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홉(360㎖) 소비량 연간 약 36억병, 잔 수로는 350억 잔. 성인 인구 한 명당 780잔, 하루 평균 2.1잔.

‘술 하면 떠오르는 술은?’이라는 질문에 우리나라 주당들의 65%가 답했다는 소주의 지난해 대략 국내 판매량이다.

출고가 기준으론 약 3조6000억원 정도며 3~4년 전부터 매년 비슷한 수준의 수치가 기록 중이다.

이런 소주는 오래전부터 ‘국민 주(酒)’혹은 ‘서민의 술’로도 불렀다.

슬퍼서, 기뻐서, 우울해서, 심심해서, 속상해서, 심지어 날이 궂어서 등등 마시는 이유도 다양해 국·서민술의 지존 자리도 잃지 않고 있다.

서민의 애환을 담아내는 ‘술’ 이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한자 이름엔 '술 주(酒)'자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소주(燒酒)라고 알고 있겠지만, 희석식 소주의 상표를 보면 분명 소주(燒酎)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원래는 소주(燒酒)였다.

소주가 전해진 시기는 확실치 않지만 고려를 침략한 몽골에 의해서라는 게 정설이다.

당시 소주는 쌀, 보리 등 곡물 발효주를 증류해 만들었다.

공정이 복잡하고 값이 비쌌지만 맛이 좋아 인기가 대단했다.

고려사엔 공민왕 때 경상도 원수 김진이 소주를 좋아하여 기생과 부하를 모아 소주도(燒酒徒)가 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는 소주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기도 한데 그 후 조선 초기에는 왕실이나 사대부 등 주로 지배층이 많이 마셨다.

단종실록에는 문종이 죽은 뒤 단종이 상제노릇을 하느라고 허약해져서 대신들이 소주를 마시게 하여 기운을 차리게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온다. 태조 2년인 1398년 12월13일자 기록엔 이 같은 내용도 있다.

“임금의 맏아들 진안군 이방우는 술을 좋아하여 날마다 많이 마시는 것으로써 일을 삼더니, ‘소주(燒酒)’를 마시고 병이 나서 졸(卒)했다.”

조선왕조실록엔 그 후 영조 13년까지 240여 년 동안 소주(燒酒)라는 한자 술 이름이 176회나 언급돼 있다.

‘세 번 빚은 술’ 혹은 ‘진한 술’이란 뜻의 소주(燒酎)라 쓰기 시작한 것은 일제 강점기다.

알코올 농도가 높다고 판단한 일제가 이름을 바꿔 썼던 것인데, 지금까지 그대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참이슬', '처음처럼' 등 제조 회사의 제품명에 가려져 있는 불편한 진실이다.

어쟀든 이러저런 이유로 서민들 사이에 “술 한잔해야지”는 곧 ‘소주 한잔’을 의미하는 등식이 된 지 오래다.

이런 날이면 으레 마시게 되는 것은 십중팔구 맥주도, 막걸리도, 위스키도 아닌 소주다.

그러면서 부담 없는 가격으로 삶의 애환을 이야기 하고 서로를 위로 한다.

소주가 서민 술의 대명사처럼 각인돼 있어 가능하다.

하지만 이젠 부담이 될 것 같다.

출고가 7,9% 인상, 병당 음식점가격 5~6천원시대가 도래해서다.

‘삼겹살에 소주한잔?’ 서로 꺼내기가 버거운 각박한 세상이 되어 버린 요즘.

왠지, 꽃샘추위가 더욱 차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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