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주교 남양성모성지 활성화와 불교 당성 원효(元曉)성지 조성 필요

 

모처럼 시간이 남거나 술꾼들의 연락이 없는 날엔 버스를 타고 시외로 나간다.

나이 들면서 다른 지역보다는 화성시, 그 중에서도 서쪽으로 향하는 일이 잦다. 그곳, 옛 주소 화성군 봉담면 수영리 282번지가 내 고향 땅이기 때문이다.

수구초심(首丘初心), 근본을 잊지 않는다는, 죽으면 자신의 고향땅에 묻히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지난 번 칼럼에서도 밝힌 것처럼 내가 살던 마을은 이미 거대한 아파트 단지로 변했다. 가봤자 어디가 어딘지 도저히 알 수 없다. 그래서 남양이나 사강, 발안, 제부도 쪽으로 자주 간다. 이웃동네 마실가듯.

거기서 장터구경도 하고 허름한 대폿집을 발견하면 막걸리도 한 병 마시고 온다.

화성시 남양읍 남양성모성지. (사진=화성시 포토갤러리)
화성시 남양읍 남양성모성지. (사진=화성시 포토갤러리)

신앙의 신비가 일어난 남양성모성지

특히 남양에 자주 간다. 남양성모성지가 잘 가꾸어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세례에 견진성사까지 받은 천주교 신자지만 성당에 나가지 않은 지 몇 십 년이 되는 이른바 냉담자다. 천주교가 싫은 건 결코 아니다. 그저 게으름이 일상화됐기 때문이다.

남양성지를 자주 방문하는 이유? 그곳은 나를 편안하게 해준다.

화성시 남양읍 남양리 1704번지. 여기서 병인년(1866년) 천주교 대박해 때 많은 천주교인들이 순교했다. ‘치명일기(致命日記)’와 ‘증언록’에 기록이 전해지는 순교자는 김 필립보(1818~1868), 박 마리아(1818~1868), 정 필립보(?~1867), 김홍서 토마(1830~1868) 등이다. 남양성지 자료에 따르면 이곳은 다른 순교지와는 달리 무명 순교자들의 치명터였다고 한다. 그러니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는 순교자들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남양성지는 오랜 세월 동안 방치돼오다가, 1983년부터 이상각 신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성역화되기 시작, 1991년 10월 7일 한국 천주교회 사상 처음으로 성모 순례지로 공식 선포됐다. 남양성지엔 화강암으로 만든 대형 묵주알, 그리스도왕상, 성모동굴, 요셉성인상 등이 있다. 성지 내에 조성된 십자가의 길, 숲길은 명품 산책로라고 장담할 수 있다.

특히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보타가 설계한 ‘남양 성모마리아 대성당’은 새로운 상징물이 됐다. 화성시는 남양성지를 ‘화성8경’ 중의 하나로 지정해 홍보하고 있다. 남양성모성지는 경기관광공사 공모 2021 경기도 유니크 베뉴에 선정되기도 했다. 유니크 베뉴란 전통적인 회의시설이 아닌 행사 개최 도시의 독특한 정취와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장소다.

전기한 것처럼 이곳은 천주교인들의 순교지다. 즉 목이 베어지고 졸려서 죽임을 당한 사형장이란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천주교 신자 뿐 아니라 주민, 관광객들의 힐링장소로 각광받고 있는 것일까? 몇 년 전 남양성모성지에 대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그들은 죽어가면서도 인간과 세상에 대한 원한이나 분노 없이 찬미의 노래를 부르거나 기도를 올렸다. 구원에 대한 확실한 신념 속에서 이 세상살이를 마치고 ‘그 분’의 곁으로 갔다. 그래서 이곳은 원한이 맺힌 처형장이 아니라 신앙의 신비가 일어난 성지가 된 것이다.”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 당성 항공사진. (사진=화성시 포토갤러리)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 당성 항공사진. (사진=화성시 포토갤러리)

당성 일대 ‘원효(元曉) 불교성지’로 조성해야

천주교 성지인 남양성모성지가 있는 화성시에는 반드시 불교성지로 조성해야 하는 곳이 있다. 서신면 상안리 당성 일대다. 이 지역은 우리나라 불교의 성사(聖師)라고 추앙받는 원효대사가 대오각성한 곳이다. 당성은 둘레 1200m의 산성으로, 당항성이라고도 한다. 사적 제217호로써 백제시대에 테뫼형 산성이 축조된 후 신라시대 때 복합형 산성으로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곳은 고대 시대 때 대표적인 대 중국 교역항이자 해군 군사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원효대사는 661년 의상과 유학길을 떠났다. 당성에 이르러 날이 저물자 무덤 속에서 잠을 자다가 잠결에 목이 말라 머리맡의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신 후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다(一切唯心造)"는 깨달음을 얻고 혼자 돌아온다.

그런데 2020년 중앙승가대 교수인 자현 스님은 한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해골물’ 이야기의 진위를 이렇게 밝혔다.

“‘송고승전’ 권4 ‘의상전’에 따르면, 원효와 의상은 해가 져 갑자기 노숙해야 하는 상황에서 동굴에 묵게 된다. 그날은 편안히 잠을 잤다. 그런데 다음 날 일어나 보니, 그곳은 동굴이 아니라 인골이 흐트러져 있는 무덤이었다. 이런 상황을 인지한 후 하루 더 자게 되니, 그날 밤에는 귀신 꿈에 극도로 시달리게 된다. 이로 인해 ‘마음이 인식 대상을 결정할 뿐’이라는 일체유심조를 깨닫는다. 원효는 이때 “심생즉종종법생(心生則種種法生) 심멸즉감분불이(心滅則龕墳不二)” 즉 “마음이 생기면 일체의 현상이 나타나고, 마음이 고요하면 동굴과 무덤은 다르지 않네”라는 각성의 시를 읊었다”고 밝힌다. 즉 ‘해골물’ 운운은 이야기의 효율적인 전달을 위한 의도적인 왜곡, 즉 스토리텔링이란 것이다.

나는 지난 2009년 ‘당성, 불교 성역화해야’는 사설을 지역신문에 쓴 적이 있다.

2007년 학술회의에서 중앙대 역사학과 진성규 교수가 문헌 기록과 대중(對中) 교역현황 분석 등을 통해 원효대사가 깨달음을 얻은 장소가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의 당성 일대라고 발표했다. 진교수는 “오늘날 당성이야말로 원효로 하여금 한국불교의 철학적 체계를 완성하고 불교대중화의 기치를 올리게 한 위대한 출발점”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여기에 덧붙여 당성은 호국 유적이기도 하지만 원효대사라는 걸출한 성사가 깨달음을 얻은 우리나라 최고의 불교 성지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곳이 불교 성지로 조성되면 수많은 국내외 불교신자와 관광객들이 몰려들게 된다는 점, 천혜의 관광자원인 제부도와 궁평리, 포도, 해산물 등 먹을거리도 풍부하므로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건강한 사찰음식을 먹을 수 있는 사찰음식단지와 원효대사의 깨달음을 체험할 수 있는 수행센터와 템플스테이 등 기반도 갖추라고 제언했다.

3.1운동 때 벌어진 일제의 야만성이 폭로된 만세운동의 성지인 개신교의 제암리교회도 종교 뿐 아니라 역사·민족적인 가치를 지닌 훌륭한 자원이다.

이처럼 화성시에는 다른 도시들이 부러워할 종교 성지가 있다. 화성시를 우리나라 종교의 성지로 선포하자. 그리하여 내 고향 화성시에 더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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