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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37주년 에세이 뿌리가 드러나도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

Preparing the Tiếng Việt translation… (한국어 원문 표시 중)
수원화성 서이치 성벽 곁에서, 창간 37주년에 부쳐
수원화성 서이치 성벽 아래 소나무. 드러난 뿌리가 비탈을 붙들고 있다.
김기수 기자=수원 화성 서이치 성벽 아래 소나무. 드러난 뿌리가 비탈을 붙들고 있다.

수원화성 서쪽 성벽 아래에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줄기는 거북 등처럼 갈라졌고, 굵은 뿌리는 흙 밖으로 드러나 비탈을 따라 사방으로 뻗었다. 뒤로는 오래된 성돌이 층층이 쌓였다. 뿌리는 비탈을 움켜쥐고, 가지는 성벽 너머로 몸을 기울였다.

뿌리가 드러났다는 것은 뿌리를 감싸던 흙을 잃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나무는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남아 있는 흙을 더 단단히 붙들고 있다. 마치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것처럼.

이 소나무가 선 곳은 수원화성 서쪽 성벽의 ‘서이치’ 곁이다. 1796년 화성을 쌓을 때 만든 치성 가운데 하나다. 치성은 성벽 일부를 바깥으로 내밀어 가까이 접근한 적을 살피고 방어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다. 성 안에 몸을 두면서도 한 걸음 앞으로 나와 미처 보이지 않던 곳까지 살피는 자리였다.

수원일보가 서 있는 자리와 꼭 같다.

수원 안에서 수원을 살핀다. 멀리서 내려다보면 보이지 않는 골목을 보고, 책상 위의 자료와 그 뒤에 있는 수원 사람을 만나고, 아무도 묻지 않으면 그대로 지나칠 것들에 시선과 질문을 불어넣는다. 

수원일보는 1989년 9월 30일 창간했다. 오늘로 서른일곱 해다.

그동안 수원일보가 기록해둔 것은 대부분 수원의 일이었다. 팔달문과 수원역, 종합운동장과 빅버드, 전통시장과 관공서, 북적이던 거리와 평범한 수원 사람들의 일상까지. 흔치 않은 전국적인 사건도 있었고, 다른 곳에서는 기사 한 줄이 되지 못했을 흔한 일도 있었다.

수원 사람의 일상이 곧 수원의 역사다.

누군가에게는 버스 노선 하나가 하루의 일과를 바꾸고, 학교 앞 횡단보도 하나가 아이의 안전을 결정한다. 오래된 골목 가게 하나가 문을 닫는 일은 한 가족에게 생계 이상의 문제다. 행정기관의 단순한 결정 하나가 어떤 수원 사람에게는 몇 년을 기다려온 숙원의 결론이 되기도 한다. 그 곁에 수원일보가 있었다.

그 사이 수원일보의 뿌리를 덮은 흙의 모습도 여러 번 바뀌었다. 

지면신문이 인터넷으로 옮겨가던 때도 수원일보는 기존의 방식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2001년 지역 언론에서 처음으로 시민기자제를 열었고, 2005년에는 경기도 인터넷신문 첫 등록번호인 경기아00001을 받았다. 2008년 경인지역에서 가장 먼저 포털에 기사를 보냈고, 2014년에는 전국 지역일간지 가운데 처음으로 디지털 퍼스트를 선언했다.

먼저 걷는다고 언제나 꽃길을 만나는 것은 아니었다. 

독자는 포털에서 기사를 만나기 시작했고, 그곳에서는 언론사의 이름보다 제목 한 줄이 먼저 읽혔다. 손에 종이신문을 들던 수원 사람은 줄었고, 휴대전화 속 수원일보의 자리도 보장되지 않았다. 앞서 걷는다는 것은 때로 남들보다 먼저 뿌리를 감싸던 흙이 사라지는 일이었다.

굵은 가지가 성벽 위로 몸을 기울였다. 뿌리는 비탈을 움켜쥐고, 가지는 담 너머를 향한다.
김기수 기자= 굵은 가지가 성벽 위로 몸을 기울였다. 뿌리는 비탈을 움켜쥐고, 가지는 담 너머를 향한다.

지금 또 한 번 지반이 움직이고 있다.

인공지능은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고 순식간에 형태를 갖춘 기사를 내놓는다. 어제까지 사람의 일이었던 것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이 더는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다. 언론이 오래 기대왔던 ‘우리만 아는 정보’와 ‘우리가 써야 만들어지는 콘텐츠’라는 생각도 빠르게 낡아가고 있다.

수원일보는 이번에도 담대히 나아가려 한다. 지면에서 인터넷으로 건너왔던 것처럼 새로운 시대에 먼저 다가가고 부딪쳐 볼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믿음도 있다.

기계는 살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새벽 시장의 냉기를 견디지 않고, 장맛비가 쏟아진 골목에 서 있지도 않는다. 학교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는 부모의 말을 듣거나, 민원실 앞을 서성이는 시민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먼저 묻지도 않는다. 어떤 시대가 오든, 어떤 놀라운 도구가 만들어지든 수원 사람의 숨결은 결국 사람이 확인해야 한다.

뿌리 밑에 흙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멀리서는 보이지 않는다. 직접 가서 살펴야 보인다. 자료와 화면이 담지 못한 것을 찾아가 보고, 묻고, 확인하고, 때로는 바로잡는 일. 수원일보가 놓치지 말아야 할 바로 그 일이다.

수원일보가 수원의 모든 일을 담을 수는 없다. 다만 그중 한켠은 떠맡을 수 있다. 속삭이는 목소리도 받아 적고, 권력에 한 번 더 묻고, 억울하다는 수원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남들이 지나친 일을 기록해두는 한켠이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말보다 수원 사람이 필요할 때 한 번쯤 찾아와 기댈 수 있도록 늘 그 자리를 지키는 것. 그것이 수원일보의 쓸모다. 수원의 일은 수원일보가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 작은 목소리라도 누군가는 들어야 한다는 믿음. 오늘 해결되지 않은 일이라면 내일 다시 묻겠다는 의지. 

수원일보는 수원과 함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서른일곱 번 보냈다.

나무도 따뜻한 계절만으로 한 해를 보낼 수 없다. 새순이 돋는 봄과 가지가 자라는 여름, 잎을 떨구는 가을과 매서운 겨울을 모두 지나야 한 줄의 나이테가 남는다.

수원에서, 수원 사람들과.

수원일보도 좋은 계절만 지나온 것은 아니다. 발밑의 흙이 깎였고 뿌리가 드러나는 시간도 있었다. 그래도 이곳에 서 있다. 그렇게 견딘 사계절이 한 줄씩 쌓여 서른일곱 해가 됐다.

성벽 아래의 소나무를 다시 올려다본다. 뿌리는 훤히 드러났지만 비탈을 놓지 않았다. 가지는 여전히 성벽 너머로 뻗어 있다. 그 몸 안에는 이곳에서 보낸 계절들이 나이테로 남아 있을 것이다.

수원일보도 그러하려 한다. 신문을 보는 방법이 달라지고 기사를 만드는 도구가 바뀌어도 수원과 수원 사람들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이 도시의 한켠을 떠맡고, 수원 사람이 어느 계절에라도 찾아와 기댈 수 있는 자리에서 나이테를 늘려가려 한다.

수원일보가 뿌리를 내린 곳은 수원이고, 그 뿌리를 붙들어온 것은 수원 사람들이었다. 뿌리가 드러나도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이제 서른여덟 번째 나이테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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