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이웃 돌보는 이가 많아졌으면…”

김용해씨, 4년째 무료 급식소 운영, 최근 어려운 이웃에 쌀 200포 전달

을유년 새해를 힘차게 시작하며 저마다 신년의 포부로 가득한 요즘, 우리의 체감온도보다 더 차갑게 겨울 날씨를 느끼는 이웃들이 있다.

한편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형편껏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이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다.

그러나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듯이, 항상 생활에 바쁜 우리의 시야엔 이러한 분들이 잘 잡히지 않는다.

최근 4개 동(연무동, 지동, 우만1·2동)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쌀 200포를 전달한 김용해(55, 남)씨도 우리의 시야에 잘 잡히지 않는 곳에서 이웃을 돕는 사람이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한 벽을 메우다시피한 표창장에서 김씨의 선행에 대해 백 마디 설명이 필요가 없을 듯 싶었다.

우선 만 4년째 계속 해오고 있는 급식소(우만 2동 소재)의 근황을 물었다. 오래 전부터 더 넓은 급식소를 위해 지동에 부지를 정해놨지만, 그 지역이 화성보호구역에 걸쳐 있어 아직 건축허가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연무동 쪽이나 지금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새 급식소 부지에 대한 얘기를 듣고 기자는 다소 삐딱한(?) 질문을 던졌다. 그동안 많은 봉사활동을 바탕으로 정치 활동을 권유받지 않았는지 물었다.

“있었죠. 그 때문에 급식소 봉사활동에 도전도 받았고요.”

무슨 사연인지 귀를 쫑긋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 처음엔 카메라가 수줍은 듯 눈을 밑으로 향했던 김용해씨

“정치? 그 쪽엔 관심조차 없어요.”

“90년 우만동으로 오기 전에 매탄 2동에서도 시의회 출마 제의를 받은 적 있었지만 거절했거든요. 여기서 어떤 분들은 제가 정치적 목적으로 급식소 봉사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어요.”

계산 빠른 세속적인 시각으로는 자비를 들여 150명이 넘는 사람의 식사를 대접한다는 것이 그 속에 뭔가 의도가 있으려니 의혹을 가져볼 지도 모른다.

심지어 정치적인 의도를 갖지도 않는 김씨를 ‘잠재적 경쟁자’로 경계하는 이도 있었다. 그래서 동에서 김씨의 급식소 봉사를 중단시키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까지 있었다고 한다.

‘누가 (급식소를) 그만 두라고 해서 그만 두는 것도 아니고 그만 둘 이유도 없다’며 급식소에서 봉사하는 이들을 다잡으며 버티던 김씨는 결국 급식소를 지켜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선관위에서도 오셔서 여러 가지 묻고 가시기도 했죠.”

작년 우만 2동 시의원 보궐선거 때도 출마를 권유받았지만, 김씨는 끝내 거절했다.

“늘 오시던 어르신의 자리가 비어있을 때 가장 가슴아팠죠.”

김씨와 대화를 나누던 기자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항상 식사하시던 분들이 안 보이는 경우가 있냐고 물었다. 

“대개는 원래 거동이 불편하셨던 분이거나 편찮으신 경우죠. 그리고…”

갑자기 김씨의 눈빛이 촉촉하게 젖어짐을 느꼈다. 순간 기자는 가볍게 던진 질문의 댓가를 톡톡히 치르는 듯 가슴아픈 얘기를 들어야 했다.

“거동이 불편해 오시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배달도 나가거든요. 어느 날 배달을 나갔더니 그 어르신이 돌아가신 지 며칠이 지나 장례까지 치른 걸 알았을 때…”

잠시동안 김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기자는 얼른 김씨의 가족 사진얘기로 화제를 돌려 대화를 이어갔다. 자녀 얘기를 하다 김씨가 어려운 학생들의 후원도 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김씨는 88년부터 초·중·고 학생별로 학비를 후원해 왔다.

“제가 가장 보람을 느꼈을 때가 후원해 주던 학생이 잘 성장해서 취업도 하고 명절이나 제 생일에 찾아와 고맙다고 할 때에요.”

“그 아이들이 제 아이들과 한 상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 누구랄 것 없이 전부 제 자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김씨가 그동안 해오던 봉사활동의 계기에 대해 들었다. 한 봉사단체에 쌀 얼마를 보내다 직접 봉사현장을 찾은 김씨는 본격적으로 봉사에 나설 결심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저 지금 하는 일들을 꿋꿋하게 끝까지 욕 안 먹고 계속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씨는 주 2회 실시하던 급식봉사를 올 2월 1일부터 주 3회로 늘리기로 봉사자들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혹시라도 앞으로 바라는 것이나 소망이 있는지 물었다.

“제 소망이 있다면 점점 많은 분들이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며 함께 살아가는 계기가 많았으면 하는 것이지, 다른 것은 없습니다.”

넉넉한 미소로 배웅 받은 기자에겐 눈시울 붉어진 김씨의 얼굴이 오랫동안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