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젊은이가 돌다리를 건너다 잘못 놓여진 돌을 디디게 되어 물에 빠져 옷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빨리 옷을 갈아입을 마음으로 서둘러 집에 왔습니다.

어머니께서 젖은 옷을 보고는 연유를 물었습니다.

젊은이가 답하기를 "개울에 잘못 놓인 돌을 헛디뎌 물에 빠졌습니다."

어머니께서 물으시기를 "그럼 그 돌을 바로 잡아두고 왔느냐" 물었습니다.

아들이 답하기를 "그리 못하였습니다. 옷을 얼른 갈아입을 마음에 그냥 왔습니다"고 답하였습니다.

노모께서 차분히 나무라시기를 "그 돌에 다른 사람들도 넘어지기 쉬울 테니 먼저 가서 돌을 바로 잡아주고 옷을 갈아입으려무나" 하시기에 옳은 줄로 알고 그리 하였습니다.

이런 마음을 배려라 합니다.

이웃이 겪게 될 어려움을 생각하고 먼저 어려움을 제거하는 마음입니다.

배려하는 마음은 세상살이에서 반드시 지녀야 할 마음가짐입니다.

이웃이 당할 어려움을 살펴 미리 조치하는 마음이 배려하는 마음의 기본입니다.

요즘은 살림살이가 너 나 할 것 없이 삭막하여 상대를 배려하려는 마음가짐이 너무나 어렵습니다.

한편, 관용은 상대에 대한 너그러운 마음입니다.

이웃이 범한 과오나 실수에 대하여 넓은 마음으로 품어주는 마음입니다.

그러기에 배려와 관용은 모든 크리스천들이 반드시 지녀야 할 마음입니다.

관용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봅시다.

관용이란 쉽게 이해하자면 너그러움입니다.

상대의 과오나 약점에 대하여 너그러움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대체로 우리들 기독교도들에게는 관용의 마음이 부족한 편입니다.

오래 전의 이야기입니다만 두레마을에 서울에서 남편의 끊임없는 구타에 못 견디어 온 한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 처지가 딱하여 공동체 식구로 받아들여 주었는데 마을에 먼저 와 일하고 있던 한 총각과 정분이 깊어져 둘이서 나를 찾아와 결혼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나는 기꺼이 축하하여 주며 행복하게 살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마을에 먼저 와 있던 자매들이 둘의 결혼을 반대했습니다.

내가 그 이유를 물은즉 총각이 너무 손해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총각은 숫총각인데 때 묻은 여인과 결혼하는 것이 합당치 않다는 의견이었습니다.

나는 그런 말에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뭐라꼬 때 묻었다고? 때 묻었으면 목욕하면 될 거 아닌가?"

물론 둘은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리고 지금은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와 같이 크리스천들에게 관용이 부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셨는데 우리는 타인의 허물이나 약점을 너그러움으로 감싸주지 못하고 오히려 상처 주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성경에서 이르기를 사랑과 관용으로 사람들을 대하라 일러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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