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龍)은 '큰 일'에만 신경써 달라?

[경기도 국감] '지역민원'엔 아부경쟁 '정치쟁점'엔 이전투구

"땅 땅 땅"

7일 오전 10시 7분. 국회 국회행정자치위원회 이용희 위원장은 국정감사 개회를 알렸다. 1020만명.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거주하는 작은 '한국' 경기도에 대한 국정감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답변해 주세요"
"내가 시간이 다 돼서 그러는데, 이 부분은 서면질의를 할 테니 서면답변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 7일 경기도청에서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국정감사가 열렸다. 손학규 경기도지사와 경기도청 관계공무원들이 국정감사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 김진석
이날 행자위 국감에서 가장 많이 나온 발언은 "시간이 없다"였다. 의원 한 명에게 배정된 질의시간은 8분. 보좌진이 밤새 작성한 질의내용을 읽기에도 빠듯한 시간이었다. 부족한 시간 때문인지 의원들은 준비한 질의내용 중 한두 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서면질의로 넘겼다.

국감 첫 질의는 '경기북도' 신설에 대한 것이었다. 경기 남양주시가 지역구인 열린우리당 박기춘 의원이었다. 두 번째 질의자는 김포가 지역구인 한나라당 유정복 의원. 유 의원은 김포시가 경기도 전체 개발 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다며 지역 균형 발전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역구 민원'을 질의하는 의원들의 억양은 여야 할 것 없이 부드러웠다.

그러나 '부드러운' 국감, ‘이슈' 없는 국감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전날 서울시에 이어 '관제데모' 논란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먼저 선공을 한 것은 열린우리당. 여당은 야당의 대권후보군 중 한 명인 손학규 도지사의 자질론을 문제삼으며 포문을 열었다.

 

다음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잇따라 손 지사에게 날린 '말 화살'이다.

"소방 헬기를 많이 탄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 헬기는 긴급한 상황에 쓰기 위한 것이다. 긴급한 상황이 없는데도 헬기를 이용한 이유는 무엇이냐?"(최규식 의원)

"도지사를 홍보하는 영웅주의적 사관에 입각한 만화를 배포한 이유가 무엇이냐. 큰 정치를 하겠다는 분이 이러면 되느냐?"(강창일 의원)

"국감 전날에 중앙일간지에 경기도정을 홍보하는 광고를 일제히 실은 이유가 무엇이냐. 배나무 아래에서는 갓끈을 매지 말라고 했다. 지사님 정도면 아랫사람이 하자고 해도 말려야 되는 것 아니냐."(우제항 의원)

한나라당 의원들도 가만 있지 않았다. 그들은 당내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 중 한 명인 손 지사를 엄호하기 위해 '말 방패'를 내밀었다.

"용은 지렁이의 움직임에 신경을 안 쓴다. 작은 일은 실무진에게 맡기고 큰 일에 힘써 달라."(유기준 의원)

"바쁜 일이 있으면 헬기를 탈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느냐?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지사로서 당연한 것 아니냐?"(이인기 의원)

   
▲ 7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국정감사가 열리는 경기도청. 손학규 경기도지사가 웃으며 대답하고 있다. ⓒ 김진석

국감 취재중 기자들이 제일 자주 듣는 발언이 있다.

"평소 존경하는 손학규 도지사와 경기도 공무원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질의시간이 모자라 다른 의원들의 질의시간까지 빌려쓰던 의원들도 첫 머리에는 꼭 "존경하는..."이라는 발언을 관형어처럼 붙였다. 그런 식으로 하다 보면 발언시간 1-2분은 금방 지나갔다.

'자질론 공격'과 '대망론 엄호'로 탐색전을 벌이던 여야가 '행정수도 이전'과 '관제데모' 논란에 이르러선 한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문제의 발단은 열린우리당 양형일 의원이 경기도가 일선 시군에 내린 것이라며 공문을 공개하면서부터였다. 지난달 17일 열린 수도이전반대 범국민운동본부 준비위 주관 행사 참석을 독려하는 공문이었다.

"경기도가 수도이전반대 범국민운동 발대식에 각계 각층에서 대거 참여할 수 있도록 안내, 지원하라는 공문을 일선 시군에 보냈다. 이 문건은 팩스를 이용해 9월 14일 오후 2시에 발송된 것이다. 이는 행정력을 동원한 관제데모로써 군사정권 시절에나 있을 법한 발상이다."

이에 대해 황준기 도 기획관리실장은 양 의원이 제시한 공문을 팩스로 보낸 적이 있다고 자인했다. 여당 의원들은 득의양양했다. 사법 당국에 '수사 의뢰'를 하겠다며 으름장도 놓았다.

손학규 지사는 "황 실장은 도지사의 명령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을 뿐이며 문서를 보낸 것은 수도이전을 반대하고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도의회의 요청을 받아 집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책임이 있다면 나에게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 7일 경기도청에서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국정감사가 열렸다. 국정감사가 열리고 있는 회의장. ⓒ 김진석

한나라당 의원들의 '엄호 사격'이 이어졌다. 제일 먼저 행자위 간사인 이인기 의원이 나섰다.

"경기도와 국민 대부분이 반대하고 있는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서 선출직 도지사가 이에 대한 견해를 내는 것은 타당하지 않느냐?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실상 천도가 아니냐?"

경기도 행정과 관련한 질의를 던질 때에는 보좌진이 작성한 질의서를 '책 읽듯' 읽어갔던 의원들이 정치적 쟁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돌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신행정수도 이전 반대에 대해 이명박 시장과 한시적 동맹을 맺고 있는데 서울시과 경기도의 교통체계 개선에는 소극적이면서 정치적 면에서는 약삭 빠르게 움직인다는 비판도 있다."(홍미영 의원)

"잘못된 홍보 만화를 제작한 공보관을 왜 그냥 그 자리에 놔두는 것이냐.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강창일 의원)

한나라당 유기준 의원은 "경기도가 무슨 일을 하는지 오늘 업무보고를 보고 알았다"는 '부끄러운 고백'도 거침없이 했다. 순간 공무원 대기실에서는 '피식' 쓴 웃음이 돌기도 했다.

'관제데모' 논란과 '행정수도 이전' 문제로 여야가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는 동안, '일용직 공무원에 대한 처우가 낮다'라는 민주노동당 이영순 의원의 지적은 그대로 넘어갔다. 소득이라면 그 발언을 '속기록'에 남긴 것 뿐이었다.

인구 1020만의 거대 조직 경기도에 대한 국정감사는 오후 3시가 다 돼서 끝났다.

<여의도통신=김동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