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환의 여의도칼럼] 여의도 단상

   
▲ 여의도통신 정지환 대표기자
여의도(汝矣島).

한강 하류에 발달한 범람원이자 섬이다. 동쪽과 서쪽으로 각각 새끼 섬(밤섬)과 새끼 강(샛강)까지 끼고 있는 여의도의 역사를 백과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다.

"1916년 일제에 의하여 이곳에 간이비행장이 건설되면서 섬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1968년 윤중제(輪中堤) 공사를 착공한 뒤 한국의 정치 · 경제 · 문화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었다. 서쪽으로는 국회의사당, KBS 본관, SBS 방송국, 동아일보사(별관) 등이 있고, 동쪽에는 MBC 방송국, 전국경제인연합회, 증권거래소, 아파트단지가 있다."

그렇다. 여의도는 "한국 정치의 중심지"이거니와, 국회의사당이 이곳에 있기 때문에 붙은 별칭일 터이다. 아울러 우리 매체를 '여의도통신'이라고 작명(作名)한 1차적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중심지' 대신에 '1번지'라는 용어를 쓰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한국 정치의 '중심지' 혹은 '1번지'로써의 여의도의 아우라(aura)가 그렇게 건전한(?) 것만은 아닌 듯하다. 실제로 여의도통신 출범을 앞두고 자문을 구했던 많은 사람들 중 한 분인 박노해 시인은 여의도에 대한 '부정적 아우라'를 거론하며 여의도통신이란 명칭에 우려를 표명해 주시기도 했다. 사실 그런 의견을 주신 분은 박 시인만이 아니었다.

그런 충고를 들으며 필자는 문득 나중에 일본 총리를 지낸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가 구마모토현 지사 선거에 출마하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1971년 33세의 나이로 참의원에 당선된 그는 재선에 성공하며 자민당 부간사장과 대장정무차관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이른바 '잘 나가던' 중앙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지방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된다. 1983년 참의원을 '때려치우고' 고향인 구마모토현 지사 선거에 출마한 것이다.

정치가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인정받아 중앙 정계에서 승승장구하던 호소카와가 45세의 나이에 스스로 '중앙' 대신 '지방'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자신의 저서 <지방의 논리>에서 그 이유를 "아무리 애써도 도무지 바뀌지 않는 '나가타쬬(永田町)의 논리'에 지쳐버렸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그는 "나의 꿈이 부풀면 부풀수록 중앙 정계의 정체에 염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다면 호소카와를 지치게 했던 '나가타쬬의 논리'란 무엇일까. 그것은 한국의 '여의도 정치'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의 여의도와 그 주변에 국회의사당, 국회의장 공관, 의원회관, 주요 정당의 당사가 집중적으로 분포해 있는 것처럼, 도쿄의 나가타쬬란 공간에도 국회의사당, 수상 관저, 의원회관, 자민당·사회당 본부가 밀집해 있다.

장만기 인간개발연구원 회장의 주선으로 일전에 일본 민주당 국회의원 7명을 만났을 때 여의도통신을 설명하기 위해 '여의도'를 거론하자 옆자리에 앉아있던 백진훈 의원(재일동포 출신 참의원)이 "아, 한국의 나가타쬬"라고 언급했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결국 나가타쬬는 '일본 정치의 1번지'를 상징한다.

그러나 동시에 일본에는 "나가타쬬의 상식은 국민의 비상식"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일반 국민의 정서와 철저하게 괴리된 일본의 중앙 정치를 가리키는 말일 터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여의도 상식'은 과연 '국민의 상식'과 '국민의 비상식' 중 어느 쪽과 더 가까운가?

설 연휴를 끝낸 17대 국회는 14일부터 대정부 질문을 시작으로 임시회기 가동에 들어갔다. 첫날부터 홍준표 의원과 이해찬 총리의 '살풀이 신경전'도 연출되긴 했지만 질의에 나선 의원들은 '정쟁'보다 '정책'에 집중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중앙과 지방, 여당과 야당, 기업과 노조 등 각 사회 갈등의 영역에서 사회협약을 체결하자는 이은영 의원의 제안은 인상적이었다.

'여의도 상식'이 '국민의 상식'과 좀더 자주 행복하게 만나기를 기대해 본다.

정지환(여의도통신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