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 (181)] ‘이곳에 부질없이 황학루만 남았네’
[김승종의 문학잡설 (181)] ‘이곳에 부질없이 황학루만 남았네’
지난 8월 14일 이번 중국여행 2일차 이른 아침. 직관의 감식안으로도 유명한 중국 송나라의 대서예가 미불(米芾 : 1052-1107)이 ‘천하강산제일루(天下江山第一樓)’라 했던 ‘황학루(黃鶴樓)’[중국 호북성 무한시 장강 강변]에 가려고 일행과 택시를 탔으나, 다음 기회에 사정을 이야기하겠는데, 호텔로 돌아오는 질주하는 택시 안에서 바라보기만 하였다.
가로에 늘어선 빌딩 너머 멀리서 솟아오른 그 누각의 상단부와 지붕만 겨우. 병풍에 그린 그 그림을 애지중지 감상하며 실제 보지 못해 못내 유감스러워 했던 고려 조선의 선비들보다도 오히려 못한 처지가 되다니. 제대 직후 이른 아침, 오르막 긴 골목을 오르고 돌아야 닿던 한 어른의 집 작은방에서 강독하던 『고문진보(古文眞寶)』에서 최호(崔顥 : 704-754)의 「등황학루(登黃鶴樓)」를 읽은 이래, 언젠가 꼭 가보겠다고 했다.
昔人已乘黃鶴去(석인이승황학거) : 옛 그 사람은 이미 황학을 타고 떠나갔고
此地空餘黃鶴樓(차지공여황학루) : 이곳에 부질없이 황학루만 남았네
黃鶴一去不復返(황학일거불부반) : 한 번 떠난 황학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데
白雲千載空悠悠(백운천재공유유) : 흰 구름만 부질없이 유유히 천년을 떠돌고 있네
晴川歷歷漢陽樹(청천력력한양수) : 비 갠 장강 너머 한양 땅에 나무숲 뚜렷하고
春草萋萋鸚鵡洲(춘초처처앵무주) : 강 가운데 앵무주에는 봄풀 무성
日暮鄕關何處是(일모향관하처시) : 저무는 해 해질녘 노을 내 고향은 어디에 있나
煙波江上使人愁(연파강상사인수) : 안개 서려 흐르는 물결은 사람을 시름에 젖게 하네
그날 오전에 강서성 응담시(鷹譚市)로 가는 열차에서 휴대폰 인터넷을 열어 황학루 정경과 「등황학루」를 찾았다. 우선 보기에, 유장한 세월과 아득한 무상(無常), 심상찮은 방랑과 가없는 향수를 다룬 시. 여전히 시인의 넓고 긴 시선과 관련 정서가 매력 있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선지 호사가 심정에선지 당나라 전체 칠언율시(七言律詩)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압권]이라는 전래의 평가에 그대로 승복하기가 주저되었다. 독자들에게도 그럴 것 같고. 또 이백(李白 : 701-762)이 황학루에 왔다가 경관에 감탄했지만 게시된 이 시를 읽고는 작중 묘사를 능가할 시구를 지을 수 없어 시 짓기를 포기했다는 시화(詩話)도 그대로 믿기에 주저.
하지만 선인들의 평가를 외면하기도 어려워 나름대로 그 이유를 모색해보았다. 우선 1, 2행을 한번 읽고 쉽게 지나쳐서는 안 되지 않나 한다. 뛰어난 학자이자 문인이기도 한 청나라 건륭제(1711-1799)가 ‘강한선종(江漢仙蹤)’이라 언급했듯, 황학루는 무엇보다도 그 정체성이 선도(仙道)와 관련되어 있다. 역대에 군사기지, 명승관광, 시회나 전별의 장소 등으로 인식되고 활용되어 왔지만 애초에 선도 추구에서 발생한 누각, 다시 말해 한 도사의 성선(成仙) 이야기가 그 건축의 연원이다. 이 배경은 황학루와 더불어 중국 강남의 3대 누각인 악양루, 등왕각에는 없는 수승한 자산. 신선은 아시다시피 인간의 시공 한계를 초월한 존재이며 그 기본은 여전히 사람이다. 1행에서 제시된 ‘석인[昔人 : 옛 그 사람]’ 이야기를 『무창지(武昌志)』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미리 말해 유향(劉向 : 기원전 77년-기원전 6년)의 『열선전(列仙傳)』에 수록된 선화(仙話 : 신선소설)들과 같은 구조라서 추가 수록한다 하더라도 어색하지 않아 보인다.
강하군(江夏郡)에 신(辛)씨가 술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낡은 옷을 입은 몸집이 큰 선비 한 사람이 와 술을 주겠느냐고 물었다. 신씨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 선비는 그로부터 반년 동안이나 그곳에서 술값을 한 푼도 내지 않고, 그것도 큰 잔으로만 술을 마셨다. 그래도 신씨는 조금도 싫어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선비는 신씨에게 그동안 밀린 술값이 많은데 갚을 수가 없다며, 대신 그림 하나를 그려주겠다고 했다. 선비가 귤껍질로 벽에 학을 그리니 황학이 되었다. 술집의 손님들이 손뼉을 치며 노래 부르면, 학이 그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려고 신씨의 술집에 모여 들었다. 십년 동안 신씨는 수만금을 모았다. 그뒤 선비가 다시 신씨를 찾아오니, 신씨는 무엇이든 바라는 대로 다 들어 주겠다고 했다. 선비는 잠시 웃더니 피리를 꺼내어 몇 곡 불렀다. 흰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벽에 그려놓았던 학이 선비에게 날아 내려왔다. 마침내 선비는 학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이에 신씨는 누대를 세우고, 황학루라 이름하였다.
- 황견 편, 이장우 우재호 장세후 역, 『고문진보(古文眞寶)』, 을유문화사 2001, 272쪽
『열선전』 작품들에서 반복되는 구조로 보면, 강가 술집에 나타나 외상술 청하는 선비는 음주로 선도(仙道)를 수련하는 도사, 귤껍질로 그린 황학과 황학의 신기한 춤은 선비의 도술, 신씨가 번 수만금은 선도 친화 선행에의 보답[보은], 십년 후에 나타난 선비가 벽의 학을 불러내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은 그간 수행으로 천선(天仙)을 성취하는 국면, 그 입증에 해당한다.[참고로 명강과 명산으로 가는 신선은 지선(地仙), 죽었다가 부활하는 신선은 시해선(尸解仙)] 그리고 여기서 학은 천선과 지선이 공간초월에서 동반 활용하는 ‘영물(靈物)’이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흰 구름’도 영물의 일종이며, 여기서는 하늘의 선경(仙境)에서 파견된 사자(使者)이기도 하다.[참고로 『열선전(列仙傳)』에서 등장하는 영물은 이 둘 이외에도, 용, 봉황, 잉어, 거마(車馬), 개, 오이, 풍우, 연기, 회오리바람, 나무로 만든 양, 하급신선 등이 있다]
이런 선도 이야기와 지향을 이 시 감상에서 간과하거나 소홀히 한다면 이어지는 2행 ‘이곳에 부질없이 황학루만 남았네’란 탄식을 이해하기 쉽지 않거나 아무래도 미진해질 것이다. 1행에 이미 함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2행에서 황학루는 대단한 경물로 즉 찬미의 대상으로 제시되지 않고, 그저 무상을 자아내는 빈 공간으로 부각되고 있다. 즉 신선도 황학도 없는 황학루는 아무리 미려하고 웅장하여도 별 의의가 없다는 취지이며, 시인의 선도 지향을 적극 시사한다. 이런 저의는 2행과 4행에서 중복을 무릅쓰고 반복되는 ‘空(부질없이)’, 이 조사(措辭)에서도 알 수 있다. 천하의 황학루를 이렇게 접근하는 시인의 자세에 독자들은 반감보다도 놀랄 것이며, 또 생각이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
3, 4행은 1, 2행의 부연. 1, 2행의 메시지와 정서를 강조하고 있고,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1, 2행에 금방 수렴되는 메시지와 정서로, 그 중복으로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역대 평자들은 시상 전개와 음미에 필요한 부연, 즉 전자로 보았다고 하겠다. 즉 굳이 3행을 중복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4행 ‘흰 구름만 부질없이 유유히 천년을 떠돌고 있네’는 시인의 현재 시선과 당시 황학루의 하늘 정경이 잘 환기한다. 천 년 전에 사라진 황학과 그 때나 이후에도 유유히 흘러가고 흘러오는 흰 구름. 이 둘은 이 시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필연이며, 동시에 대비도 잘 되어 서로 이미지를 더 선명하게 한다. 그 함축 의미도.
5, 6행에서도 당시 현지의 경물 경치 묘사가 이어진다. 경관 묘사는 4행만으로는 부족해 이어져야 하며, 5, 6행은 둘 다 누각 아래 정경을 묘파한다. 누각 위를 묘사한 4행과 역시 대조되고 있다. 특히 6행은 이 시의 결말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전환을 준비하는 시구여서 그 의의가 중첩된다. ‘강 가운데 앵무주에는 봄풀이 무성하네’에서, ‘봄풀[春草 : 芳草(방초)라는 판본도 있는데, 결국 같은 뜻]’은 중국 시에서 향수와 귀향의 모티프이기도 하다.[원천으로 『초사(楚辭)』 「초은사(招隱士)」의 시구, “王孫有兮不歸(왕손유혜불귀 : 왕손은 떠나 돌아오지 않는데) 春草生兮萋萋(춘초생혜처처 : 봄풀만 무성하게 자라나네)”가 지목된다]
따라서 이 시는 『초사』의 전통을 이었으며, 직후 7행 ‘저무는 해 해질녘 노을 내 고향은 어디에 있나’가 어색하지 않다. 만약 우리가 봄풀 모티브의 의의를 모른다면 7행은 8행 ‘안개 낀 언덕에서 시름에 젖게 하네’와 함께, 갑작스럽고 느닷없는 전환으로 어색하게 여기며, 심지어 이전의 맥락에서 벗어난 상투성 결미로까지 볼 수도 있다. 사실 필자는 처음에 그런 입장이었다.
※ ‘김승종의 문학잡설’은 이번 회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과 필자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