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간사 자료제출 요구도 거부

[국감준비백태]'배짱부처' 늘어…국회사무처도 성역


# 장면1

의원회관 ○○○ 의원실. 한 보좌관이 전화통을 붙잡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다음은 얼굴까지 붉게 상기된 그가 옆에 앉아 있는 기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토해낸 말들이다.

"과장님. 자료제출 시한이 며칠이나 지났습니까. 여보세요... 여보세요... 왜 소리를 지르십니까. 제가 개인적으로 자료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여당 간사 방인데, 이렇게 협조를 안해주면 다른 의원실은 도대체 어느 정도란 말입니까."

"(목소리가 높아지며) 사무관님! 사무관님! 이 사람이라니요? 제가 지난번에 과장님 왔을 때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뭐라 그러셨습니까. 자료를 제출하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지금이 며칠입니까. 열흘이 지났습니다. 열흘이..."

"(벌컥 화를 내며) 뭐라구요? 좋습니다. 그럼 오늘 자료 가지고 들어오십시요. 몇시가 되더라도 좋으니까, 밤 열두시에라도 오십시오. 제가 오라 말라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좋습니다. 그럼 제가 양해를 구하죠. 사무관님 죄송하지만 시간이 되면 오늘 들어오실 수 있겠습니까."

# 장면2

의원회관 복도 끝 휴게실. 칸막이 너머로 담배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국회 보좌진들이 피워대는 담배연기다. 담배연기 사이로 보좌진들의 푸념 아닌 푸념이 선명하게 들려온다.

"정말 못해 먹겠네. 공무원들 마인드에 문제가 있어. 아무리 그래도 여당인데, 이런 저런 문제가 있으면 도와주겠는 식으로 요청해도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자료를 줘도 달랑 한장 갖다주면 도대체 뭘 하자는 건지..."

# 장면 3

여당의 한 초선의원은 최근 간이침대를 하나 들여놨다. 국감을 앞두고 이래저래 밤을 새는 일이 많을 것 같아 장만한 것이다. 실제로 최근 의원회관 내의 최고 히트상품은 홈쇼핑 등에서 판매하는 접이식 간이침대. 웬만한 의원실마다 간이침대가 없는 곳이 없다.

특히 지방에서 올라온 지역구 의원실에는 어김없이 접이식 침대가 놓여있다. 디자인도 남색 줄무늬로 대개 비슷하다. 간이침대까지 들여온 이들에게 올 추석 연휴는 남의 일이다. 대구가 고향이라는 남경필 의원실의 한 비서관은 "길에서 보낼 시간을 생각하면 차라리 여기서 국감 준비를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추석에도 근무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의원회관 605호실.

보건복지위원회 여당 간사를 맡고 있는 이기우 의원실이다. 23일 아침 이 의원의 한 보좌관은 일과가 시작됐는데도 아직 '츄리닝'을 입고 있었다. 어제 국감 준비로 밤샘을 하다 보니 일과가 시작됐는지도 미처 몰랐던 것. 의원실을 가득 메운 각종 자료를 검토하느라 그날 새벽에야 소파에 누워 잠시 눈을 붙였다는 그 보좌관은 "샤워라도 해야겠다"며 자리를 떴다.

지난 21일 오전 이기우 의원실의 한 비서관은 전화통을 붙잡고 담당 공무원과 말씨름 중이었다. 자료요구를 한 지 20일이 넘었는데 해당 부서가 자료제출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료를 줘라"느니 "아직 수합이 안돼 못주겠다"느니 하며 승강이를 한 지 10여 분. 비서관은 계속된 입씨름에 지쳤는지 담배를 챙겨들고 의원실을 빠져나갔다.

오는 10월 4일 예정된 국감을 앞두고 보좌진들 사이에서는 밤을 새워가며 자료와의 싸움을 벌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해당 부서에서 보내온 각종 서류 더미에 빠진 서류파(?)가 있는가 하면, 자료요구들 둘러싸고 공무원과 끊임없이 입씨름을 벌이는 전화파(?) 등 그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공무원의 부실한 자료제출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보좌진들도 늘고 있다. 그럴 때마다 일일이 해당 부서에 전화를 걸어 확인하고, 재제출 요구를 하지만 그것도 그 때뿐이다. 민감한 자료일수록 어떻게든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려는 부서가 많다는 것이 보좌진들의 설명이다.

공격수와 수비수의 싸움, 창과 방패의 충돌은 그 결과가 쉽게 판가름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심신도 쉬 피로해진다. 국감준비로 며칠간 밤을 새워 그렇잖아도 신경이 날카로운데 오전에 공무원들과 입씨름을 하다 보면 하루 종일 기분이 찜짐해지기도 한다.

행정부처의 자료 비협조는 대개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차일피일 시일을 끌며 자료제출을 미루는 잔머리파(?)가 있는가 하면 아예 부실자료를 건네주는 배째라파(?)도 있다.

그렇다고 포기하면 국회의원 보좌관이 아니다. 유형별로 나름의 노하우를 개발해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예컨대 시간끌기로 일관하는 부처에는 전화독촉이 우선이다. 그런데 전화로 한참을 씨름하다 보면 서로 감정이 상하기도 일쑤. 그래도 아쉬운 쪽이 의원실이다 보니, 사정 아닌 사정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자료를 제때 제출해도 요구한 내용과는 전혀 다른 자료를 제출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농해수위 이철우 의원의 한 비서관은 "자료요구를 하면 대개는 제출하기 마련이다"면서도 "통계가 틀린다거나, 달랑 A4 한장짜리 자료를 주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그나마 행정부처는 낫다고 하는 보좌진도 있다. 국회 운영위 소속의 야당 중진의원의 보좌관은 국회 사무처만큼 자료제출에 배짱을 튕기는 데도 없다고 털어놓았다. 이 보좌관은 국회 사무처의 비협조를 이야기하며 거듭 익명을 요구했다. 자칫 이름이라도 알려지면 실무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익명(?)의 보좌관은 "국회 사무처로부터 행정지원을 받는 국회의원로서는 그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며 "운영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보좌진치고 국회 사무처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줘라."
"못준다."

스타의원 등용문으로 통하는 국감을 앞두고 자료제출을 둘러싸고 공무원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보좌진들. 그들에게 추석 연휴는 그저 '그림 속의 떡'일 뿐이다.

<여의도통신=김동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