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문화(文話) 시대] 국민이 직접 뽑은 명소 수원 화성, 역사와 일상이 만나는 자리

문체부·관광공사 ‘100X100 프로젝트’ 데이터로 읽는 우리 여행의 변화
최승호 문화에디터
최승호 문화에디터

지난 19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흥미로운 관광 지도를 내놓았다. 이름하여 ‘대한민국 명소 발굴 100X100 프로젝트’. 여행 전문가 100명의 추천에 국민 4만여 명의 표를 더해 전국 6,300여 곳의 숨은 여행지를 정리한 빅데이터다. 화려한 수치보다 눈길을 끄는 건 표심의 방향이다. 수많은 데이터가 가리키는 지점엔 요즘 우리가 진짜 바라는 여행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자랑거리’ 대신 ‘한 끼의 온기’ 찾는 사람들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장소들은 뜻밖에도 웅장한 자연경관이나 대형 박물관이 아니었다. 국민들이 꼽은 최상위 키워드는 ‘착한 가격 식당’과 ‘오래된 노포’, 그리고 ‘제철 음식’이었다. 화려한 휴양지나 인스타용 사진 맛집 대신, 오랜 세월 골목을 지켜온 빵집과 전통시장, 정갈한 밥집이 명소 목록 상단을 채웠다.

어디를 다녀왔는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형 여행’에서, 지친 일상을 묵묵히 다독여주는 ‘휴식형 여행’으로 중심축이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행의 기준이 자랑거리가 아닌, 내가 그곳에서 얻은 안식의 크기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문화체육관광부·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명소 발굴 100X100 프로젝트’
문화체육관광부·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명소 발굴 100X100 프로젝트’

경기도의 저력, 그리고 수원 화성이라는 오래된 랜드마크
전국 지자체 중 경기도는 882곳을 목록에 올리며 단단한 저력을 보여줬다. 그 중심에는 단연 ‘수원 화성’이 있다. 수원 화성은 경기도 내 수많은 명소 중 가장 많은 표를 얻어 ‘지역 최다 득표’를 기록했다. ‘시간을 잇는 읍성·산성’이라는 주제별 집계에서도 전국 8위에 오르며 변함없는 사랑을 확인했다.

정조의 개혁 철학이 서린 성벽은 더 이상 박물관 유리에 갇힌 유물이 아니다. 해 질 녘 도심 불빛을 바라보며 걷는 밤 산책로이자, 주말이면 시민들이 가볍게 걸음을 내딛는 일상의 쉼터다. 수백 년 역사가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의 삶과 자연스럽게 겹쳐질 때, 문화유산은 비로소 진짜 생명력을 얻는다.

성벽 아래 카페, 노포의 튀김 냄새… 역사와 골목의 교차점
수원이 더욱 다채로운 도시로 다가오는 이유는 성벽 하나에만 매여 있지 않아서다. 성곽길을 따라 내려오면 옛 통닭거리의 고소한 기름 냄새와 남문시장의 시끌벅적함이 오감을 자극한다. 행궁동 골목길(행리단길)에는 저마다의 취향을 품은 작은 찻집과 공방들이 빼곡하고, 차로 조금만 이동하면 광교호수공원의 탁 트인 수변이 펼쳐진다.

역사 기행과 골목 탐방, 호수 산책이 한 도시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굳이 멀리 떠나지 않고도 여행이 주는 생경함과 편안함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장소. 수원이 이번 조사에서 높은 지지를 받은 이유도 이 호사스러운 조화로움에 있을 것이다.

길 위에서 만나는 진짜 이야기
잘 만들어진 관광 지도의 가치는 대단한 거점을 나열하는 데 있지 않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집 앞 골목, 오래된 식당의 식탁, 작지만 기품 있는 정원 하나에도 소중한 가치가 숨어 있음을 일깨워주는 데 있다.

마침 수원화성 일원에서 열리고 있는 ‘수원 국가유산 야행’이 오는 30일까지 연장 운영된다고 한다. 이번 주말, 성벽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겨보는 건 어떨까. 성곽 아래 작은 찻집에서 차 한 잔을 기울이고, 노포에서 따뜻한 온기를 나누는 일. 국민들이 직접 지도를 그리며 그려봤던 여행의 풍경은 그리 멀지 않은 우리 곁에 있다.

최승호 문화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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