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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은 백웅 이병희 선생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수원에서 7선 국회의원을 지낸 그는 경기도청 이전과 수원화성 복원, 기업 유치 등 수원이 성장하는 과정에 굵직한 흔적을 남겼다. 그 뒤에는 중앙정부와 기업, 공직사회와 지역을 연결했던 그의 헌신이 있었다. 수원일보는 탄생 100년을 맞은 백웅 이병희 선생과 수원이 함께한 시간을 되짚어본다.
1960년대 수원은 여전히 농업의 색채가 짙은 도시였다.
서둔동에는 농촌진흥청의 전신인 농사시험기관과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이 자리하고 있었고, 도시 외곽으로 조금만 나가면 논과 밭이 펼쳐졌다.
대한민국이 산업화에 들어서면서 이 풍경도 빠르게 달라졌다. 선경직물과 대한방직에 이어 선경합섬과 한일합섬이 들어섰고 금강스레트와 연초제조창이 자리 잡았다. 매탄동에는 당시 대한민국이 새롭게 도전하던 전자산업의 거점인 삼성전자가 들어왔다.
농업도시 수원이 산업도시로 넘어가는 과정이었다.
이병희는 수원에 기업을 끌어들이는 데 적극적이었다. 여러 기록에는 삼성전자와 선경합섬, 한일합섬, 연초제조창 등의 수원 유치 과정에서 이병희가 역할을 했다고 전한다.
가장 상징적인 사례가 삼성전자다.
1960년대 후반 삼성 창업주 이병철은 새로운 사업으로 전자산업을 선택했다. 1969년 삼성전자공업이 설립됐지만 당시 대한민국의 전자산업은 걸음마 단계였다.
이병희와 이병철의 인연은 그보다 앞서 시작됐다. 관련 기록에는 5·16 이후 이병희가 이병철과 박정희의 면담을 주선하면서 관계를 맺었고, 이후 이병철에게 수원을 전자산업의 거점으로 권했다고 전한다. 동생 이병성과 함께 직접 공장 부지를 찾아다녔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다.
처음 삼성 측이 관심을 보인 곳은 천천동 일대였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캠퍼스가 자리한 곳이다.
그러나 대규모 공장을 짓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이 내려졌고 새로운 부지를 찾았다. 그렇게 선택한 곳이 매탄동이었다.
당시 매탄동 일대에는 넓은 농경지가 펼쳐져 있었다. 삼성은 이곳에 대규모 부지를 확보했고 수원시는 공장이 들어설 수 있도록 행정구역과 도시계획을 정비했다. 1970년 삼성전자는 흑백TV 생산을 시작했고 이듬해에는 수출에도 나섰다. 이후 냉장고와 세탁기 등으로 생산품목을 확대하면서 수원은 삼성전자 성장의 주요 거점이 됐다.
지금의 삼성전자를 생각하면 당연해 보이지만 당시에는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삼성전자는 이제 막 출범한 회사였다. 반도체도 스마트폰도 없었다. 그런 기업이 논밭이 펼쳐진 동수원에 전자산업의 터전을 잡았다.
그 당시 서수원에는 섬유산업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오늘날 SK그룹의 모태인 선경직물은 평동에 둥지를 텄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공장을 다시 일으킨 선경은 직물에서 출발해 화학섬유와 원사로 사업을 확장했다. 선경합섬 수원공장이 들어섰고, 이 과정에서도 이병희는 힘을 보탰다.
매산로 일대에는 대한방직이 있었다. 오랫동안 수원을 대표하는 섬유공장 가운데 하나로 수원역 주변의 산업 풍경을 만들었다.
조원동에는 한일합섬이 자리 잡았다. 대규모 사업장이었던 한일합섬 역시 이병희가 수원 유치에 힘을 쏟은 기업으로 기록돼 있다.
건축자재 산업도 들어왔다. 오늘날 KCC의 전신인 금강스레트가 수원에 공장을 세웠다. 화서동에는 대규모 연초제조창이 들어섰다.
평동에는 선경직물과 선경합섬, 매산로에는 대한방직, 조원동에는 한일합섬, 서둔동에는 금강스레트, 정자동에는 연초제조창, 매탄동에는 삼성전자가 자리 잡았다. 수원 곳곳에 서로 다른 산업의 거점이 생겼다.
공장은 도시도 바꿨다. 일자리를 찾아 노동자와 가족들이 들어오면서 주택과 학교가 필요해졌고 도로와 상권이 확장됐다. 공업용수와 생활용수 수요도 늘었다. 기업과 인구를 받아들이기 위한 토지구획정리와 기반시설 확충이 뒤따랐다.
특히 삼성전자가 자리 잡은 매탄동을 중심으로 동수원 개발이 빨라졌다. 성곽 주변과 수원역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도시가 동쪽으로 뻗어나가는 계기가 됐다.
삼성이 처음 공장 부지로 검토했던 천천동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삼성의 학교법인인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캠퍼스가 들어서면서 북서수원에는 새로운 교육·연구 거점이 만들어졌다.
기업 유치는 공장 몇 곳을 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수원의 생활권과 도시공간을 확장시키는 동력이 됐다.
반세기가 지나면서 당시 공장 상당수는 사라지거나 수원을 떠났다. 대한방직과 한일합섬 공장은 문을 닫았고 연초제조창도 생산시설로서 역할을 마쳤다. 제조업 중심이었던 수원의 산업구조도 연구개발과 첨단산업 중심으로 변했다.
그러나 당시 수원에 뿌리내렸던 기업 가운데 일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삼성전자는 세계적인 전자·반도체 기업이 됐다. 매탄동 수원사업장 역시 제품을 생산하던 공장에서 연구개발 중심의 삼성 디지털시티로 변했다.
평동에서 직기를 돌리던 선경은 SK그룹으로 성장했다. 섬유에서 출발해 에너지와 통신으로 사업을 넓혔고, 2012년 하이닉스를 인수하면서 반도체를 핵심 사업으로 품었다.
2026년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을 떠받치는 두 축이다.
이병희가 기업 유치에 매달린 데에는 지역의 미래를 일자리와 산업에서 찾아야 한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 지역의 미래를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했고, 사람이 모이려면 일자리가 있어야 했다. 이를 위해 기업과 새로운 산업을 수원에 끌어들이려 했다.
그 결과 수원에는 공장이 들어섰고 사람이 모였다. 산업을 따라 도시가 커졌고, 그 과정에서 성장한 기업 가운데 일부는 세대를 넘어 대한민국의 핵심 산업을 이끌고 있다.
1960년대 매탄동의 논밭에 들어선 삼성전자는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이 됐다. 평동에서 성장한 선경의 이름은 SK로 바뀌었고, 그 그룹은 SK하이닉스를 품어 또 하나의 반도체 축을 세웠다.
당시에는 누구도 지금의 모습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결과는 선명하다.
이병희는 단순한 공장이 아닌 미래의 산업을 남겼다. 당대에 뿌린 씨앗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미래 세대가 먹고살 산업으로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