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길이름 책자 표지. (자료=수원시)
수원의 길이름 책자 표지. (자료=수원시)

조선시대 주소체계는 부방계동(部坊契洞)에 통호제(統戶制)를 사용했다.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에 따르면 조선의 주소체계는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의 통호제였다. 즉, 5개의 집을 하나의 통(統)으로 묶고 각 집마다 호(號)를 부여한 것이다. 예를 들면 서울에 있던 옛집의 주소는 ‘한성 남부 명례방 장악원내계 5통 3호’로 표기했다.
 
1900년에서 1918년 까지 일제는 조선의 토지조사 사업을 마무리하면서 지적도를 만들고 지번을 부여했다. 그러고 나서 토지대장과 등기부등본을 만들어 임야와 전답을 관리했다. 이 때 주인이 없는 국토의 40%를 조선총독부 명의로 했다. 이후 조선총독부 토지는 일본인들에게 무상 또는 싼값으로 불하했다. 조선총독부는 조선 호적령을 공표하고 지번을 호적부의 주소로 사용했다.

도로명 주소사업 기대효과. (자료=수원시)
도로명 주소사업 기대효과. (자료=수원시)

이렇게 시작된 토지지번 주소체계는 100여 년 동안 사용해오면서 도시화와 산업화 등 각종 개발로 지번 배열이 불규칙적으로 변함에 따라 지번만으로는 위치를 찾기가 어렵게 됐다. 지번중심 주소체계는 방문 · 통신 · 택배 · 유통 · 관광 · 교통 등과 사회복지 등 산업구조적인 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정보화 시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도로 중심의 새로운 주소체계가 절실히 요구됐다. 1996년 7월 5일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강화기획단의 중점과제로 ‘도로명 및 건물번호 부여방안’ 이 발표됐다. 이어 1996년 9월 6일 ‘도로명 및 건물번호부여 실무기획단 규정’이 국무총리 훈령 제335호로 발령됐다. 

1997년 1월 7일에는 '1997년도 도로명 및 건물번호 부여사업 시범 도시'로 강남구와 안양시가 발표됐다. 1998년 1월 23일에는 2차 시범사업 도시로 안산시와 청주시, 공주시, 경주시 등이 선정됐다. 1998년 7월 21일 수원시가 3차 시범사업 도시로 선정됐다. 그리고 3개월 후인 1998년 10월 24일 필자가 수원시 도시계획과장으로 발령이 났다. 

수원시 도로명 및 건물번호 부여사업기획단 구성 및 설치 현황. (자료=수원시)
수원시 도로명 및 건물번호 부여사업기획단 구성 및 설치 현황. (자료=수원시)

수원시 도로명 및 건물번호 부여사업은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1998년 12월 16일에는 도로명 및 건물번호 부여 기획단이 구성됐다. 단장은 부시장, 부단장은 도시계획국장, 총괄과장은 김충영 도시계획과장, 총괄담당은 배창하 지적담당, 실무반장은 지준만 지적주사, 반원 홍기표 등 5명이 배치됐다.

수원시 새 주소사업 실무기획단 출범은 1998년 12월 29일 도시계획과에 현판을 거는 것으로 시작했다. 사업추진비로 국·도비 5억4700만원이 확보됐다. 1999년 2월 18일에는 직원 2명과 공공근로 3명이 추가 배치되어 시청 지하실에 전산작업장이 설치됐다. 이와 함께 작업에 필요한 PC 8대, 프린터, HUB, 플로터 등 각종 장비가 확보됐다.

수원시 새주소 부여사업 동 도로명 제정위원 위촉식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수원시 새주소 부여사업 동 도로명 제정위원 위촉식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1999년 4월6일에는 수원시 새주소 부여사업 자문위원을 선정했다. 시의원 2명, 교수·전문가 4명, 시민단체 2명, 유관기관 6명, 관계공무원 7명 등 21명이 위촉됐다. 이후 자문위원회는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중요사안 자문을 위해서 4번에 걸쳐 개최됐다. 

같은 달 29일에는 동(洞) 도로명 제정위원을 선정, 위촉했다. 동 도로명제정위원의 역할은 마을 지명유래 발굴과 도로명 사업의 홍보가 목적이었다. 위원은 36개 동별로 시의원, 동정자문위원, 새마을지도자, 통장, 바르게살기위원, 노인회장, 부녀회장, 기타 주민 등 699명이 위촉됐다. 동 도로명 제정위원회는 위촉장 수여와 사업설명, 지명 발굴 등을 목적으로 3회에 걸쳐 동 도로명 제정위원회를 개최하여 의견을 들었다.

동 도로명 제정위원 교육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동 도로명 제정위원 교육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그리고 새 주소 사업의 정착과 취지를 알리기 위하여 다양한 홍보 및 교육을 진행했다. 먼저 진행한 도시견학 및 행정자치부 교육에 담당자가 참여했다. 시청·구청·동사무소에 근무하는 관련직원 1282명에 대한 교육을 실시했다. 수원시의회 의원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수원의 역사와 정서에 맞는 도로명 제정을 위해 ‘연세대학교 사회교육원 땅이름 반’ 과정을 김충영 과장과 지준만 지적주사가 매주 1회 1년 과정을 연수하기도 했다. 수원시는 새주소 사업 추진 기본 방침을 정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외환이 부족해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을 때였다. 예산 절감을 위해 공공근로를 활용했고 직영을 원칙으로 했다. 

가장 먼저 진행한 일은 수원시 도로망을 주간선도로와 보조간선도로, 소로, 골목길로 체계를 정하고 분류하는 일이었다. 이는 주소체계를 간편하게 하고 구간별로 도로명을 부여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수원시 도로 위계별 도로구간 수 및 도로구획을 위한 기준이 정해졌다. 

주간선도로는 수원 중심에서 외곽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기준으로 했다. 서울방향, 성남방향, 용인방향, 기흥방향, 대전방향, 서해안방향, 인천방향 등 동·서·남·북 방향으로 설정했다. 보조간선은 주간선 도로와 주간선도로를 연결하는 도로를 보조간선도로로 정했다. 골목길과 세로는 보조간선도로에서 연결되는 마을 도로로 정했다. 

신안동 도로명 지도. (자료=수원시)
신안동 도로명 지도. (자료=수원시)

이런 기준을 적용해 주간선도로 10개, 보조간선 22개, 보조간선급 소로 36개, 소로 및 골목길 2069개, 전체 2137개의 노선이 결정됐다. 그리고 실질적인 사업추진을 위하여 1999년 10월 4일 ‘수원시 도로명 제정 실무소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은 관계공무원 6, 교수1, 향토사학자1, 시민단체 2명으로 구성했다. 

소위원회에서는 도로망 구성 및 공모된 도로명칭 등을 심의했다. 이 때 도로명 공모에는 381명(584건)이 접수됐다. 이중 100건이 당선작으로 선정돼 감사장과 3만원 상품권이 지급됐다. 도로명 제정 실무소위원회에서는 여러 차례 회의를 통해 수원시 2137개 노선의 도로명을 지었다. 

이후 주민설명회를 열고 수렴된 53개 노선의 도로명을 재조정했다. 이렇게 결정된 도로명을 전문기관인 한글학회와 한국땅이름학회에 자문을 통해 117건을 재조정했다. 최종 조정안을 수원시지명위원회에 상정해 최종 확정했다. 지명위원을 도로명제정위원에 위촉했기에 이미 조정작업을 거친 것이나 다름없었다. 

건물 번호 부여 도면. (자료=수원시)
건물 번호 부여 도면. (자료=수원시)

이렇게 하여 수원시 도로명 2137개 노선을 수원시 시보에 고시함으로써 도로명이 확정됐다. 

다음으로 추진된 일은 2137개 노선의 시작점과 끝나는 지점을 정하는 일이었다. 다음으로 시작점에서 진행방향으로 왼쪽은 홀수 번호를 오른쪽에는 짝수 번호를 건물에 부여했다. 그리고 건물번호판과 도로명판을 만들어야 했다. 

건물번호판은 수원시 도시 이미지(CI)인 화성의 이미지를 살려 성곽모양으로 디자인했다. 도로명판은 보편적으로 많이 쓰이는 모델로 정했다. 건물번호판과 도로명판 제작은 외주를 주어 만들었다. 이들 부착은 공공근로 인력을 활용하여 직영으로 추진했다. 최종 작업은 시민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도로명 주소 지도를 만드는 일이었다. 

도로명판 모습. (사진=수원시)
도로명판 모습. (사진=수원시)

지도제작 역시 국립지리원 기본도를 바탕으로 도로명과 건물번호를 기입하는 작업역시 담당직원들이 직접 작업했다. 다른 도시들은 전문업체에 발주하여 제작했다. 이렇게 하여 수원시 신주소 사업 추진은 5억 1000만원을 절약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수원시 도로명 주소사업은 2001년 12월 31일 사업을 종료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러한 노력으로 2002년 행정자치부로부터 수원시가 도로명 주소사업 유공으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리고 이 사업의 주무인 배창하 지적계장이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그리고 2002년도 예산절약 사업에 선정되어 도로명주소팀은 성과급으로 2000만원을 받기도 했다. 

수원시 새주소 사업 예산절감 사례집. (자료=수원시)
수원시 새주소 사업 예산절감 사례집. (자료=수원시)

우리나라 도로명 주소사업은 법적인 뒷받침은 물론 행정안전부의 미온적인 대처로 시행하지 않은 시.군이 많았다. 그리고 법적제도 미비로 새주소 사용이 정착되지 못했다. 행정안전부는 새 주소사업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2006년 10월 4일 ‘도로명 주소 등 표기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게 된다. 

수원시는 도로명 주소 등 표기에 관한 법률 규정에 의하여 도로명 사업을 전면 재추진하게 된다. 도로명 주소사업은 우여곡절을 거쳐 2014년 1월 1일 법적주소로 시행됐다. 도로명 주소사업은 IT와 스마트폰 시대를 맞이하여 시의 적절한 백년대계사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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