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 최초 시민극단이 오는 4월 23일 열리는 나혜석생가문화예술제에서 펼칠 뮤지컬 ‘선각자 나혜석’의 한 장면을 연습하고 있다.

오후 7시. 팔달구 행궁동 주민센터 2층 대회의실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회의실 문밖으로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문을 열자 수십명의 사람들이 손에 악보를 들고 노래부르기에 한창이다. “운.명.의.덫.희.생.된.자.여.” 사람들은 한 음, 한 음을 꾹꾹 눌러 불렀다.

4월 23일부터 10일 동안 열릴 제3회 나혜석생가문화예술제에서 공연할 뮤지컬 ‘선각자 나혜석’의 연습현장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단원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으레 뮤지컬 배우라고 하면 개성이 강하거나 폼 나는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고등학생부터 50대까지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이들은 어떻게 모였을까.

지난해 12월 뮤지컬 ‘선각자 나혜석’을 위한 공개오디션을 통해 50명의 사람들이 뽑혔다.

이들은 수원 최초 시민극단이다. 극단 성이 이들을 뮤지컬 배우로 만들었다.

28년 된 극단 성을 이끌고 있는 김성열 대표는 “서양에서는 30~40년 전부터 시민극단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가까운 나라 일본의 경우에도 현재 그 지역문제인 공해문제, 재개발문제 등을 시나리오로 만들어 주민이 직접 참여해 연극을 한다”고 말했다.

연기력은 부족하지만 사안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현상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 질 높은 연극이 만들어질 수 있다. 따라서 시민극단이 점차 활성화돼 지역문제를 다루는 뮤지컬들이 많이 생산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김 대표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시민극단을 결성했다. 극단은 시민들에게 질 좋은 공연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고 시민들에게 일체 무료로 강습을 진행한다.

이제룡 경기대사회교육원연기원 교수가 연기지도를, 김봉석씨가 마임, 국립무용단 출신의 이순자씨가 한국무용, 뮤지컬 ‘정조대왕’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 이훈씨가 노래를 가르친다.

현재는 이곳에 42명이 하루도 빠짐없이 나와 발성, 대사, 노래, 안무연습을 하고 있다. 그중에는 고등학생도 6명이나 있다. 이 뮤지컬에 참여한 고등학생들은 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로 누구보다 열의가 남다르다.

유종훈(18, 수일고)군은 “연극영화과에 가고 싶지만 집안사정상 따로 입시를 준비하기가 어려웠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많이 배우게 됐다”며 “힘들지만 재미있고 시간가는 줄 모르면서 연습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연습한 지도 어느덧 3개월. 연습하기 전에는 같은 동네에 살아도 잘 모르는 사이였지만 지금은 형, 누나, 동생 사이로 가끔 따로 모여 연습을 하기도 하고 밥을 같이 먹기도 한다.

이들이 공연하는 뮤지컬 ‘선각자 나혜석’의실존인물인 나혜석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서양화가이자 문인이었다.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적 관습에 당당하게 맞서며 남녀평등을 지향했던 예술인이기도 했다. 이러한 예술인 나혜석(호는 정월, 1896~1948)의 불꽃같은 생애를 그린 작품으로 극단 성 김성열 대표가 직접 쓴 희곡이다.

김 대표는 유동준 나혜석기념사업회장의 도움으로 대본을 집필했고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나혜석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잘 엮어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나혜석의 삶이 전반적인 이야기다. 특히 나혜석이 프랑스로 여행간 뒤 만나게 된 천도교 신파 의 우두머리인 최린을 상대로 ‘정조유린’을 이유로 위자료 청구소송을 한 일화가 바탕이 됐다.

시민극단을 통해 시민 개인들이 연극배우로서의 꿈과 열정을 풀어낼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의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참여하면서 적극적인 대안문화를 만들어가는 뿌리가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지역사회의 문제를 함께 연극으로 만들어내면서 대안적인 지역사회문화공동체를 구축할 것이다.

극단 성 시민극단은 앞으로도 화성 안의 골목길 사람들의 삶 등 지역사회의 문화적 자원들을 스토리텔링해 이를 연극으로 창조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그 길이 순탄치만은 않다. 무엇보다 재정적인 지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전문강사들의 지도가 이뤄지고 있고 무엇보다 연습과 공연을 할 수 있는 소극장조차 없어 운영이 힘든 현실이다.

[극단 성(城)은...]

1983년 4월 8일 창단됐으나 실제적인 뿌리는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9년 당시 이창현, 김성열, 안강현 등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들이 주축으로 ‘연극동우회’를 만든 것이 시초다. 이들은 수원 시내 한가람 음악감상실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수원연극의 터전을 가꾸기 시작했으며 지금까지도 꾸준히 창작극과 번역극 등의 공연을 하고 있다.

극단 城은 지역을 대표하는 극단으로써 지역소재를 살린 창작극들을 많이 선보였다.

그러한 노력이 1993년 10월 ‘시시비비’, 1996년 5월 ‘혜경궁 홍씨’, 1998년 6월 ‘정조대왕’등의 공연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들 공연을 가지고 일본, 이집트 등 해외의 국제연극제에 참가해 한국 연극과 경기연극을 세계에 알리는 일을 했다.

현재는 극단 城 창립자이자 초기멤버인 김성열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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