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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칼럼 심재덕은 ‘영원한 수원시장’이 되었다

Preparing the English translation… (한국어 원문 표시 중)
김우영 논설위원 / 시인

‘그이가 갔다/아마도 전생에 정조대왕이었을 사람/아마도 채제공이거나 정약용이었을 사람/왔던 자리로 그이가 돌아갔다//수원의 큰 나무였던 이/광교산처럼 듬직했던 이/서둔 들판처럼 품이 넓었던 이...(중략)...하지만 그이는 아직 수원의 심장 속에 살아계신다/가슴 속을 흐르는 생명의 수원천으로/서호의 아름다운 노을로/빛나는 세계문화유산 화성으로/팔달산 솔숲을 지나가는 푸른 바람으로/언제까지나 거기 계신다/거기 계신다’

2011년 2주기 추념식에서 추모시 낭독을 하고 있는 필자.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김기수)
2011년 2주기 추념식에서 추모시 낭독을 하고 있는 필자.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김기수)

허어, 벌써 12년 전의 일이다. 2009년 1월14일 ‘영원한 수원시장’ ‘미스터 토일렛’으로 불리던 심재덕 시장이 세상을 떠났으니.

그날 부음을 듣고 급히 조퇴를 한 후 사진작가 이용창 형과 함께 택시를 타고 연화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나혜석 거리에서 밤늦게까지 통음(痛飮)을 했다.

수원문화원장으로 취임한 그를 만난 것은 1987년.

어느 날 저녁 집으로 전화가 왔다.

“이번에 수원문화원장이 된 심재덕입니다. 만나서 의논드릴 일이 있으니 수원문화원으로 방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서 수원문화원에 나를 비롯, 임병호 시인, 김상용 수원시립교향악단 단무장, 송철호 수원시립합창단 단무장, 남부희 화백 등이 모였다.

“수원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홍보가 부족한 탓에 공연장과 전시장이 텅텅 비고, 문화예술을 향유하고 싶은 시민들도 정보가 없는 탓에 접근을 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원문화원이 월간 문화소식지를 발행할까 합니다.”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 이에 반대할 사람은 없었다.

‘수원사랑’이란 잡지는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소지하고 다니기 쉽게 판형은 포켓판으로 결정됐고 매달 발행하기로 했다. 재원은 처음엔 심 원장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그러다가 지역사회의 협찬을 받아 발행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몇 번 글을 쓰자 택시기사가 나를 알아 볼 정도였다.

이어 한 여름밤의 음악축제, 정월 대보름 민속놀이한마당, 성곽순례 등 굵직굵직한 문화 사업들이 시작됐다. 그리고 수원천 복개반대운동, 수원화성행궁 복원사업, 서호 개방운동, 팔달산 터널 반대운동 등을 잇달아 펼쳤다. 그 추진력과 뚝심, 번득이는 아이디어에 항상 감탄했다.

심 시장에게 고맙고, 나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운 것은 나도 그 사업들의 한축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심 전 시장은 1995년 민선 1~2기 수원시장을 역임했다. 놀랍게도 무소속이었다. 그는 ‘지방선거 정당 공천 폐지론자’였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당적을 가져선 안 된다고 역설했다.

수원시장에 이어 2004년엔 제17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2007년 전립선암 진단을 받은 후에 세계화장실협회를 창립, 초대 회장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다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겨우 70세였다.

수원문화원장으로서, 민선 수원시장으로서, 국회의원으로서, 그리고 세계화장실협회 회장으로서 그가 남긴 업적은 실로 엄청나다. 나는 수원의 3대 인물로 정조대왕과 이병희 의원, 심재덕 시장을 꼽는다. 정치적인 입장을 떠나서 수원사람들은 이들을 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수원문화원장 시절부터 수원시장 재직 기간 동안 서울 청계천보다 10년 먼저 수원천을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시켰다. 우리는 이를 ‘수원천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또 수원화성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시켰다.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비관적이었던 정부 관계자의 만류를 뿌리치고 단신으로 프랑스 파리로 날아가 세계 각국의 위원들을 설득시켜 등재를 성공시킨 것이다.

수원문화원장 시절부터 추진했던 화성행궁 복원사업도 이어져 시장 재임 때 복원 공사가 시작됐다. 그로 인해 전 세계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문화관광의 도시가 됐다.

2002년 월드컵 경기를 수원에 유치하고 월드컵 경기장을 지은 것도 그의 남다른 노력과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마지막 생명을 투자하면서까지 매진한 것은 화장실문화운동이었다. 수원시내의 공중화장실을 혁명적 수준으로 개선했다. 세계화장실협회를 창립하고 본부를 한국에 유치했다. 아예 자신의 집을 변기 모양으로 짓고 택호를 ‘해우재’라고 명명했으며 유족들은 2009년 해우재 건물과 땅, 유품을 수원시에 무상으로 기증했다. 기피 시설인 화장장(연화장), 쓰레기 소각장, 하수종말처리장 등도 그의 재임 중 건립했다.

심재덕은 지방자치의 자존심을 지킨 사람이었고, 지방자치시대 문화사업의 선구자였으며, 수원을 세계화장실문화의 메카로 만들며 세계 화장실 운동을 이끌었던 거인이었다.

영원한 ‘미스터 토일렛’을 기억합니다 홍보 포스터.
'영원한 수원시장 심재덕' 추모 12주기 홍보 포스터.

㈔미스터토일렛심재덕기념사업회가 14일 심재덕 전 수원시장의 12주기를 맞아 추모영상을 만들어 공개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방식으로 온라인 추모를 기획한 것이다.

“늘 웃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힘들더라도, 짜증이 나더라도, 여러분들이 웃을 때 얼굴 표정과 가정부터 사회가 맑아진다고 생각한다”고 새해 덕담을 하는 생전 모습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그와 함께 했던 세월은 참 행복했다.

김우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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