨론 포로」(2008)라는 저서를 펴내, 그 부당성을 널리 알린 적이 있다. 조만간「대형교회의 세습형태 : 현재와 미래」라는 저서를 통해서 그 면모를 밝힐 예정으로 있다. 이렇게 해야만 하는 까닭은 한국에서 종교개혁의 단초는 신국 공동체주의(역사 종말론적인 교회 구조)를 포함해서 교회세습 금지에 달려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샛강 없이 큰 강이 없다. 교회세습 금지는 교회의 순기능으로써 모든 교회들이 함께 공존상생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이러다 보면 지성전 세우고 노선별로 버스 돌리는 구습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한 지역에 타운을 형성해서 거대왕국을 이루는 작태 또한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될 때야 비로소 마음의 여유가 생김으로 인해서 주위에 있는 이웃들을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종교개혁은 바로 그와 같이 이웃들을 돌아보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이제 한국에서는 종교개혁의 단초라고 할 수 있는 교회세습 금지법이 2012년 9월 기독교대한감리교 입법회의에서 절대 다수의 결의로 통과되었다. 동시에 곧바로 그 법은 발효되어 지금 실시 중에 있다. 그 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부모와 자녀 또는 자녀의 배우자는 연속해서 동일한 교회에 파송 받을 수 없다. 부모가 장로로 있는 교회에 그 자녀 또는 자녀의 배우자는 파송 받을 수 없다.”
이 법 규정은 실로 한국교회사에서 길이 두고 남을 역사적인 쾌거이다. 이에 간절히 바라기는 교회세습 금지법이 한국교회 전체에 널리 확산되어 상실된 영향력과 신뢰를 회복했으면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