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사전엔 비(雨)에 관한 살가운 표현들이 많다.

줄잡아 헤아려도 60가지가 넘는다.

내리는 양(量), 소리, 시기, 기간 그리고 효과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을 붙였다.

빗방울이 가장 작은 비부터 살펴보자.

첫째가 ‘안개비’다. 생소하지만, 그보다 조금 더 내리는 비는 ‘는개’라 부른다.

과거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수록돼 친숙한 ‘이슬비’는 그 다음이다.

속담에 자주 등장하는 ‘가랑비’는 이슬비보다 양이 많을 때 주로 쓴다.

또 추적추적 내린다는 귀에 익은 ‘구슬비’ 외에도  ‘실비’ ‘가루비’ ‘날비’ ‘싸락비’ ‘보슬비’도 있다.

지금은 거의 안쓰지만 겨우 먼지 날리지 않을 정도로 조금 오는 비라는 뜻의 ‘먼지잼’도 있다.

모두가 잔비에 속하는 이름들이다.

그런가 하면 큰 비를 부르는 이름도 많다.

대표적인게 ‘장맛비’고, 빗발이 아주 굵게 쏟아질 때 쓰는 ‘달구비’, ‘소나기’처럼 채찍을 치듯 세차고 굵게 쏟아진다고 해서 붙여진 ‘채찍비’, 물을 퍼붓듯이 내린다해서 부르는 ‘억수’ 등등...

생활 속 비를 지칭하는 이름도 다양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별로 각각 다른데. 모종을 내는 시기나 모내기철에 내리는 비는 ‘단비’ ‘꿀비’ ‘약비’라 부른다.

또 농사일이 시작되는 초여름비는 ‘일비’, 농사일 뒤끝에 내리는 비는 잠이나 자라고 한다 해서 명칭이 ‘잠비’다.

추수철 가을비는 ‘떡비’라 했고 겨울비는 애주가들이 ‘술비’라 부른다.

농한기 무료함을 달래려는 일종의 ‘핑계비’인 셈이다. 모두가 자연현상을 빗댄 것이어서 정겹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비에 대한 정겨운 표현은 ‘여우비’가 아닌가 싶다.

맑은 날 신기루처럼 느닷없이 왔다 가는 현상속에 얄미움과 아쉬움이 함축돼 있어 그렇다.

반면 만인의 미움을 사는 비는 단연 ‘장맛비’다. 

워낙 질기게 내리고 사람의 몸과 마음을 처지게 하기 때문이다. 반갑지 않은 손님, 오랫동안 끄느름하게 내린다고 해서 ‘궂은비’라는 별칭의 ‘장맛비’ 계절이다.

그리고 그의 심술이 올해는 유별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전국 곳곳에 호우주의보 및 호우특보도 발효중이다.

예년보다 늦게 시작된 '지각 장마'지만 독함이 숨어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는 예보도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1961년 관측 이래 제주에서 6월이 아닌 7월에 장마가 시작된 것은 1982년 이후 39년 만이다.

이례적인 지각 장마는 대기 불안정으로 인해 공기 순환이 막히는 '블로킹' 현상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런 장마철이면 으레 생체 리듬에 변화가 생기기 마련이다.

기체가 기압과 습도 및 일조량에 민감해서다. 장마철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이 같은 현상과 무관치 않다.

비에 대한 낭만은 가슴에 담고 심신과 생활 안전에 특별히 신경을 쓰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가 바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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