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가 모이면 세포 덩어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체가 된다. 부분의 합이 새로운 유기체를 생성시키는 것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결국은 조그마한 암세포 하나가 생명체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기도 한다. 분권과 자치의 논의에서 공동체 사회의 중요성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이다.

현 정부가 국가경쟁력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분권과 자치의 개념을 제기한 것은 시대사적인 의미가 크다. 국가 중심의 발전 전략을 극복하고 지역의 토착성을 바탕으로 다양성과 혁신을 도모해야 할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를 위한 분권인가’의 관점이 제기되고 있다. 분권의 효과가 궁극적으로 시민사회를 향해 가도록 설계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현재 재정 분권과 관련하여 국세와 지방세의 비중이 8:2로 왜곡되어 있어 7:3을 거쳐 6:4로 가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에 대해 강한 공감이 형성된 것은 당연하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했다. 중앙정부의 입장에서는 가용 재원이 감소되기 때문에 당연히 저항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가용재원을 지방으로 이양하는 것은 기능 이양과 연계돼야 하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권력 개편과도 맞물려 있다. 쉽지 않은 쟁점을 풀기 위해 우리 사회의 모든 지혜를 모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시도된 1단계 재정분권에서는 부가가치세 중 11%인 지방소비세를 2020년까지 10%p 증액하고, 이러한 개혁을 통해 8조5천억 원을 지방으로 이양하겠다는 것이다. ‘지방으로 이양’된다는 주장에 대해 모두들 자치와 분권의 시대정신에 부합한다고만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방소비세는 광역지방정부의 조세이다. 결국 재정분권 1단계는 광역단위의 자치권으로 만족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광역지방정부의 세원이 확대되면 그것의 일부가 조정교부금의 증액으로 연계되어 기초지방정부의 재원 확대로 연계된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실제 이번에 증액되는 8조5천억 중에서 2조7천억 원은 기초지방정부에 ‘다시 내려간다’는 계산도 추계된다. 그러나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요구하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고 했다. 광역지방정부는 중앙정부가 주는 의존재원에 기대지 않도록 자체 재원을 확대하여 달라고 하여 지방세 확충을 요구했다. 그러나 기초지방정부는 광역지방정부가 갖는 지방소비세의 증가 중 일정 부분에 의존하도록 한다고 하면 자기모순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필요한 대목이다. 2019년 예산기준으로 광역지방정부의 전체 조세 수입은 56조9천억 원이고 기초지방정부의 전체 조세 수입은 26조1천억 원이다. 이러한 7:3의 비중은 2011년 이후 거의 유사한 비율을 보여주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재정분권 개혁을 지나면서 이 비율이 광역지방정부에게로 쏠릴 가능성이 있다. 이에 기초지방정부의 재정 확대를 모색해야 할 이유이다. 물론 그것은 기초지방정부의 기능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지방자치법 제10조는 ‘시·도와 시·군 및 자치구는 사무를 처리할 때 서로 경합하지 아니하도록 하여야 하며, 사무가 서로 경합하면 시·군 및 자치구에서 먼저 처리한다.’는 보충성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광역정부가 통일성과 조정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면서도 주민을 위한 업무를 기초정부가 우선적으로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재원도 그러한 관점이 부각되어야 한다. 차제에 광역지방정부가 기초지방정부에 부담을 떠넘기는 지방보조금의 체제 개편에 관한 가이드라인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사실 아버지의 매는 달게 받는다. 그리고 아버지의 매는 사랑과 배려가 담겨있기도 하다. 그러나 큰 형의 매는 더 서럽게 느껴진다. 간혹 경쟁 심리가 배어 더 혹독하기도 하다. 그래서 광역지방정부와 기초지방정부의 조정은 중앙정부가 직접 나서야 갈등조정이 되는 경우가 많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한다. 분권의 설계에서 중앙과 지방이라는 2분법이 아니라, 여기에 광역과 기초의 관계도 처음부터 고려됐어야 한다. 1단계 재정분권이 중앙과 광역의 분배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2단계 재정분권은 광역과 기초의 분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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