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현안 긴급점검(3)농산물 유통 개혁] 한국농업·농촌·농민이 벼랑 끝 위기에 놓여 있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 당시 얻어낸 '10년간 쌀 관세화 유예조치'마저 올해 말로 기한이 완료되기 때문에 농민들의 한숨 소리는 더욱 커지고 시름 또한 깊어만 가고 있다.
본지와 여의도통신이 공동으로 농정현안을 둘러싼 국회의 움직임을 몇 차례에 걸쳐 점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쌀시장 개방 협상, 농협법 개정에 이어 세 번째로 농산물 유통 문제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농산물 유통망 개선이 WTO로 대변되는 무한 자유경쟁체제의 세계 농업시장에서 한국의 농촌이 살아남기 위한 필수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농산물 유통망을 개선하기 위한 과제로 크게 산지유통 규모화, 도매시장 혁신, 농협의 역할 강화 등을 들고 있다.
특히 17대 국회에선 농민단체들을 대표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농산물 유통망 개선을 위한 관련 입법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혀 그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농산물 유통망의 현황, 그리고 개선을 위한 주요 개선 과제 및 논란, 향후 입법 전망을 살펴보자.
◇농산물 유통 현황=산지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유통’이라고 할 때 우리 농산물 유통의 현실은 어떨까? 이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있다. 농수산물유통공사가 지난해 12월 출하된 전북 고창산 가을배추의 유통비용을 조사해 지난 3월 발표한 것.
이에 따르면, 가을배추를 출하한 고창 농민과 이를 소비한 도시 소비자들은 유통경로에 따라 각자 얻은 소득과 비용이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 등 도매시장을 통해 유통된 배추의 경우 생산농민은 포기당 567원을 받았고 소비자는 이를 2000원에 구입했다.
그러나 똑같은 배추를 농협이 운영하는 대형소매점인 하나로클럽을 통해 출하했을 경우 농민은 포기당 612원의 소득을 얻었고 소비자값은 1500원이었다. 도매시장을 통했을 때보다 농민은 포기당 45원의 소득을 더 얻었고 소비자는 500원의 비용을 절감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도매시장에서 적용되는 청소비가 없고 하차비의 부담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며 “결국 포장품의 하역기계화의 이점이 비용절감으로 생산농민과 소비자 모두에게 유리하다는 점을 나타내준다”고 분석한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실의 최철원 보좌관은 “농산물 유통망을 개선하는 것은 농산물 가격안정과 농가소득을 통해 농민들의 생존기반을 마련해주는 것”이라며 “WTO 체제하에서 농협을 살리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 주요 과제 및 논란 :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실은 지난 13일 국회 도서관 강당에서 ‘농산물유통정책 개혁방안’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는 각 개혁과제에 대한 이해 관계자, 학계, 농민단체 등이 참석한 가운데 활발한 토론이 벌어졌는데, 무엇보다도 논란이 된 것은 도매시장 개혁 방안에 대한 것이었다.
농민단체, 생산자조합 등은 도매시장을 개혁하기 위해 현재 강제화 돼 있는 거래방식(경매)을 바꾸고 거래주체(도매시장법인)를 다양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들은 “경매제는 농산물 수급이 가격 폭등락에 지나친 영향을 미치게 하고 수수료 등 불필요한 비용을 지출하게 한다”며 “도매시장법인을 통해서만 농산물을 거래할 수 있는 것도 지나친 특혜 및 부작용이 있어 누구나 자격만 갖추면 자유롭게 상품을 위수탁 또는 직판할 수 있는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재 기득권을 쥐고 있는 도매시장법인협회 측과 일부 학자들은 다른 주장을 펼쳤다. 동국대 권승구 교수는 “농수산물유통및가격안정에관한법률(농안법)이 경매제 및 도매시장법인제를 도입한 취지인 ‘투명한 가격결정으로 인한 중도매인의 횡포 및 매점매석 방지’를 살리기 위해 현행 제도를 유지,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산지유통 규모화 및 농협의 역할 강화 등에 대해선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산지유통 규모화의 경우 생산농민들의 출하를 집단·규모화 해 가격교섭력을 높여 제값 받고 팔자는 것인데, 토론회 참석자들은 생산자 공동브랜드 사업 활성화 및 품목별생산자조합연합회 구성, 포장 및 하역작업 기계화 등 정부 시행 사업들의 효율적 진행 및 시행범위 확대, 발상 전환을 통한 새로운 방식 선정 등을 촉구했다.
농협의 역할 강화에 대해선, 이미 농협은 농산물의 파종, 수확, 포장 및 유통, 판매 등 전 분야에서 일정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대형할인점 등과의 경쟁에서 밀릴뿐더러 유통사업에서 얻고 있는 이익을 농민들을 위해 쓰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공감대를 얻었다. 박웅두 전농 정책위원장은 “신·경분리를 통해 농협의 농산물유통사업(경제사업)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강화시키고 이를 통해 농민의 이익에 복무해야 한다”고 말했다.
◇ 향후 입법 전망 : 이날 토론회에서 강기갑 의원은 “생산자조직의 거래교섭력 증대를 위한 산지유통개혁과제, 공영도매시장 개혁, 농협의 유통사업 개혁 등을 위해 농안법을 개정하고 도매시장법을 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 의원은 구체적으로 △품목별생산자조합연합회 구성 △공동선별, 공동출하, 공동계산 △생산자 조직의 공영도매시장 직판 가능 △공영도매시장에서의 경매방식 폐지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통한 거래주체 다양화 △농수산물유통공사를 통한 공영도매시장의 전문적 관리 등을 거론했다.
이와 관련 강 의원실의 최 보좌관은 “산지유통 규모화에 대한 정부의 정책을 좀더 효율화하고 농협의 신경분리를 통해 역할을 강화하자는 데는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면서 “그러나 도매시장 개혁에 대해선 도매시장법인협회 등 이익단체들이 반발하고 대국회 로비를 펼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고 밝혔다.
최 보좌관은 또 “농산물 유통정책 관련 개혁입법의 성공여부는 이익단체들의 반발 및 로비를 국회가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문제”라고 덧붙였다.
<여의도통신=김봉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