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환의 여의도칼럼] 소년수 용선이

정지환(여의도통신 대표기자)

'그'가 소년수 용선이를 처음 만난 곳은 안양교도소 미결 사동이었다. 용선이는 '폭행치사'로 3년형을 받았는데, 어느 날 운동장에서 만나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딱 유전무죄에 걸렸구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또래의 아이들과 휩쓸려서 초등학생을 때렸는데, 자신은 끼어 들지도 못하고 다른 아이들이 때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모두 부모가 경찰서로 찾아와 데려가고, 한글도 모르고, 엄마는 집을 나가고, 아버지는 생활무능력자였던 용선이가 혼자서 다 뒤집어쓰게 된 것이다.

   
▲ 정지환 여의도통신 대표기자
'그'는 한글을 모르는 용선이를 위해서 담당 판사에게 탄원서를 대신 작성해 제출했다. 그래서인지 항소심에서 6개월 감형이 되었다. 그해 가을 '그'는 형이 확정되어 김천 소년교도소로 이감을 갔다. 일반수들이 없는 병사의 독방에 갇힌 그는 독서와 운동으로 나날을 보냈다. 김천이 춥다는 걸 절실히 느낀 게 이때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운동 시간에 용선이를 발견했다. 용선이가 먼저 "아이씨(용선이는 아저씨 발음을 이렇게 한다)" 하며 달려왔다. 어찌나 반갑고 안쓰러운지 덥석 안아주었다.

용선이도 병사에 있었다. 용선이는 좀 모자라 징역에서 죄수들끼리 칭하는 말로 '좆밥'이었다. 소위 왕따다. 약육강식의 사회, 바로 소년교도소이다. 힘이 있거나, 돈이 있거나, 약삭빠르거나 해야 살아남는다. 허나 용선이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 방에서도 설움뿐이다. 무시당하는 게 어쩌면 자연스런 삶처럼 보인다. 그때부터 '그'는 용선이 보호자가 되었다. 메리야스며 먹을 것이며 영치 물품들이 들어오면 뭐든지 용선이 몫부터 챙겼다.

징역에서 가장 큰 소일거리 중 하나는 독서다. 그러나 한글을 모르는 용선이는 책을 봐도 그림만 봐야 한다. '그'는 이제 용선이에게 한글을 가르쳐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교도관에게 하루에 한 시간씩 용선이 한글 공부를 시키겠노라 부탁을 했다. 좋다고 해서 그 날부터 가르치는데, 이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윽박지르기도 하고, 달래도 보고, 숙제도 무진장 내주었건만 한글을 깨우치기 힘들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용선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이씨, 출소하면 아이씨 만날 수 있겠죠?" 하고 묻는 것이다. 퍼뜩 좋은 생각이 떠오른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럼, 그래야지. 그런데 용선이가 한글도 알고 숫자도 알아야 편지도 쓰고, 전화번호를 알아야 전화도 하지. 그래야 나와 만날 수 있는 거야." 동기 부여! 그 날부터 용선이의 한글 공부는 확실히 달라졌고, 6개월만에 한글은 물론이고 숫자까지 터득했다. 용선이 자신도 기쁘고 대견한 모양이다.

그런 용선이가 '그'가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를 했다. '아! 용선이!' 담장 밖에서 용선이 목소리를 들으니까 생경한 느낌마저 들었다. 1996년 12월 31일 '그'는 속초엘 갔다. 용선이가 그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용선이는 작은 농장에서 숙식만 해결하며 살고 있었다.

물어물어 찾아가 본 용선이의 모습은 차라리 감옥이 낫겠다 싶을 정도로 남루했다. 우선 가까운 목욕탕에 데려가 목욕시키고, 이발시키고, 싸구려 잠바를 사주었다. 무얼 먹고 싶으냐 물었더니 '탕수육'을 먹자고 했다. 그런데 용선이가 손수 안내하는 곳으로 따라갔더니 보신탕집이 아닌가? 그렇다고 그게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 식당 간판에 분명히 '탕·수육'이라고 써 있었으니까!

그 후로 '그'는 용선이와 1년에 두 번 만난다. 겨울에 한 번, 여름에 한 번 속초엘 간다. 지난 겨울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지금도 언제 올 거냐고 3일에 한번 전화가 온다. 어쩌면 가족을 빼고 유일하게 '그'를 찾는 용선이는 '그'의 유일한 친구인지도 모른다. 모두 주고받는 게 있어야 관계를 맺는 세상에 용선이는 '그'를 시험하며 오늘도 속초에 있다.

인터넷에서 떠돌며 네티즌의 심금을 울렸던 '소년수 용선이' 이야기를 필자가 재구성해본 것이다. 여기서 '그'는 한나라당 의원들에 의해 '국회에서 암약하는 간첩'으로 매도당했다가 하루만에 누명을 벗은 이철우 열린우리당 의원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한탄강에 서면 통일이 보인다>(새움, 2004)에 이 글을 발표한 바 있다. "그는 삶을 시(詩)로써 살고 있다. 너무 아름다워서 오히려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작 자신은 울지 않으면서 의원총회장을 두 차례나 눈물바다 만들었던 이 의원을 두고 임채정 의원이 했던 말이다.

아무리 무서운 색깔론도 '진정성'과 '휴머니즘' 앞에선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여의도에서 더 많은 '그'를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