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지방 산맥과 하천 개념도. (그래픽=김고은 박사)
수원지방 산맥과 하천 개념도. (그래픽=김고은 박사)

수원(水原)의 어원은 서해안의 평야지대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수원이라는 지명이 지어진 것은 1271년(고려 원종12)이다. 조선시대 이전의 수원은 바닷물이 만조일 때 장마가 지면 물이 빠지지 않아 '물 벌'이 되는 모습을 상징한다고 한다.

지리적으로 옛 수원은 북쪽의 광교산을 기점으로 서남쪽 서해안까지 길게 형성돼 있다. 1914년 이전의 수원은 서남쪽의 안중반도 지역과 우정면.장안면이 있는 삼괴반도(三槐半島)지역, 그리고 광교산 아래의 오늘날 수원지역으로 형성됐다. 1914년 일제는 안중반도 지역의 5개 면을 평택에 편입시키고 대신 수원에는 당시 서북쪽에 위치한 남양군을 수원에 편입시켜 반도 하나를 주고 반도 하나를 편입시켜 형태면에서는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백두대간산경도. (자료=국토연구원)
백두대간산경도. (자료=국토연구원)

수원지방의 지형을 살펴보면 북쪽으로 한남정맥이 지나가고 있다. 한남정맥은 백두산에서 시작해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중간지점인 속리산 천왕봉에서 분기한 한남금북정맥이 안성 칠장산에 와서 다시 서남쪽으로 금북정맥이 분기되고 북서쪽으로 한남정맥이 분기해서 용인 석성산을 거쳐 광교산 수리산을 거쳐 김포 문수산 까지 연결되는 산맥이다.

대동여지도1861년.(자료=국립중앙도서관소장)
1861년 수원부근 대동여지도.(자료=국립중앙도서관소장)
1861년 수원인근 대동여지도.(자료=국립중앙도서관소장)
1861년 수원인근 대동여지도.(자료=국립중앙도서관소장, 그래픽=김고은 박사)

수원은 한남정맥의 상징적 주봉인 광교산을 주산으로 하고 있는 고을이다. 수원의 산세는 광교산 시루봉을 주봉으로 서쪽으로는 수리산 하단부를 거쳐 칠보산을 경유, 고금산을 지나 정남면의 남산으로 이어진다. 동쪽으로는 광교산 형제봉을 거쳐 소실봉 ~ 청명산 ~ 매미산 ~ 반석산 ~ 반월봉 ~ 독산성으로 이어져 거대한 분지를 형성하고 있다.

수원의 산맥과 하천 약도. (그래픽=김고은박사)
수원의 산맥과 하천 약도. (그래픽=김고은박사)

수원의 내부구조는 광교산에서 연결된 작은 산줄기가 손의 형태로 형성된 지형이다. 산과 산 사이로 하천이 형성됐다. 동쪽에서부터 원천리천, 수원천, 장다리천, 서호천, 황구지천이 광교산에서 발원해 수원의 하류부인 황구지천에 합류, 다시 오산천과 합류하고 다시 진위천과 합류한다. 하류에 내려와서는 안성천과 합류해 아산호를 거쳐 서해로 흘러간다.

수원의 이러한 지형은 전국 어느 도시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이다. 한마디로 수원의 지형을 표현한다면 산맥과 하천이 손깍지를 끼고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이같은 지형특성으로 상류지역인 오늘날의 수원지역은 물이 귀했기에 저수지를 많이 만들어서 물 부족 현상을 해결했다.

동쪽의 원천리천에는 신대저수지와 원천저수지가 만들어졌고, 수원천에는 광교저수지, 서호천에는 일왕저수지(만석거)와 서호(축만제)가 있으며, 황구지천에 왕송저수지와 일월저수지가 만들어져서 물의 도시가 되었다.
 
반대로 하류부 화성지역은 하천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대형 방조제를 축조해 물 문제를 해결했다. 동쪽 하천인 안성천 하류에는 아산호(평택호)를 축조했다. 발안천 하류에는 남양호가 축조됐다.

1767년 이후 제작 수원지방지도. (자료=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1767년 이후 제작 수원지방지도. (자료=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그래픽=김고은 박사 )

수원(水原)이라는 이름의 도시특성이 잘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원은 이같이 삼태기 같은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내 땅에 떨어진 빗물만 받게 된다. 2020년의 긴 장마와 폭우 속에서도 큰 물난리를 면할 수 있었음은 신이 준 자연의 혜택이라 할 것이다.

아쉬운 점은 수원지방의 우수한 지리적 특성을 잘 지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산맥은 무지로 인해 잘려나가고 끊겨 연결이 되지 않아 오갈 수 없는 곳이 수없이 많이 발생했다. 물길 또한 잘려나가고 복개하고 가로 막아 많은 부분이 훼손됐다.

장다리천은 봉녕사에서 시작돼 동수원사거리를 거쳐 인계동과 권선동을 통과, 버스터미널을 거쳐 아이파크시티 7단지를 경유해서 수원천에 합류한다.

복개된 장다리천. (사진=김충영 필자)
복개된 장다리천. (사진=김충영 필자)

그런데 1980년대초 지만인계토지구획정리사업과 권선토지구획정리사업을 하면서 직선으로 바뀌고 상류부터 복개를 해 1987년경 현재 버스터미널까지 덮었다.

당시 나는 1983~1985년까지 건설과에서 근무하고 다시 도시과에 복귀했다. 그런데 장다리천 복개사업을 도시계획계에서 하고 있어서 1985년부터 1987년까지 장다리천 복개업무를 담당했다. 당시의 무지를 이제와 생각한다.

복개된 수원천. (사진=이용창 사진작가)
복개된 수원천. (사진=이용창 사진작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복개됐던 수원천이 자연하천으로 복원된 것이다. 수원천의 복원은 화성의 복원이라는 의미도 있다. 남수문의 복원은 수원천의 복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수원천의 복원은 생태계의 복원은 물론이고 수원시민들에게 여가와 휴식공간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고 할 것이다. 

복원된 수원천. (사진=김충영 필자)
복원된 수원천. (사진=김충영 필자)

물의 도시 수원의 아쉬운 점이라면 수원천과 황구지천 하류부가 수원비행장을 통과한다는 것이다. 이는 물길 관리는 물론 산책로 단절로 전국을 잇는 전국의 하천 네트워크에서 배제돼 수원은 내륙속의 섬이 됐다.

수원천이 비행장을 통과하고 있다. (사진= 김충영 필자)
수원천이 비행장을 통과하고 있다. (사진= 김충영 필자)
황구지천이 비행장을 통과하는 모습. (사진=김충영 필자)
황구지천이 비행장을 통과하는 모습. (사진=김충영 필자)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원천리천이 비행장 옆으로 흐르고 있어 군과 협의한다면 개선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요즈음 시대는 걷기가 건강과 레저 활동을 하는데 필수 운동이 됐다. 나도 하루 평균 2만보 이상은 반드시 걷는다. 산맥과 물길을 연결하는 걷기 좋고 아름다운 길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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