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대학을 다닌 4년 동안이 제 58년 평생에 가장 재미있고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17일 오후 경기대학교 수원캠퍼스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전체 졸업생 2천400명 가운데 3등의 성적으로 졸업장과 학업우수상을 받은 정구자(58ㆍ여ㆍ의류업체 운영)씨는 얼굴 가득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2002학년도 수시모집에서 8대1의 경쟁률을 뚫고 미술학부(한국화전공)에 입학했던 정씨에게는 졸업평점 4.4점(4.5만점)이라는 우수한 성적을 기록했다는 것보다 가난 때문에 나이 먹어 늦게 시작한 미술공부를 무사히 마쳤다는 사실이 더 큰 기쁨이다.

지금은 서울에 본사를 두고 전국에 60개 지점을 둔 '마드모아젤' 의류업체의 어엿한 사장이지만 가난 때문에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한이 늘 가슴속에 남아있던 정씨였다.

충북 영동군 학산면 시골에서 태어난 정씨는 3살도 되기 전에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재혼으로 언니 2명과 함께 시골 큰어머니 집에 살면서 지독한 가난과 싸워야 했다.

어려서부터 그림그리기에 남다른 재주가 있었던 정씨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18살때 서울로 올라와 양장점에서 일하며 디자인을 비롯한 의류업체 일을 배웠고 1990년부터 자신의 브랜드로 옷을 만들어 꽤 성공한 의상디자이너이자 의류업체 사장이 됐다.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을 찾은 정씨는 1999년 아줌마들이 많이 다닌다는 한림여자실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평생 하고 싶었던 그림을 배우겠다며 미술공부를 시작했고, 결국 2002년 경기대에 합격하는 기쁨을 누렸다.

'하고싶은 일을 하게 됐다'는 마음에 정씨는 서울 집에서 새벽에 출발, 수원에 위치한 경기대에 매일 오전 6시 30분께 도착해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두서너시간동안 공부를 했다.

1학년 일년간 이렇게 열심히 공부한 결과 미술학부 전체에서 1등을 했고 이후에도 4년간 한번도 장학금을 놓친 적이 없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정씨는 컴퓨터와 골프 등 교양 두 과목에서만 B+를 받았을뿐 나머지 과목에서 모두 A°이상의 성적을 거두었다.

그렇다고 정씨가 공부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한국화 전공을 같이 하는 딸같은 친구들하고 그림도 같이 그리고, 떡볶이도 사먹고, 노래방도 함께 가 스트레스를 푸는 등 여느 20대 여대생과 똑같이 생활하면서 '왕언니', '큰언니' 역할을 톡톡히 했다.

또 1학년부터 2학년때까지 장학금을 받으면 자신의 돈 200만원을 보태 익명으로 미술학부의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을 내놓았고, 이런 사실은 졸업하는 이날까지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했다.

정씨의 졸업식에는 정씨 대신 4년간 사업체를 이끌며 열심히 외조한 남편과 경기대 94학번 선배인 딸, 미국에 사는 큰언니 식구들, 대전에 사는 작은 언니 식구들이 참석해 정씨의 의미있는 졸업을 축하해주었다.

정씨는 "딸보다 어린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며 보낸 지난 4년의 시간이 내게는 너무나 소중하고 재미있고 행복했다"면서 "힘들 때마다 '나는 할 수 있다'고 다짐하며 어려움을 이겨 나갔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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