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떠나보낸 기러기父 건강도 멀리멀리

[건강플러스] 한국건강관리협회 경기지부 정규병 원장

자녀를 외국에서 교육하기 위해 아내와 자녀 또는 남편과 자녀는 외국에서, 남편이나 아내는 국내에서 따로따로 생활하는 가족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국립국어원은 2002년 ‘신어’ 자 료집에 기러기가족에 대해 이렇게 정의해 수록했다. 2013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배우자와 떨어져 지내는 기러기가구는 전국 115만 가구에 달하고, 기러기아빠만 사는 가구도 50만 명 이상이다.

최근에는 공공기관의 지역 이전으로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공무원을 일컫는, 이른 바 ‘괭이갈매기족’도 1만 명을 웃돌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령, 세종시로 이주한 공무원 가 운데 41%는 가족을 두고 홀로 이주했다. 문제는 홀로 지내는 기러기아빠들이 불규칙하게 생 활하는 경우가 많아 정신적·육체적 건강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는 점이다.

●생활습관병은 기본, 심리적 외로움에 우울증까지

기러기아빠들은 대개 40~50대로, 건강에 가장 신경을 써야 할 연령대다. 그런데 홀로 지내다 보니 대부분 생활 패턴이 쉽게 무너지기 십상이다. 전문가들은 “기러기아빠는 생활 리듬의 붕괴로 대사 장애 등 신체 질환을 겪기 쉽다.”고 조언한다. 불규칙한 식사로 인한 영양결핍, 체력저하, 비만 등이 나타나고 만성두통에 소화불량, 어지럼증 등에 시달리게 된다는 경고다. 또 생활 리듬이 깨진 상태에서 과도한 스트레스에 장기간 노출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심혈관질환 등 생활습관병을 키우게 된다. 실제 한 지역병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러기아빠 87명 중 52%(45명)가 소화기질환을 앓고 있었다. 이뿐만 아니다. 기러기아빠들은 무분별한 음주 습관으로 알코올의존증에 걸리는 예도 빈번하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기러기아빠들이 이 같은 신체 건강뿐만 아니라 심리적, 성적으로 외로움을 겪으면서 대부분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경고한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기러기아빠들의 스트레스는 본래 심신이 아주 건강하던 사람도 견디기 어려운 정도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 수원대 간호학과 차은정 씨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러기아빠 3명 중 1명은 우울감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문제는 이들이 우울증으로 진단을 받더라도 보호자가 없고 가족과 짧은 만남, 긴 이별을 반복하기 때문에치료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를 방치할 경우 돌연사, 자살 등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질수 있으므로 기러기아빠들을 위한 지원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사람 자주 만나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라

그렇다면 기러기 생활을 좀 더 건강하게 이어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기러기아빠들이 신체적, 정신적 힘겨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을 자주 만나면서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진단한다. 떨어져 있는 가족을 대신해 옆에서정서적인 지지를 해줄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운동이나 취미 등 다양한 동호회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기러기아빠들은 홀로 지내는 자신을 슬프게 바라보는 연민의 눈초리를 받기 싫다는 이유 등으로 사적인 모임에 나가기를 꺼리는데, 이럴 경우 고립을 자초하면서 마음의 병을 더욱 키울 수 있으므로 주의하고, 오히려 다양한 활동을 통해 외로움을 극복하려고 스스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만, 사람을 만나고 모임에 참석할 때에는 과음을 삼가야 한다. 알코올은 우울이나 불안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가족 간의 공감대를 잊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오랜 기간 떨어져 지내다 보면시나브로 문화적, 정서적 이질감으로 소외감을 느낄 수 있으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전화, 이메일, 편지, 영상통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주 대화하고 일상을 공유하도록 한다.다음으로, 규칙적인 식사 등 일정한 생활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특히 식사의 경우, 단순히 한 끼 때운다는 생각으로 지내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편식하게 되고 영양 섭취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돌보고 책임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가령, 쉽게 피곤하며 평소보다 의욕이 많이 저하되었다고 생각되거나, 잠이 오지 않고, 음주량이 늘면 정신과 등을 방문해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이 아닌지 점검한다.

또 평소 지병이 있다면 가까운 동료나 이웃에게 미리 알리고 비상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응급상황에 대비해 급하게 연락할 수 있는 비상연락처를 눈에 잘 띄는 곳에 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