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궁광장 조감도. (자료=화성사업소)
행궁광장 조감도. (자료=화성사업소)

행궁광장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세 분야로 나눠서 진행해야 했다. 첫째는 행정 분야이다. 둘째는 토지와 건물 보상 그리고 철거작업이다. 세 번째는 광장조성공사로 나뉠 수 있다. 

행정절차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사업계획이 확정돼야 했다. 사업면적은 6900평, 이 가운데 광장면적이 5300평이다. 건물 54동이 편입됐다. 

수원우체국만 남은 모습. (사진=김충영 필자)
수원우체국만 남은 모습. (사진=김충영 필자)

광장 보상은 2004년7월 시작돼 13개월만인 2005년 8월 수원우체국을 제외하고 보상이 끝났다. 건물 또한 2005년 9월 철거가 완료됐다. 이런 상황에서 수원의 중심축제인 화성문화제는 수원우체국이 남아있는 흙 마당에서 2005~2007년까지 3년간 열렸다. 

특히 2006년 화성문화제 때 비가 많이 와서 진흙마당에서 축제를 한 것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광장공사가 답보상태를 거듭하자 주변상가에 손님이 오지 않았다. 2007년 2월, 주민들은 생업에 문제가 발생하자 민원을 제기하고 나섰다. 보상비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광장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는데 공감하고 협조를 하였는데 국가기관인 수원우체국이 협조를 안 하면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우체국 철거가 완료된 모습. (사진=김충영 필자)
우체국 철거가 완료된 모습. (사진=김충영 필자)

그리고 행궁앞 도로가 막히자 행궁 뒷동네 진출입이 불편하게 됐다. 주민들은 화성사업소와 수원우체국, 수원경찰서에 이르기까지 민원을 제기하고 나섰다. 그러자 수원우체국은 수원시 천천동에 부지를 마련해 2007년 말까지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행궁 앞 사거리가 삼거리로 바뀜으로써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교통체계를 바꿔달라고 수원경찰서에 요구했다. 당시 수원경찰서장은 현장에 직접 나와 해결책을 찾기도 했다. 그리고 U턴 체계로 바꾸기 위해서는 추가로 도로반경을 넓혀야 했는데 그곳에 고압 변전함이 있어 시공이 어려웠다. 

경찰서장은 한전에 직접 전화를 걸어 민원을 해결해주는 적극성을 보이기도 했다. 화성사업소에는 행궁앞 도로가 폐쇄됨에 따라 대체노선인 한데우물길 정비를 요구했다. 

2007년 마을 만들기 사업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나는 주민 대표인 이용학, 이구림, 장병익, 백낙현 씨 등에게 주민 협의체 결성을 요청했다. 

공사전 한데우물길 모습. (사진=김충영 필자)
공사전 한데우물길 모습. (사진=김충영 필자)
완성된 한데우물길. (사진=경기데일리 최진연 기자)
완성된 한데우물길. (사진=경기데일리 최진연 기자)

화성사업소가 설립된 이후 여러 해 동안 사업을 진행하고 있음에도 주민협의체가 없어서 아쉬워하고 있던 참이었다. 이렇게 행궁길발전위원회가 결성됐다. 행궁길발전위원회는 팔달문에서 행궁으로 이어지는 '한데우물길 정비사업'을 앞장서서 추진했다.

한데우물길 정비사업은 '수원시 마을만들기 1호 사업'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사업이었다. 이후 행궁길발전위원회는 빈집미술관사업, 공방거리 조성사업, 행궁동 레지던시사업, 생태교통사업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이렇게 행궁동은 수원시 마을만들기 1번지 마을이 됐다.

한편으로는 행정절차를 진행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문화재위원들은 광장 조성계획안을 놓고 갑론을박 주문이 많았다. ‘광장이 행궁과 어울리지 않으므로 광장보다 공원개념으로 조성할 것’을 주문했다.

‘현 단계에서 확정하기보다 최소한의 시설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옥형태는 행궁에 저해되므로 지양해야 한다’ ‘명당수와 홍살문을 복원해야 한다’ ‘지하공간을 활용하고 지상은 가급적 유보공간으로 두어야 한다’ ‘중앙통로는 판석포장을 해 자연스럽게 조성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이 제시됐다.

당시 사정은 수원우체국의 처분만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화성사업소장인 필자로서는 참으로 답답한 심정이었다. 

나는 직원들에게 수원우체국 신축공사장을 방문해 관계자들을 격려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래서 떡을 해 공사장에서 일하는 분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우체국 이전 지연으로 공사가 늦어지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광장계획을 시간적 여유를 갖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6년 6월 광장조성사업이 답보상태에 빠지자 (사)화성연구회로부터 광장조성 아이디어 공모전을 열겠다는 건의가 들어왔다. 당시 많은 작품이 접수됐다. 수원우체국은 1년 넘게 공사를 마치고 2007년 11월말 장안구 천천동으로 이전했다. 즉시 철거공사가 진행됐다. 

그 무렵 김용서 시장이 필자를 불렀다. 광장바닥이 밋밋하니 화성의 이미지를 나타낼 수 있는 도자판을 깔자고 했다. 나는 참으로 난감한 생각이 들었다. 마당은 마당이어야 하는데 도자판을 깔면 활용에 제약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시장의 의견에 이의를 달았으나 시장의 의지는 확고했다. 

해가 지나 2008년 2월 자문회의를 다시 열게 됐다. 자문위원들은 도자판 시공을 반대하지는 않았으나 파손문제와 안전상 문제가 없도록 하라는 의견이 제시됐다. 그래서 도자판을 5cm 두께로 시공할 것을 주문했다.

광장공사는 2008년 봄이 돼서야 시작됐다. 1911년 지적원도의 지적선을 강화토(소일콘)로 광장 바닥에 새겨 넣었다. 광장 진입부에는 능행도 병풍에 그려진 진찬연도와 사미도, 낙성연도, 야조도의 그림을 도자기 타일을 제작해 모자이크 식으로 시공했다. 

광장에 시공된 야간군사 훈련 도자판 모습. (사진=화성사업소)
광장에 시공된 야간군사 훈련 도자판 모습. (사진=화성사업소)

광장 앞부분에는 화성에서 주둔한 장용영 군사들이 익히던 무예24기 동작을 제작해 배치했다. 왼편 물길 옆에는 능행차 모습을 그린 반차도를 배치했다. 그리고 전면에는 석재로 된 신풍교를 복원했다. 행궁과 광장의 경계에는 발굴과정에서 찾아낸 명당수를 복원했다. 광장공사는 2008년 10월 화성문화제 개최에 앞서 공사가 마무리됐다. 

행궁앞에 복원된 신풍교와 명당수 모습. (사진=김충영 필자)
행궁앞에 복원된 신풍교와 명당수 모습. (사진=김충영 필자)
완성된 행궁광장 모습. (사진=화성사업소)
완성된 행궁광장 모습. (사진=화성사업소)

또 여민각 공사와 화성홍보관, 서장대가 같은 시기에  마무리돼 2008년 화성문화제는 행궁광장과 여민각 준공식을 겸해 행궁광장에서 열렸다. 행궁광장이 만들어지자 수원시의 각 부서는 각종 행사를 경쟁적으로 행궁광장에서 개최해 겨울과 여름철을 제외하면 매주 행사가 열렸다. 당초 우려했던 시위는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행궁에는 정조대왕도 수원시장도 없기 때문이었다. /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다음호에는 화성행궁 광장을 만든 이야기(3) '나는 정조대왕의 작품을 망친 사람이다'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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