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올라 4현(絃)으로 연주한 인생 1악장

[이사람]수원시립교향악단 이나옥 비올리스트
비올리스트 이나옥씨가 비올라의 음색을 설명하고 있다./이상우 기자
수원시향과 함께 한 30년 연주인생 정년퇴임 앞둬
정두영 지휘자와 연주한 브람스교향곡 ‘가장 만족’

지휘자의 오른쪽 첫 번째 줄 맨 뒷자리에서 지난 30년 동안 수원시립교향악단(상임지휘자 김대진)을 지켜온 비올리스트 이나옥(57·여)씨가 오는 6월 말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다. 

1983년 2월 수원시향에 입단해 오케스트라와 함께 청춘을 보낸 이나옥씨는 단원들 사이에서 자칭 ‘할매’로 통한다. 손주들의 재롱이 가장 즐거운 진짜 할매(?)이기도 하지만, 40대부터 갖게 된 은발(銀髮)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나옥씨는 김대진 상임지휘자만큼이나 은발이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도 주고 있다.

정년퇴임을 6일 앞둔 지난 24일 수원시향 단원으로서는 마지막 무대가 될 '차이콥스키 사이클' 세 번째 공연 연습에 한창인 이나옥씨를 수원시립예술단 연습실에서 만났다.

"숭의여고를 다닐 때 음악 선생님 부부가 서울시향 단원으로 활동하고 계셨는데, 정말 멋있어 보였어요. 그때 '나도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어요. 이제 오케스트라를 떠나야 할 때가 되니 섭섭한 마음도 들지만, 어릴 적 내 꿈을 이룬 스스로를 대견하다고 생각해요."

무더운 여름 한낮의 열기 때문인지 힘든 연습 때문인지, 연신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이나옥씨는 이렇게 말했다. 결혼 전 인천시향에서 잠시 활동하다 두 아이를 출산하고 기르느라 활동을 접어야 했던 그녀가 다시 비올라를 들게 된 이유는 어릴 적부터 품었던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나옥씨는 “당시는 오케스트라에 자리가 많지 않아 후배로부터 수원시향에서 단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지원하게 됐는데, 운이 좋았는지 합격해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며 “집이 서울이어서 먼 거리였지만, 거의 제일 먼저 출근부 사인을 할 정도로 오케스트라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다”고 말했다.

“바이올린처럼 도드라지거나 첼로처럼 우아하지는 않지만, 이 둘을 배려하고 돕는 역할을 하는 악기가 비올라에요. 바이올린 소리는 너무 신경질적인 것 같아서 싫었고, 사람의 목소리와 가장 흡사하다는 첼로를 연주하고 싶었지만, 연주하는 자세(다리를 벌리고 연주)가 싫어서 비올라를 선택했어요.”

연주자는 자신의 악기를 닮아 간다는 말처럼 비올리스트 이나옥과 비올라는 많이 닮았다./이상우 기자
여러 악기 중에 비올라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물었더니 “숭의여고 합주부에서 바이올린으로 시작했는데, 가온음자리표를 사용하는 비올라 악보를 볼 줄 아는 학생이 없어서, 잘난 체(?) 하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비올라를 잡게 됐다”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이나옥씨와 비올라는 많이 닮았다. 전체를 떠받치느라 스스로를 내세우지는 않지만, 만약 그것이 없다면 조화가 깨지는 그런 존재. 오케스트라의 비올라와 수원시향의 이나옥씨는 그런 존재로 느껴졌다.

이나옥씨는 “비올라는 솔로 곡이 없다”고 했다. 또, “바이올린과 첼로 사이에서 가장 좋은 음색을 내기 위해 연주자가 감당할 수 있는 몸의 한계에서 만들어진 악기”라고 했다. 그래서 자칫 혼자 외롭고 힘들기만 한 악기가 될 수도 있지만, 비올라는 스스로 바이올린과 첼로의 소리를 찾아가 그들과 조화를 이루는 악기라는 것.

“정두영 선생님(2대 상임지휘자)과 함께 국립극장에서 연주했던 브람스교향곡 1~4번 곡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정두영 선생님은 수원시향만의 특별한 소리를 만들어 주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30년동안 수많은 공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연주를 꼽아달라고 했더니, “2대 상임지휘자였던 정두영 선생님과 함께 국립극장에서 연주했던 브람스교향곡 1~4번 곡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많은 솔리스트들이 수원시향의 반주를 아주 만족해하는데, 정두영 선생님께서 이런 수원시향만의 소리를 만들어 줬다"고 평가했다.

후배 단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로는 “건강한 연주자가 건강한 소리를 낼 수 있다"며 ‘건강관리’를 제일로 꼽았다. 연주자들은 혹독한 수련을 통해 실력을 쌓아야 하고 오랜 연주로 골격이 휘거나 인대가 늘어나는 등 저마다 직업병(?)을 갖고 있다고.

비올라 4현(絃)으로 인생 1악장을 마친 이나옥씨는 이제 2악장을 준비하고 있다. 이나옥씨는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오케스트라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허전했고, 먼저 은퇴하신 선배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못 해 드린 것도 새삼 떠올라 죄송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후배들이 수원시향을 더 잘 이끌어 갈 것이라고 믿고 마음 편히 떠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수원시향 비올리스트 이나옥씨는 오는 27일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수원시립교향악단의 ‘2013 차이콥스키 사이클'의 세 번째 무대에서 지휘자의 오른쪽 첫 번째 줄 맨 뒷자리에서 마지막으로 수원시민들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