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고은 시인이 전입신고를 하고 수원시 공무원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고은, 본명 고은태(高銀泰) 1933년 전북 군산 출생. 고은 시인이 수원을 떠난다. 성추행 의혹으로 수원시민에게 큰 상처를 주고 온 국민을 경악케한 고은 시인이 두문불출하고 있는 가운데 고은 재단 측은 고은 시인이 수원을 떠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19일 수원시에 따르면, 고은 시인이 고은 재단을 통해 올해 안에 계획해뒀던 장소로 이주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이와 함께 수원시는 고은 시인 등단 60주년 기념 행사도 전면 재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고은 시인 관련 행사는 모두 취소된 것이다.

이날 일부 언론과 고은 재단 측은 고은 시인이 앞서 광교산 주민들의 퇴거 요구에 부담을 느껴 이주를 준비해왔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5월 고은 시인에 대한 광교산 주민들의 퇴거요구를 다수의 매체가 보도하면서 노벨상 후보인 대문호에 대한 특혜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염태영 수원시장은 “우리가 불법적인 일을 한 게 하나도 없다. 삼고초려로 어렵게 모셔온 우리 보물(고은 시인)을 걷어차려는 행동에 시가 아무 일도 못한다면 이게 무슨 꼴이겠냐"며 고은 시인을 보호하기 위해 애를 썼다.

이후 퇴거요구가 잠잠해지자 언제 그런일이 있었냐는 듯 고은 시인과 수원시는 '고은문학관 건립'이나 '고은 시인 등단 60주년 기념 행사' 등 각종 이벤트를 준비해왔다. 수원을 떠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는 얘기다.

즉, 수원시와 고은 재단 측의 발표는 '성추행 의혹으로 사실상 쫒겨나는 고은'이 아니라 '광교산 주민들의 퇴거 요구로 떠나는 고은'으로 알려지기를 원하는 계산된 발언으로 보인다.

지역정가의 한 인사는 "3선 출마를 선언한 염태영 시장에게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될 것을 우려한 고육지책이 아니겠나"며 "고은 시인을 모셔와 특혜논란을 일으킨 염태영 시장이 직접 시민들에게 사과해도 모자랄 판에 광교산 주민들을 이용해 물타기 라니 씁쓸하다"고 말했다.
 

고은 시인과 함께하는 시와 음악이 있는 밤 행사에서 염태영 수원시장과 고은시인.  2012.. 6. 8 <사진= 수원시 포토뱅크>


실제로 광교산주민대표협의회는 이날 즉각 '광교산 주민 입장표명'이라는 입장자료를 내고 "논란의 중심에서 상처 받는 광교산 주민들에게는 단 한마디의 사과도 없이 본인의 추잡한 발자취로 떠나는 책임을 왜 주민들에게 덮어씌우려 한단 말인가"라며 "정말 비겁하고 추하다. 성추행 사건이 터지니까 이제 와서 주민과의 갈등 때문에 떠나는 것이라고 주민 탓으로 돌리고 있다"고 고은 시인을 비판했다.

광교산 주민들은 이어 "수원시와 고은재단 그리고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받는 고은 시인은 잘못을 회피하지 말고 책임있는 자세로 상처 입은 수원시민과 광교산 주민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고은 시인은 지난 2013년 8월부터 수원시가 마련해준 장안구 상광교동 광교산 자락에서 거주해왔다. 이를 위해 수원시는 고은 시인의 전기료, 상하수도 요금 등 매년 약 1000만 원을 부담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주민들은 지난해 5월부터 고은 시인의 퇴거를 요구했다. 주민들은 "47년간 이중규제로 재산피해를 보고 있는데, 수원시가 고은 시인에게 특혜를 주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5월 광교산 주민들이 고은 시인의 퇴거를 요구하고 있다. 


고은 시인이 수원을 떠난다는 소식에 네티즌들은 "당연한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한 네티즌은 "수십 년 동안의 성추행 이것이야말로 적폐 중의 적폐"라며 "비겁하게 숨어있지 말고 국민 앞에 나타나 사죄하길 바란다"고 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수원만 떠나는 것이 아닌 문학계를 떠나야 한다"며 "더 추하게 늙기 전에 반성하고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한다"고 충고했다.

이 외에도 "노벨상을 수상하지 않은 것이 다행", "늙어서 이게 무슨 망신", "집에서 뭘 하길래 전기요금과 상하수도 요금이 매년 1000만 원이 넘지?", "곱게 늙기도 어렵다" 등 다양한 반응을 내놨다.

고은 시인에 대한 비판은 문단을 넘어 정치권에서도 시작됐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는 8일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고은 시인의 성추행 논란에 대해 "매우 추악하고 충격적"이라며 "고은 시인의 시를 교과서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이런 사람이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됐다니 대한민국의 수치가 될 뻔했다"며 "권력을 이용해서 이런 성추행을 했다면 정말 찌질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말 추하게 늙었다"며 고 시인을 맹비난했다.

유 대표는 또 "문학계에서 권력을 가진 남성 문인이 여성 문인 지망생이나 신인 여성 문인에게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을 가한 것이 우리 문단에 광범위하다면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자들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위한 최소한의 양심도 없었다는 얘기"라고 일갈했다.

앞서 고은 시인의 성추행 논란은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이 뒤늦게 주목을 받으며 불거졌다. 최 시인은 시를 통해 En 시인이 후배 작가와 편집자 등을 성추행했다고 폭로했다. 이후 온라인을 중심으로 ‘En 선생’이 고은 시인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이후 최 시인은 지난 6일 JTBC의 <뉴스룸>에 출연해 "내가 등단할 당시 권력 있는 남성 문인이 젊은 여성 문인을 성추행 또는 성희롱하는 일이 만연했다"고 밝혔다.

고은 시인의 성추행 문제가 터지자, 류근 시인도 6일 자신의 SNS에 "고은 시인의 성추행 문제가 드디어 수면 위로 드러난 모양"이라고 말했다. 류근 시인은 이어 "60~70년대부터 공공연했던 고은 시인의 손버릇, 몸버릇을 이제야 마치 처음 듣는 일이라는 듯 소스라치는 척하는 문인과 언론의 반응이 놀랍다"고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한편, 고은 시인의 노벨상 노미네이트와 관련 월간조선 보도가 다시 회자되고 있다. 지난해 8월 월간조선은 “고씨가 매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일이 다가오면 국내 언론에서 수상 후보자 중 한 명으로 언급되지만, 이는 영국 도박 사이트 래드브록스의 후보자 명단에 포함돼 있다는 걸 의미할 뿐이다. 바꿔 말하면 래드브록스의 후보 순위는 노벨위원회 문학상 수상자와는 무관하다는 얘기다. 2016년의 경우 고씨는 래드브록스에서 6위까지 올랐고, 1위는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였지만 수상자는 미국 가수 밥 딜런이었다”고 보도했다.
 

JTBC 방송 화면 캡쳐

다음은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 [전문]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

En이 내게 맥주잔이라도 던지면

새로 산 검정색 조끼가 더러워질까봐

코트자락 휘날리며 마포의 음식점을 나왔는데,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은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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