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일보=서동영 기자] 국가보훈처가 3·1운동 101주년을 맞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수원지역 독립운동가 김세환(金世煥, 1889~1945) 선생을 선정했다.
수원시 남수동 242번지에서 태어난 김세환 선생은 3·1운동 민족대표 48인 중 한 사람으로 수원과 이천, 충남지역의 독립운동 조직 활동을 주도하고, 수원지역 교육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어릴 적 성안 보시동의 감리교회(현 북수동 수원 종로교회)를 출입하며 기독교 신앙뿐 아니라 교육가로서 또는 독립운동가로서 꿈을 키웠다.
이후 서울의 관립 외국어학교로 진학한 김세환 선생은 일본으로 건너가 중앙대학에서 신학문을 접한 뒤 수원으로 돌아와 상업강습소(현 수원중·고교) 직조 감독관으로 일하는 동시에 삼일여학교(현 매향중학교·매향여자정보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교직에 몸담았다.
3·1운동 48인 민족대표로도 활동했다. YMCA 간사였던 박희도를 통해 3·1운동 준비 모임에 참가해 충남지역과 수원지역의 조직 책임자로 활동했다.
지역 교회의 주요 인사를 만나 민족대표로 서명하도록 승낙을 받은 그는 서울로 도착하는 시간이 늦어져 독립선언서에 기명은 하지 못했다.
만세운동에 참여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된 김세환 선생이 법정에서 “이후에도 조선의 독립을 위해 계속 운동할 것인가?”라는 재판장의 물음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1년여의 옥고를 치른 김세환 선생은 1920년 10월 석방돼 수원으로 돌아왔다. 일제의 간섭으로 교사로는 복직하지 못하고 시내에서 곡물상을 운영하며 사회활동과 지역 유지로서 활동했다.
1927년 신간회에 참여하면서 수원지회장과 수원체육회장을 역임하는 등 민족주의 운동을 지속했다.
이후 김세환 선생은 수원강습소였던 화성학원(현 수원고)과 삼일여학교 및 종로교회를 근거로 활동하며 후학양성과 수원지역 교육계를 위해 헌신했다.
그러다 1945년 해방을 맞고 한 달 남짓 시간이 흐른 9월 16일 자택에서 운명했다. 그는 국립묘지에 안장됐으며,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국가보훈처가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수원의 민족정신을 지킨 지도자 김세환을 선정한 것에 발맞춰 수원박물관은 수원지역 독립운동가들을 위한 상설전시공간을 마련했다.
3월부터 수원박물관 역사관의 상설전시 코너 ‘수원 근대의 인물’을 ‘수원의 독립운동가’ 코너로 새롭게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상설전시는 민족대표 48인이었던 김세환 선생(독립장)을 비롯해 일제에 끊임없이 저항하며 자주독립을 외쳤던 수원의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를 알리는 내용이 구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