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아시아의 아체와 첸나이와 푸켓을 덮친 쓰나미(지진해일)는 하나님의 심판이다."
최근 인터넷 매체를 통해 알려지면서 큰 논란이 된 이 발언은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가 설교 중에 인용한 말이다.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아무리 다른 사람의 말을 전했다고 하지만 이것은 '망언'(妄言)이다.
아마도 김 목사에게는 인도네시아의 아체, 인도의 첸나이, 태국의 푸켓이 불로 심판 받은 아브라함 시대의 소돔과 고모라, 혹은 물로 심판 받은 노아 시대의 썩은 세상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일부(라고 필자는 믿고 싶다) 기독교인들의 정서를 여과 없이 드러낸 것으로 보이는 김 목사의 망언은 유치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이 1천만명이 넘는다는 이 땅에서 발생하는 태풍과 가뭄을 비롯한 천재(天災)와 삼풍백화점 대구지하철 참사 등 인재(人災)는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예수 시절 예루살렘에서도 비슷한 천재와 인재가 있었던 모양이다. 빌라도 총독이 희생 제물을 올리던 갈리리 사람들을 성소(聖所)에서 집단 학살한 사건과 예루살렘에 서 있던 실로암 탑이 붕괴돼 18명이나 깔려 죽은 사건에 대해 사람들이 예수에게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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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의도통신 대표기자 정지환 | ||
그렇다. 성서에 전쟁과 지진과 기근과 역병과 천재 등 인류의 대재앙을 경고하는 묵시록(默示錄)이 수없이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재앙이 운 좋게 비껴간 곳에 있던 사람이 선민(選民) 의식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심판"을 운운하는 것은 인간적으로는 물론이고 성서적으로도 적절한 행위는 아닌 듯 싶다. 오히려 쓰나미와 같은 대재앙 앞에서 현대 물질 문명의 위기를 읽어내고 인간의 겸손과 성찰을 다짐하는 것이 성서적 입장에서 마땅하다. 그리고 종교지도자들은 종교지도자 나름대로 자기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고 그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예수도 다음과 같이 경고하지 않았던가.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예복을 입고 다니기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 받기를 즐기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즐기고, 잔치에서는 윗자리에 앉기를 즐긴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고,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한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누가복음 20장 45절∼47절)
'구약성서 속의 쓰나미'였던 40일 동안의 대홍수가 끝난 후 노아는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노아는 '무지개의 언약'을 선물 받았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내가 구름을 일으켜서 땅을 덮을 때마다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서 나타날 것"이며, 그것을 "다시는 홍수를 일으켜서 살과 피가 있는 모든 것을 물로 멸하지 않겠다"는 언약의 징표로 보라고 약속한 것이다(창세기 9장 11절∼17절).
필자는 무지개에서 두개의 상징을 읽는다. 잿빛 구름을 배경으로 떠오르는 무지개, 절망 속에서 희망을 잃지 말라는 가르침일 터이다. 일곱 색깔 무지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조화해서 살라는 메시지일 터이다.
흑백 논리에 사로잡힌 종교 지도자가 여전히 득세하는 세상에서 필자를 포함한 언론인들은 언론인대로 정치인들은 정치인들 나름대로 각각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시 한번 깊이 되새겨볼 일이다.
/ 정지환 (여의도통신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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