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되니 기온이 내려가 제법 쌀쌀한 기운이 돈다. 가방에 긴팔 옷을 하나 더 갖고 다니기 시작한 지도 보름남짓 된다. 이때 쯤 생각 나는 시 한편.

'날씨야/네가/아무리 추워봐라/내가/옷 사 입나/술 사먹지' -소야 신천희 ‘술타령’

 이 시를 지은 아동문학가이자 시인인 소야 신천희 스님은 나와 30여년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스님은 수원에 많은 벗들이 있다. 아마도 수원을 제2의 고향 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방금 전 전화통화를 한 내용도 “추석 끝나고 제가 수원에 올라 가겠다” “아니면 김선생이 전주에 내려오든지”였다.

몇 년 전 주인장이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문 닫은 화성 제부도 입구 쟁이골에서 열린 각종 문화예술축제와, 역시 화재로 사라진 수원 장안문 밖 ‘행복한 사람들’에서 수시로 만나 술잔과 정담을 나눴다. 스님이 술을? 그는 술자리를 열심히 마련하고 동참하지만 입술만 적당히 적시며 분위기를 띄울 뿐이다.

그가 거처하는 암자 무주암은 전주 가까운 김제시 금구면 오봉 3길 129에 있다. 그곳에서 스님은 자신이 낸 동화책 등에서 나온 인세, 원고료로 이웃을 도우며 산다. 외롭고 힘들게 살아가는 다문화 가족, 외국인 노동자들을 ‘모셔다’ 거하게 한나절 대접한다.

4월 초파일에 여는 다문화가족 잔치 '대문 열고 놀자'라는 초청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암자 마당에서는 고기도 굽는다. 술도 준비해 대접한다. 다른 절간에서 어림도 없는 일 일 터인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일을 벌인다. 스스로를 ‘땡초’라고 하면서.

무애(無碍), 그는 광활한 무애의 대승 세계에 속하는 자유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 19로 이런 무애의 잔치판을 벌이지 못했다.

앞에 소개한 그의 시 ‘술타령’ 역시 무애에 바탕을 둔다. 아무려면 살을 에이는 날씨에 옷을 사 입어야지 술을 사 먹을까. 그러나 옷은 나의 추위만 가려준다. 술(밥)은 여럿이 함께 먹을 수 있다. 아마도 나를 위해서만 쓰지 않겠다는, 다른 사람과 함께 어울려 쓰겠다는 얘기일 것이다. 술과 밥은 여럿이 먹어야 흥이 더 나고 맛이 있지 않겠는가. 가진 것 없는 이들의 술값밥값을 보탤 수 있다면 더더욱. 그러니까 이타(利他)의 마음이 이 시에 들어 있는 것이다.

아동문학가답게 그는 아이들을 참 예뻐한다. 그래서 전주시내에 사단법인 아이사랑 부모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부모도 자격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말 ‘부모 자격증’이 필요한 시대다. 얼마 전 국민들의 공분을 산 창녕 아동학대 사건을 보면서 더 그런 생각이 굳어진다. 주민에게 발견된 작고 어린 소녀는 온몸에 멍과 상처투성이였다. 못된 부모가 지문을 없애겠다고 손가락을 지져 화상까지 입은 상태였다. 지난해엔 인천시 미추홀구에서 계부가 의붓아들을 살해한 사건도 일어났다.

아동학대 건수와 피해 아동이 해마다 늘고 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과 아동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18년까지 아동학대사례 건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아동학대사례 건수는 2014년 1만 건을 넘겼고 2018년에는 2만4천604건이나 됐다. 2001년 대비 11.7배 증가한 것이다.

아동학대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해자의 스트레스 해소, 가해자의 정신질환, 어린 시절 충족하지 못했던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등이 주로 언급된다. 어찌됐거나 이 모두 아이들을 본인 소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야 스님의 아이사랑 부모학교는 이런 그릇된 생각을 바로 잡아주는 일을 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그의 글 중에는 ‘외상값’이란 작품도 있다.

‘어머니!/당신의 뱃속에서/열 달 동안이나 세 들어 살고서도/한 달 치 방세도 내지 못했습니다.//어머니!/몇 년씩이나 받아먹은/따뜻한 우유 값도/한 푼도 갚지 못했습니다.//그것은/이승에서 갚아야 하는 것을/알면서도/저승까지/가지고 가려는 당신에 대한 나의/뻔뻔한 채무입니다.’

아, 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꼭 내 마음을 들킨 것 같다. 내 어머니에게 진 외상값을 갚지 못했다. 돌아가셨으므로 갚을 길도 없다.

추석연휴가 길다. 코로나19로 고향땅도, 성묘도, 여행도 가지 못하는 답답한 나날들. 그러나 소야스님처럼 내 이웃과 내 아이들과 내 부모님을 생각하기엔 더없이 넉넉한 시간이 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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