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환의 여의도칼럼] 주미대사 홍석현의 명암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주미대사 내정을 두고 여의도 정가에서 말들이 많다. 민주노동당 등 일각에선 "권언유착"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민주당 등 대다수 정당은 "실용주의적 인사"라는 호의적 논평을 내놓았다.

난마처럼 얽혀있는 한미관계와 대북문제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주미대사라는 중책과 관련해 홍 회장의 전력에는 엇갈리는 논평만큼이나 대조적인 빛(明)과 그림자(暗)가 있다. 그리고 그 명암의 농담(濃淡)과 용해도(溶解度)를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 중의 하나는 아마도 중앙일보 2002년 1월 1일자 1면 머릿기사와 신년사일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 여의도대표기자 정지환
먼저 빛부터 살펴보자. 당시 중앙일보는 1면에 '업그레이드 코리아 "품격 높은 한국을 만듭시다"'라는 제목의 머릿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에는 '중앙일보가 뽑은 2002년 10대 국가과제'가 제시돼 있었는데, 특히 그 중에서도 두 번째 과제인 "예산 1% 대북 지원에 쓰자"는 대목이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국가 예산 1%면 당시 기준으로 어림잡아 1조 1천억원. 이는 그 무렵 민간 차원에서 이루어진 대북 지원 액수와 비교해볼 때 무려 15배에서 30배를 증액하자는 파격적 주장이었다.

홍석현 회장이 다른 것은 몰라도 남북문제에 대해서만은 오래 전부터 전향적인 입장을 일관되게 지켜온 것은 사실이다. 그는 당시 공·사석에서 여러 차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더욱이 2001년 3월 15일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자문위원단 초청연설에선 "부시 행정부가 한국과 미국의 장기적 안정이란 관점에서 북한을 포용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살얼음판'에 비유되던 당시의 한미관계를 고려할 때 그것은 적지않은 용기가 필요한 발언이었다.

이번에는 그림자를 살펴보자. 2002년 벽두에 홍수를 이룬 각 언론사의 신년사 속에서 유난히 세인의 시선을 집중시킨 '물건' 하나가 있었다. '3김시대 언론을 끝내자'는 제목의 중앙일보 사설이 바로 그것이었다. '신선한 충격'이라는 표현을 써도 무방할 만큼 이 사설의 구절 구절에는 강렬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는데, 그 요지는 '갈등과 분열에서 화해와 통합으로 가자' '3김식 언론 행태의 구각에서 벗어나자' '언론개혁을 언론권력 자성의 계기로 삼자' 등 크게 3가지로 집약된다.

흥미로운 것은 중앙일보의 이 3가지 '다짐과 주장'을 뒤집어 보면, '한국 언론의 일그러진 자화상(自畵像)'이 그대로 그려진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화해와 통합보다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강자에겐 굴종하고 약자에겐 군림해온 '한국 언론의 부끄러운 전과(前科)'에 대한 통렬한 고백인 셈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중앙일보 신년사가 우리에게 던져준 가장 큰 화두는 역시 "3김식 언론 행태의 구각을 벗자"라는 상징담론의 선언에서 찾을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한국 언론은 '3김식 정치 행태'를 맘껏 조롱하고 비난해 왔지만, 정작 그들 자신이야말로 '3김식 언론 행태'에 깊이 취해 있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3김식 언론 행태'라는 것일까. 중앙일보는 "정치과잉의 단순과격형 비판자세" "정치 일색의 대안 없는 단순 일변도" "지역감정과 이념갈등의 증폭" 등을 "구태의연한 언론제작 방식"의 전형으로 규정했다. 여기서 '단순과격형 정치언론'은 결국 "대구·부산에 추석은 없다"거나 "세무조사는 언론탄압이다"라고 강변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보도 행태를 겨냥한 셈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2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거꾸로 묻지 않을 수 없다. 중앙일보는 과연 "지역감정과 이념갈등을 증폭시키는 구태의연한 언론제작 방식"에서 벗어났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실제로는 조중동이라는 언론권력의 아성에 안주하면서 조선일보와의 차별성이라는 이미지만 획득하는 얄팍한 상업주의를 추구해온 것은 아닌가?

또 하나의 궁금증. 탈세 범죄를 저지르고 검찰에 출두하던 사주에게 "힘내세요"라고 외쳤던 기자와 사원들이 주미대사로 부임하기 위해 공항으로 떠나는 사주에게도 "힘내세요"라고 외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