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공군 전폭기의 폭격 연습 피해로 반세기 넘게 고통을 당해온 경기도 화성시 우정면 매향리가 통한의 아픔을 딛고 영원한 평화마을로 거듭날 희망에 부풀어 있다.
정부가 지난해 11월 매향리 쿠니사격장 관할권을 내년 8월까지 미 공군으로부터 인수해 완전히 폐쇄키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주민 14명이 지난 3월 대법원에서 소음피해배상 확정 판결을 받아 매향리에는 평화의 기운이 상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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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지에서 바라본 농섬 모습. 멀리서 보기에도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다. ⓒ2004 김한영 | ||
하지만 매향리의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00년 5월 주민 6명을 다치게 한 미군 A-10기의 오폭 사건 이후 육상 사격장은 폐쇄됐지만, 마을 서쪽 해상의 농섬에서는 아직도 폭격 연습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일 오후 기자는 수원환경운동연합이 마련한 생태문화기행 팀과 함께 처음으로 매향리를 방문했다. 그리고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없다는 미 공군 국제폭격장인 농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언론이 매향리 소식을 전했지만, 한 번도 직접 매향리의 실상을 접한 적이 없어 기행팀을 따라나선 것이다.
어른과 어린이 등 30여명으로 꾸려진 기행팀은 이날 오전 관광버스로 수원을 출발해 화성시 남양의 당성(신라 시대 군사적 요충지)~마산포(신라 시대 당나라와 무역의 전진 기지 역할을 했던 포구)를 거쳐 매향리로 향했다.
농어촌이 섞인 매화 향기 나는 평화로운 마을
버스는 가을 들녘이 펼쳐진 309번 도로(송산면 신천리~서신면 궁평리)를 달려 화옹방조제를 지나 낮 12시 40분쯤 매향리에 도착했다.
매향리는 농·어촌이 혼재한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옛 지명은 기온이 따뜻한 동네라는 뜻의 고온리(古溫里)였으나 해안을 따라 심어진 수많은 매화나무 향기가 널리 퍼져 후일 매향리로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들녘엔 벼와 고추 등 농작물이 익어가고, 마을 남쪽 끝에 위치한 작은 포구엔 썰물에 발이 묶인 고깃배들이 밀물 때를 기다리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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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섬의 허리에 박힌 연습용 폭탄들. 기행팀들이 전 위원장에게 상황설명을 듣고 있다. ⓒ2004 김한 | ||
포구 근처 횟집과 어시장엔 일요일을 맞아 가족 단위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기행팀이 점심을 먹기 위해 포구 쪽으로 걸어나오자 낯익은 얼굴이 달려와 반갑게 맞아줬다. 전만규(48) 매향리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이었다.
전 위원장은 맘씨 좋은 평범한 시골 아저씨 모습이었다. 그런 그가 반미투쟁가로, 반전평화주의자로 변신한 것은 이 마을에 있는 미 공군 폭격 및 사격연습장인 쿠니 사격장 때문이다.
미군기 폭격 연습에 반세기 '전쟁과 평화' 악순환
매향리는 지난 50여년 동안 일주일을 주기로 '전쟁과 평화'의 악순환이 계속돼 왔다. 폭격이 없는 토·일요일, 매향리는 평화롭다. 그러나 월요일이 시작되면 평화는 깨지고, 금요일까지 전쟁터 아닌 전쟁터로 변한다.
때문에 주민들은 반세기 넘게 소음과 진동,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아왔다. 전 위원장은 통한의 땅 매향리를 평화의 땅으로 되살리기 위해 지난 88년 대책위를 꾸려 16년 동안 주민들과 함께 목숨을 건 투쟁을 벌였다.
그는 포구 옆에서 '전국이네'라는 상호의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음식점 바로 앞쪽에는 비극의 섬, '농섬'이 자리잡고 있다. 직선 거리로 약 1.5km 거리에 있는 농섬은 멀리서 보아도 처참하게 일그러진 모습이다.
기행팀은 전국이네에서 칼국수로 허기를 채운 뒤 오후 2시쯤 전 위원장의 안내를 받아 농섬 탐방에 나섰다.
비극의 섬, 농섬에 들어가다
전 위원장은 밀물 전에 빨리 농섬에 들어갔다가 나와야 한다며 자신의 1톤짜리 소형 트럭을 동원했다. 물 빠진 해안을 따라 500여m를 차량으로 이동한 기행팀은 전 위원장의 길 안내를 받으며 1.2km의 갯벌 길로 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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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관총사격에 벌집이 된 승합차와 미사일 탑재 차량 표적. ⓒ2004 김한영 | ||
농섬에 가는 길은 그렇게 '험난'했다. 참가자들이 갯벌 위에서 끙끙대고 있는 사이 전 위원장은 벌써 초등학교 어린이 4명을 데리고 농섬 아래에 도착해 갯벌에 널려 있는 기관총 탄피들을 줍고 있었다.
약 25분간의 고난 끝에 갯벌을 빠져 나온 기행팀은 마침내 농섬에 도착했다. 하지만 농섬을 살펴본 기행팀은 눈앞에 펼쳐진 충격적인 현장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미 공군 전쟁 연습에 만신창이...곳곳에 폭격 잔해 널려
농섬은 말 그대로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 섬은 계속되는 폭탄 세례에 찢겨져 나가 귀퉁이만 남았고, 섬 주변엔 크고 작은 연습용 폭탄과 파견들이 수없이 널려 있다.
특히 농섬 서쪽 허리엔 직경 30~40cm 정도 되는 폭탄들이 수십여개가 박혀 있고, 그 아래 표적으로 쓰인 컨테이너 박스 3개는 기관총 사격에 벌집이 돼 있다. 반대편 자동차 표적들도 겨우 형체만 남은 채 흉측한 몰골이었다.
농섬 위쪽으로 올라가자 폭탄이 떨어진 자리마다 웅덩이가 깊게 패인 채 물이 고여 있었으며, 야간 폭격을 위한 유도 램프들이 검게 그을린 채 나뒹굴고 있었다.
전 위원장은 현장 설명에서 "미 공군 폭격기들이 평일에는 하루 종일 농섬에 폭격을 퍼부어 본래 면적의 30% 크기로 줄었다"며 "폭격기들의 굉음과 폭탄의 폭발음에 마을 주민들은 참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살아 왔다"고 말했다.
폭격에 본래 면적의 30%로 줄어...중금속 오염도 심각
그는 또 "이곳은 국내 주둔 미 공군기뿐만 아니라 일본, 괌, 타이, 필리핀 등에서도 날아와 폭격 연습을 한다"며 "인근에 마을 등 폭격장애물이 있어 실전과 같은 훈련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미군 전용 국제폭격연습장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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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만규 위원장의 현장설명. ⓒ2004 김한영 | ||
이날 기행참가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예상은 했지만 막상 와서 보니 너무 충격적이다"며 "농섬과 주변 일대의 중금속 오염도 심각할 것 같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전 위원장은 "녹색연합이 조사했더니 납이 엄청나게 검출되는 등 중금속 오염이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00년 녹색연합 조사결과 농섬의 납 농도는 kg당 845mg으로, 국내 공장 용지의 평균 농도인 kg당 34.8mg보다 무려 24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매향리에 미 공군 폭격장과 사격장이 생긴 것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8월. 미군 폭격기들이 주민들과 한마디 협의나 통보도 없이 마을의 해안에서 500m 떨어진 '구비섬'(거북이 모양의 섬)을 표적 삼아 폭격 연습을 시작하면서부터다.
그 후 미 공군은 구비섬이 계속되는 폭격 훈련으로 완전히 뭉개져 평지가 되자 다시 농섬으로 표적을 이동시켰으며, 국방부는 사유지 40만평을 강제 수용해 1968년 미군에게 무상으로 공급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미 공군은 농섬을 비롯해 매향리 일대 육지와 해상 728만여평에 조성된 사격장에서 토·일요일을 제외한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전투기 전폭기들을 동원해 폭탄투하와 기관총 사격훈련을 실시해 왔다.
이처럼 매향리에 미 공군 국제폭격장과 사격장이 생긴 뒤 주민들의 피해는 엄청났다. 지금까지 미 공군 폭격훈련으로 숨진 주민은 임신 8개월의 임산부를 비롯해 13명에 이르며, 22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폭격 연습 주민 피해 사망 13명, 부상 22명, 비관자살 32명
또한 살인적인 소음 공해를 견디다 못해 비관 자살한 주민이 32명에 달하고, 사격장 소음으로 인한 수면 장애와 가축의 유산 및 불임 피해도 심각하다고 전 위원장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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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벌겋게 녹이 슨 채 주민대책위 건물 옆에 쌓인 대형 폭탄들. ⓒ2004 김한영 | ||
기행팀은 한 시간 가량 농섬을 탐방한 뒤 오후 4시쯤 다시 매향리 포구로 나와 마을 안쪽에 있는 '미공군폭격장폐쇄주민대책위원회' 사무실로 이동했다.
주민대책위 앞 삼거리에 서 있는 '평화의 여신상'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각종 폭탄 잔해물로 만든 여신상은 매향리의 고통과 평화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그 옆으로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장승이 동무 삼아 서 있다.
건너편으로는 육상폭격장의 철조망이 길게 쳐 있고, 바깥쪽 철조망에는 주민들의 피해배상 승소 대법원 확정판결과 주민승리를 축하하는 펼침막들이 내걸려 있다.
단층짜리 주민대책위 사무실 건물 옆에는 주민들이 농섬에서 수거해온 연습용 대형 탄두와 로켓 포탄 등 수십여개가 벌겋게 녹이 슨 채 쌓여 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2000년 오폭 사고 때 투하된 무게 227kg짜리 'MK-82' 탄두들이다.
주민대책위 사무실은 '투쟁박물관'...시위용품·자료들 즐비
주민대책위 사무실 건물 앞쪽 벽에는 '조용한 환경에서 살고 싶다' '하늘과 땅, 바다를 징발하고 보금자리마저 짓밟는 폭격장을 즉각 이전하라'는 등의 구호가 적혀 있고, 쇠갈퀴를 든 농부가 미국에 분노하는 형상의 대형 벽화가 그려져 있다.
주민대책위 사무실은 바로 '매향리 투쟁역사박물관'이었다. 이곳에는 폭격장 폐쇄를 요구해 온 매향리 사람들의 처절한 투쟁의 역사를 보여주듯 각종 시위용품과 자료들이 즐비했다. 시위 때 사용한 '꽃상여'와 경찰에게서 '압수'한 방패와 진압봉, 펼침막 등이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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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책위 건물에 그려진 대형벽화와 견학생들. ⓒ2004 김한영 | ||
맞은편으로는 농섬과 육상사격장에서 수거한 크고 작은 폭탄과 기관총 실탄 등이 전시돼 있었다.
출입문 입구 우측 벽면엔 시위 현장에서 얼굴에 피를 흘리고 있는 주민과 진압봉을 든 경찰, 시위 현장의 할머니 모습을 담은 사진 등이 색이 바랜 채 붙어 있다. 그곳에는 '매향리의 아픔이 하루 빨리 치유되기를 빈다'는 내용의 <오마이뉴스>의 메시지도 있었다.
주민대책위 사무실을 둘러보는 사이 때마침 전교조 서울시지부 강동송파지회 소속 교사가족 68명이 관광버스 2대에 나눠 타고 대책위 사무실을 찾아왔다. 이 때문에 주민대책위 사무실 안팎은 금세 견학 인파로 북적이는 등 '견학명소'로 변했다.
대책위, 매향리 일대 '평화박물관' '평화공원' 조성계획
이렇듯 매향리의 지난 50여년 세월은 미 공군의 전쟁 연습으로 인한 고통과 비극, 투쟁의 역사로 점철돼 있다. 그러나 매향리 주민들은 현재까지 그 아픔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마을의 진정한 평화를 되찾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특히 대법원에서 미 공군 폭격연습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의 승소 확정판결을 얻어내고, 정부와 미군당국으로부터 매향리 일대 육·해상 폭격장 폐쇄 방침을 이끌어내면서 매향리에는 현재 평화의 기운이 상승하고 있다.
이는 매향리 주민대책위원회가 결성된 지난 88년부터 16년 동안 마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정부와 미군 당국을 상대로 목숨을 걸고 싸운 주민들의 처절한 투쟁의 결과다.
대법원은 지난 3월 14일 매향리 주민 14명이 98년 2월 청구한 미 공군 폭격소음피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원고들에게 손해를 배상하라"는 원심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주민대책위 측은 주민들의 뜻에 따라 배상금 1억9400만원 전액을 매향리 평화마을 조성사업에 사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전 위원장은 "다음달 '평화마을 만들기 범시민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내년 8월 폐쇄 예정인 매향리 '쿠니사격장' 일대 38만여평에 '평화박물관'과 '평화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주민 14명의 폭격소음피해 승소판결에 힘입어 주민 2356명도 현재 국가를 상대로 130억원의 배상금청구소송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승소할 경우 배상금의 일부를 평화마을 조성비로 내놓을 생각이다.
따라서 평화마을 조성계획이 완료되면 매향리에는 반세기 동안 '전쟁과 평화'가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주민들의 숙원인 영원한 평화, 진정한 평화가 정착될 전망이다.

▲ 매향리의 수호신. 대책위 사무실 앞 삼거리에는 평화의 여신상과 두 장승이 서 있다. ⓒ2004 김한영
국방부, 내년 8월 매향리 미 공군사격장 완전 폐쇄 결정
국방부는 지난해 11월 미군 측과 체결한 '매향리사격장 관리임무 전환 및 폐쇄에 관한 이행계획서'에 따라 매향리와 농섬 일대 육지와 해상에 조성된 728만평 규모의 '쿠니사격장' 관할권을 2005년 8월까지 미 공군으로부터 인수해 완전히 폐쇄키로 결정한 바 있다.
지난 2000년 5월 미 공군 A-10기가 실전용 MK-82 폭탄 6발을 투하해 주민 6명이 다치고 700여 가구가 파손되는 오폭사건이 발생한 후 육상 사격장은 현재 사용이 중단됐다.
매향리 농섬과 주민대책위 사무실을 탐방하다 보니 어느덧 한나절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한나절은 매향리의 50년 고통을 읽어내기에는 크게 부족한 시간이었다.
더구나 이날이 폭격이 없는 일요일이어서 미군 전폭기 소음과 농섬에 대한 폭격 장면 등 실제 상황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러나 매향리와 농섬에서 확인한 사실을 통해 매향리 사람들의 오랜 고통과 분노를 미뤄 짐작할 수 있었다. 특히 약소국민에 대한 대국의 오만함과 전쟁 놀음의 폐해를 다시 한번 절감하는 기회가 됐다.
이날 기행에 참가한 이한결(12·수일초교 5년)양은 "농섬에 가기 위해 트럭으로 해변을 달릴 때는 재미있었다"면서 "그러나 농섬이 미군의 폭격 훈련에 망가진 것을 보고 기분이 나빴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온 윤수희(34·수원 영통동)씨는 "아이에게 평화와 역사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이번 기행에 참여하게 됐다"며 "특히 농섬의 처참한 모습을 보면서 미군의 존재 이유에 대해 회의를 가졌다"고 말했다.
수원환경운동연합 장동빈 사무국장은 "올해는 이라크 파병과 관련해 반전평화운동이 거셌고, 지난 3월 매향리 주민들이 폭격장 피해배상확정판결을 이끌어내는 등 의미 있는 투쟁의 결과들이 나와 매향리를 주요 기행 코스로 잡았다"며 "참가자들이 평화와 역사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