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완벽한 한 편의 '블랙 코미디'였다.
10·26이라는 사건을 소재로 유신시절을 맘껏 조롱하고 풍자한 영화 '그때 그사람들'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도리어 이 영화를 두고 벌어진 '사회적 현상'이 그렇다는 것이다.
우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 씨가 부친의 문란한 성생활을 묘사한 영화 속의 일부 대목이 고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다며 상영금지가처분을 신청했다. 그런데 법원은 도입부와 마무리 장면에 등장하는 자료화면을 삭제하라는 '생뚱맞은'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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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지환 여의도통신 대표기자 | ||
실미도 북파 공작 훈련병 유족들이 영화 '실미도' 제작사를 상대로 냈던 똑같은 취지의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은 법원에 의해 기각 결정이 내려진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결정은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조차 일부 판사들의 이중잣대에 의해 언제든지 침해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거니와, 사법부는 지금 '그때 그때 달라요'를 연발하는 어느 개그맨을 꼭 닮았다.
그러나 이 블랙 코미디의 피날레를 장식한 주인공은 따로 있다. 조선일보 전 주필 김대중 씨는 지난 1월 31일자 조선일보에 기고한 칼럼에서 최근 일련의 "조직적인 박정희 끌어내리기"가 진행되고 있다고 진단한 뒤 이 영화를 그 용의자(?) 중의 한 명으로 지목했다.
그는 "박정희를 끌어내리려는 측에서는 그의 어두운 면을 계속 반복해서 조명하면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서서히 그의 부정적 이미지에 말려 들어갈 것이라는 계산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여기서 그가 말하는 '박정희의 어두운 면'은 박지만 씨도 지목했던 '문란한 성생활'과 무관치 않다.
그런데 조갑제 월간조선 사장의 역작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의 '문란한 성생활'과 이에 따른 가정불화와 부부싸움은 권력이 안정화된 1965년경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특히 이후락 비서실장, 박종규 경호실장, 김형욱 정보부장, 장기영 경제부총리가 옆에서 권력자의 '주색잡기'를 부추겼는데, 육 여사가 이들을 미워했다는 대목이 책 곳곳에 등장한다.
그러나 사실 박 전 대통령이 술과 여자에 탐닉하며 비극적 종말의 씨앗을 잉태하기 시작한 시점은 조갑제 사장의 설명처럼 1965년경이 아니다.
더욱이 '비련의 여인' 육영수 여사가 이후락, 박종규, 김형욱, 장기영보다 더 먼저, 더 강렬하게 미워하고 증오했던 인물은 따로 있었다.
조선일보 방일영 전 회장이 바로 그 장본인이다.
실제로 방 전 회장은 자신의 회갑기념문집에서 이미 1963년 대통령 선거 첫 유세가 있던 날 박정희와 통행금지를 넘기면서까지 질펀하게 '기생술판'을 벌였다가 육 역사의 미움을 받은 적이 있다는 것을 은근히 자랑한 적도 있다(이런 사례는 이밖에도 적지 않지만 지면관계상 생략한다).
조선일보가 발간한 <격랑 60년―방일영과 조선일보>에도 방일영이 털어놓은 무용담(?)이 소개돼 있는데, 그 일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호텔 방에 조촐한 주안상이 차려지고, 방일영은 박정희와 독대로 마주앉았다. 대통령의 체통상 요릿집에 자리를 마련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무르익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대작이 시작되자마자 방안의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복도까지 새어나온 것이다."
당시 복도를 지키던 경호원들은 아연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방안에서 다음과 같은 불경스런(?) 대화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대통령 형님, 한잔 쭈∼욱 드십시오."
"내가 좀 과한 것 같은데…."
"아니, 제가 대통령 형님 술 실력을 모르는 사람입니까?"
처음에 '대통령 각하'로 시작한 호칭은 어느새 '대통령 형님'으로 바뀌어 있었고, 젓가락 장단에 실린 노래 소리가 유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뒤섞여 방문 밖으로 흘러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그 이튿날 대통령의 오전 스케줄이 모두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조선일보 족벌사주가 자랑삼아 털어놓은 이 일화들은 정말 누가 박정희를 조직적으로 타락시켜 권좌에서 끌어내린 장본인인지 묻게 한다.
그래서였을까. 한 원로언론인이 피날레를 장식한 이 '블랙 코미디'의 뒷맛은 '블랙 커피'만큼이나 씁쓸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