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움츠렸던 만물이 기지개를 켜는 어느 봄날, 수원 화성의 아름다운 방화수류정 안에서 멋드러진 판소리가 울려 퍼진다. 정자 안 뿐만아니라 바깥 마당까지 가득 들어찬 좌중의 모든 시선은 훤칠한 외모를 갖춘 명창(名唱)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다. 수원이 배출한 당대의 명창! 한송학이다. 타고난 외모가 청송무학(靑松舞鶴)과 같다해 송학이라 이름 붙였다하니 이름 또한 소리꾼답다.

판소리는 재미난 이야기를 노래로 부르는 한국의 전통 음악 형식 중 한 분야이다. 1964년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 꾸준히 계승 발전돼 오다가 2003년 11월 그 예술성을 세계적으로도 높게 평가받아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된 우리나라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이다.

한송학은 한국 판소리 역사에서 빼 놓을수 없는 인물이다. 그와 관련된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행적은 알 수 없지만, 1940년 정노식이 지은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에 일부 자료가 전하고 있어 그의 삶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한송학은 19세기 중반 수원에서 태어났으며 용주사(龍珠寺)에서 수년간 판소리를 공부했다.

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서편제나 동편제가 아닌 경기도와 충청도 일대에서 유행했던 ‘중고제’라는 유파에 속했는데, 중고제는 첫소리를 평평하게 시작해 중간을 높이고 끝을 다시 낮추어 끊는 것이 특징이다. 용주사에서의 피나는 수련 끝에 마침내 득음(得音)했고 고종 때에 이르러 드디어 국창(國唱)의 반열에 오르는 등의 화려한 삶을 살았다.

판소리 열두 마당중에서도 새타령과 흥보가를 잘했으며 특히 장끼타령에 탁월했다고 전한다. 장끼타령은 현재 맥이 끊긴 상태여서 더욱 아쉽다. 차후 수원시에서 ‘한송학 판소리 대회’ 등의 기념 행사를 추진해 그의 생애도 기리고 실전한 장끼타령의 복원을 시도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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