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환의 여의도칼럼] 언더우드 4세의 고언

   
▲ 정지환 - 여의도통신 대표기자
지난 주말의 일이었다. 한국 근대화에 큰 기여를 했던 언더우드 가문이 120년 만에 한국을 떠났다. 부인 낸시 여사와 함께 '바람처럼 사라진' 언더우드 4세 원한광 박사는 한국을 떠나던 날 누구에게도 정확한 출국 일정을 알려주지 않았다. 자신의 출국 사실이 알려지면 환송 행사를 한다느니 기자 회견을 한다느니 하면서 시끄러워질 것이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언더우드 가문이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한 세기가 넘는다.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였던 언더우드 1세(1859∼1916)는 1885년 아펜젤러 목사와 함께 한국에 들어왔다. 그는 1887년 한국 최초의 장로교회 새문안교회를 설립했으며, 1889년 기독교서회를 창설하고 한국 최초의 <한국어소사전>을 발간했다. 1900년 황성기독청년회(서울YMCA)를 조직한 언더우드는 1915년 경신학교에 대학부를 개설해, 연희전문학교(세브란스 병원의 모체인 연세대의 전신)로 발전시켰다.

4대에 걸쳐 한국에 근대적 종교, 교육, 의료, 문화를 전파한 언더우드 가문 사람들은 '한국인이 된 선교사'라는 애칭에 걸맞게 아예 이름도 한국식으로 바꿨다. 언더우드 1세가 원두우가 된 이후 2세 원한경(1890~1951)-3세 원일한(1917~2004)-4세 원한광(1943~)으로 이어졌다. 물론 그들이 한반도에서 좋은 평가만 받은 것은 아니다. 김일성과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박헌영을 언더우드에게 포섭된 '미제 간첩'으로 규정했던 북한으로부터는 '양의 탈을 쓴 늑대'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언더우드 4세 원한광 박사는 미국으로 떠나기 전 한국인들에게 의미심장한 고언(苦言)을 남겼다. 다음은 그가 지난 9월 8일자 <매일경제>와 인터뷰했던 내용 중에서, 우리가 가슴에 손을 얹고 들어볼 만한 몇 대목만 그대로 옮긴 것이다. 미국식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이 땅에 이식시켰으며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프락치로 공격받기도 했던 당사자의 육성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들어보자.

―현 정부 들어 한국 경제가 나빠지고 있다고 하는데.
"내가 한국에서 머문 30여 년 동안 한국 경제에 대해 매년 나쁘다는 얘기만 들었다. 그런 얘기를 안 듣고 한 해를 보낸 적이 없다. 지난 1997년 말 외환위기 때도 한국 경제가 아예 망했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 경제는 6개월여 만에 차츰 회복되기 시작하지 않았나. 한국 경제는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도 성장해 나갈 것으로 본다."

―반미감정, 미군철수 등 한미관계를 우려하는 사람이 많은데.
"한국민 입장에서 반미감정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50년 동안 4만명이 주둔해 오면서 왜 갈등이 없었겠는가. 내 개인 생각으론 미군은 언젠가 철수해야 한다고 본다."

―정부의 좌편향을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내가 생각하기론 한국에 좌파는 없다. 모두 우파들이다. 다만 누가 강한 우파이고 누가 약한 우파인지 구분하는 문제만 남아 있다고 본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 않다. 미국식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군말 없이' 수용하는 것만이 우리의 살길이라고,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하고 '한 치의 양보 없이' 적대하는 것만이 우리의 정체성을 지켜내는 유일한 방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작 원한광 박사의 고언에 귀를 기울일 생각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원 박사가 한국에 돌아오면 또 어떤 고언을 던질 것인지, 벌써부터 얼굴은 화끈거리고 가슴은 답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