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 장안문과 화홍문을 잇는 성곽 밖 넓은 야외주차장을 감싼 장미담장. (사진=필자 김우영)
수원 화성 장안문과 화홍문을 잇는 성곽 밖 넓은 야외주차장을 감싼 장미담장. (사진=필자 김우영)

장미, 오 순수한 모순이여!

그리도 많은 눈꺼풀 아래

그 누구의 잠도 아닌 기쁨이여!

 

장미를 사랑했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의 묘비에는 이런 시가 새겨져 있다. 이 세상과 이별하기 한 해전 그가 마지막으로 쓴 장미찬가다.

릴케는 연인에게 장미를 꺾어주려다 가시에 찔렸고 손가락 상처가 덧나 죽음에 이르렀다는, 매우 어이없지만 한편으론 문학청년들의 낭만을 자극하기도 하는 극적인 이야기를 남겼다.

그런데 그의 죽음과 관련해 다른 견해도 있다. 단순히 장미가시에 찔려 패혈증으로 사망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릴케가 죽음에 이른 원인은 급성 백혈병이었다고 한다. 백혈병이 발발하자 스위스 어느 요양원에서 힘든 투병생활을 하면서 극심한 고통과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장미 가시에 찔렸는데 백혈병 때문에 상처가 좀처럼 아물지 않았고 외롭게 생을 마쳤단다. 릴케가 백혈병을 앓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모른 채 죽음을 맞았다는 설도 있다.

우리나라에도 장미를 노래한 시인이 많은데 그 가운데 최근 인상 깊었던 작품은 홍해리 시인(1942~)의 ‘장미’이다.

 

빨갛게

소리치는

싸·늘·함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해석과 느낌이 다를 것이므로 굳이 사족은 붙이지 않는다.

봄이 무르익고 초여름이 시작되면서 수원시내 곳곳에 장미가 만개했다, 가시가 있거나 말거나 싸늘하던지 그렇지 않던지 따질 것 없이 그 ‘빨간 소리’에 이끌려 일단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어느덧 60중반을 넘긴 나이인데도 여전히 황홀하다.

오늘 산책길에 장미꽃을 여러 번 보았다. 행궁동 공방거리 중간 쯤 2층집 주인이 아름답게 장미를 가꾸어 놓았다. 장미넝쿨은 벽을 타고 올라가 크고 예쁜 장미꽃송이를 피워냈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여들어 이른바 ‘핫플레이스’라고 불리는 행궁동 골목길 카페입구에도 무더기로 장미가 피어 명물이 되고 있다.

하지만 화성 안팎 장미 명소를 꼽자면 단연 으뜸인 곳이 있다. 장안문과 화홍문을 잇는 성곽 밖 넓은 야외주차장을 감싼 장미담장이다. 흰색과 붉은 색 장미를 교대로 심어놓아 장관을 이룬다.

그러나 장미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장안문에서 화서문으로 가는 화성 성벽 안쪽엔 고들빼기 꽃들이 빼곡하게 피어 내 발길을 붙잡았다. 이 꽃이 이렇게 예뻤던가, 넋을 놓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화성성벽에 군락지를 이룬 고들빼기들이 일제히 꽃을 피웠다. (사진=필자 김우영)
화성성벽에 군락지를 이룬 고들빼기들이 일제히 꽃을 피웠다. (사진=필자 김우영)
성벽 밖 공원에 자연이 조성한 토끼풀꽃 밭. (사진=필자 김우영)
성벽 밖 공원에 자연이 조성한 토끼풀꽃 밭. (사진=필자 김우영)

흰색 토끼풀꽃이 점령한 성 밖에서는 돗자리를 편고 은은한 향기를 맡으며 소풍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네잎짜리 토끼풀을 찾으며 즐거워하는 중년 여성도 행복해보였다.

어제 다시 가봤더니 무더기로 피었던 토끼풀꽃과 고들빼기꽃은 보이지 않았다. 고들빼기꽃은 져버린 대신 흰 꽃씨가 되어 날아다니고 무성했던 토끼풀꽃밭은 깔끔하게 벌초가 돼 있었다.

아쉬워할 이유가 없다. 내년을 기다리면 되지.

대신 장미는 제철을 맞아 절정을 향해가고 있다. 늦기 전에 주변을 둘러보시길. 아파트 담장에도 골목길 안 주택에도 공원에도 그대의 추억이 담긴 꽃들이 기다라고 있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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