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는 세 번째, 이름은 네 번째나 바뀌다

수원문화예술회관 조감도. (사진=김충영 필자)
수원문화예술회관 조감도. (사진=김충영 필자)

우리나라 공연장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원래 세종문화회관의 자리에는 서울시민회관이 있었다. 서울시민회관은 당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연장이었다. 그러나 1972년 12월 2일, 서울시민회관에 화재가 발생해 전소됐다. 당시 한국에는 서울시민회관 이외에는 이렇다 할 대형 공연장이 없던 시절이었다.

때문에 서울시민회관을 대체할 종합 공연장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1974년 1월에 서울시민회관 자리에 세종문화회관 건립이 추진돼 1978년 4월에 개관했다. 그 다음으로 문화회관 건립이 추진된 도시는 부산시였다. 

문화관광부는 1984년 지방공연문화 발전을 위해 각도에 지방문화예술회관 건립을 추진했다. 이 지침은 경기도를 경유, 수원시에 시달됐다. 

수원시는 문화예술회관 건립사업을 건설과에서 추진토록 업무를 분장했다. 당시 필자는 8급에서 7급으로 승진해 1983년 8월 도시과에서 건설과 하수계로 발령이 났을 때였다. 당시 하수계의 업무는 미약했다. 예산은 고작 몇 억원으로 도로변 우수전 보수와 막힌 하수관 준설, 폭우로 인해 유실된 하천유지관리 정도였다. 

당시 이유하 건설과장은 비교적 업무 여력도 있고 도시계획업무를 담당했던 필자가 적임자라고 판단해 수원문화예술회관 건립업무를 배당했다. 

수원문화예술회관부지 위치변경 사진. (사진=수원시 항공사진서비스)
수원문화예술회관부지 위치변경 사진. (사진=수원시 항공사진서비스)

수원문화예술회관 건립업무는 첫 번째로 문화예술회관 부지를 선정하는 일었다. 문화예술회관 부지는 시청 왼쪽에 있는 소위 의회 부지에 건설하는 것으로 결정이 됐다. 이어 건축현상설계를 발표하자 몇 개의 작품이 응모됐다. 

작품선정 위원회를 구성해 심사한 결과 부산문화예술회관을 설계한 성립건축 임장렬의 작품이 선정됐다. 당시 심사위원회에서는 문화예술회관의 특성으로 볼 때 부지가 너무 협소하므로 넓은 부지에 지을 것을 주문했다. 당시 수원문화예술회관을 지을 땅은 여러 여건을 감안 할 때 시청 앞의 올림픽공원이 유일했다. 

그래서 수원문화예술회관 입지를 올림픽공원으로 변경하고 실시설계를 추진했다. 1985년 중반 실시설계가 완료 단계에 이르자 건축허가를 위한 서류검토에 들어갔다. 그런데 도시공원법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중대한 착오가 발견됐다. 도시공원법에는 건폐율이 대지면적의 10%를 넘을 수 없다는 조항이 있었다. 그때 하늘이 노래지는 느낌을 받았다. 

수원시청앞 토지는 권선동 1012번지 5만8454㎡(1만7682평)이었다. 도시공원법상건축물의 바닥 면적은 5845㎡(1768평)가 최대 규모였다. 그런데 수원문화예술회관의 건축면적은 8817㎡(2667평), 건축연면적은 2만2000㎡(6655평)여서 건폐율을 넘어서는 규모였다. 그래서 고민에 빠지게 됐다.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걱정이 엄습해왔다. 그렇다고 뜬금없이 과장에게 보고할 수도 없는 일었다.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 권선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 경계지점인 인계동과 매탄동 일원 94만9000㎡(28만7071평)에 한국토지공사가 매탄1지구택지개발사업을 하겠다고 1984년 12월 31일 지구지정을 한 상태였다.  

한국토지공사는 동수원의 요충지를 수원시 도시기본계획 내용대로 개발하겠다고 한 것이다. 동수원 중심상업지역 옆에 위치한 근린공원 22만5180㎡(6만8117평)를 택지개발사업으로 개발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토지보상을 거쳐 사업이 준공되면 수원시 땅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수원문화예술회관을 매탄1지구 공원부지에 건립하는 경우를 세부적으로 검토했다. 문제점이 있었다. 하나는 실시설계의 상당부분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설계자의 실수도 있으므로 설계자와 협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는 택지개발사업이 조속히 추진돼야 수원시문화예술회관을 착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런 사항을 이유하 건설과장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이 과장은 즉시 현장에 나가보자고 하는 것이었다. 당시 현장은 임야와 전답으로 돼있었다. 수원문화예술회관 부지로는 손색이 없다는 판단을 하고 과장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도시계획을 오랫동안 한사람이 그런 실수를 했냐고 꾸중했다. 과장은 이후 이런 사정을 국장, 부시장, 시장께 보고하고 승낙을 얻게 됐다. 남은 일은 설계자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첫째는 세부설계도는 바뀌지 않는다고 해도 대지 위치가 변동됐으므로 수십 장의 평면도를 새로이 그려야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설계자는 새로운 문제를 제기했다. 

건축물의 대지가 바뀔 경우 건축물이 앉을자리의 토질조사를 새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토질조사비를 추가로 지급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런데 이미 예산이 지난해의 사업비였으므로 예산이 없는 형편이었다. 

설계자에게 사정을 해야 했다. 다행히 현실을 받아들여 설계자의 부담으로 토질조사를 실시해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필자는 한편으로는 하수계 본업무인 하수도 사용료 징수조례와 오수관거 기본계획 수립, 하수처리장건설 타당성조사 용역과 오수관거 설계용역 등 업무를 2년여 동안 추진해 정상궤도에 올림으로써 1986년부터 사업이 추진되기에 이르렀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수원시는 건설과 하수계를 1985년 10월 31일 하수과로 승격시켰다. 그런데 당시 묘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었다. 필자는 건설과 하수계 소속으로 그동안 수원문화예술회관 설계업무와 하수계 업무 전반을 담당했다. 그래서 하수과로 가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수과 직제가 만들어지자 당시 하수과장 발령이 먼저 났다. 그러자 하수계는 하수과 사무실로 옮겨서 일을 하게 됐다. 그런데 계장과 직원발령이 지연되는 현상이 발생하자 건설과장인 이유하과장과 하수과장인 성낙흔 과장 간에 필자의 자리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게 된다. 건설과장은 “김충영은 건설과 소속이므로 건설과에 남아야 한다”고 했다. 

하수과장은 당연히 하수과로 발령이 나야 그동안 추진한 업무가 연속적으로 추진될 것이 아니냐고 했다. 하지만 필자는 도시과에서 오랫동안 근무해서 도시계획이 전공이었다. 사실 2년 반 전 도시과를 떠나면서 도시과에서는 아쉬워했었다. 1985년 10월 31일자 인사발령은 건설과도 하수과도 아닌 도시과로 발령이 났다. 

수원문화예술회관 기공식 모습. (사진=경기도 멀티미디어)
수원문화예술회관 기공식 모습. (사진=경기도 멀티미디어)

그래서 하수계 업무를 안성군에서 수원시로 전출오게 된 이용호(토목7급, 전 수원시 도시정책실장)에게 인계했다. 이후 수원문화예술회관은 그가 담당했다. 이어 1985년 12월 18일에는 수원문화예술회관 기공식을 가졌다. 시공사는 코오롱건설이 맡았다. 당시 1차 공사비가 5억원 정도로 단지조성과 기초터파기 토목공사가 실시됐다. 

그런데 당시 수원문화예술회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분이 있었다고 증언해준 분이 있었다. 며칠 전 ‘김충영의 수원현미경 37회' ‘수원시청사에 얽힌 이야기’를 읽고 수원문화예술회관 추진과 관련 문자를 주었다. 증언을 해준 분은 1984년 6월부터 1988년 6월까지 회계과에서 근무했던 박덕화(전 영통구청장)의 증언이다. 

백세현 경기도부지사 취임식. (사진=경기도 멀티미디어)
백세현 경기도부지사 취임식. (사진=경기도 멀티미디어)

1983년 12월 27일부터 1985년 12월 16일까지 경기도 부지사를 했던 백세현 부지사로부터 1985년 11월경 수원시청사와 수원문화예술회관 건립추진 사항을 보고해달라는 전갈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당시 권영주 회계과장과 박사준 용도계장, 박덕화 담당이 가서 추진사항을 보고했다고 한다. 

백 부지사는 1978년 8월 2일부터 1980년 5월 8일까지 수원시장으로 재직한 분이었다. 그분은 수원백씨였다. 그런 관계로 백 부지사는 수원에 관심이 많았다. “왜 수원문화예술회관이냐, 경기도문화예술회관이 아니냐”고 했다고 한다.

경기도문화예술회관 공사중 모습. (사진=경기도 멀티미디어)
경기도문화예술회관 공사중 모습. (사진=경기도 멀티미디어)

수원시는 예산도 부족하고 하니 경기도에 이관하라고 했다고 한다. 또 수원시청사도 내무부 규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설득을 해서 최소 5층 건물로 지으라고 내무부 관계관을 소개해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수원문화예술회관은 1986년 경기도로 이관하게 됐다. 

이 때부터 경기도가 주관했다. 사실 당시 수원시 형편으로는 250억원이 들어가는 공사비가 부담이 됐다. 이리하여 수원시의 부담은 덜었으나 경기도문화예술회관이 됨으로써 불편한 점은 운영권이 수원시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건물은 경기도 관할이고, 땅은 수원시로 돼있어 소유권의 불부합 문제가 발생하게 됐다. 

그리고 경기도문화예술회관은 공사중이던 1988년 7월 29일 오후 1시쯤 사고가 발생했다. 3층 슬래브 받침대가 부서지면서 무너져 내려 작업 중이던 인부 5명이 콘크리트에 깔려  숨지고, 6명이 경상을 입는 큰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수습은 물론 공사가 한동안 중단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경기도문화예술회관 개관기념 다과회 모습. (사진=경기도 멀티미디어)
경기도문화예술회관 개관기념 다과회 모습. (사진=경기도 멀티미디어)
경기도문화예술회관 개관식후 퇴장하는 이재창 도지사 모습. (사진=경기도 멀티미디어)
경기도문화예술회관 개관식후 퇴장하는 이재창 도지사 모습. (사진=경기도 멀티미디어)

경기도문화예술회관은 착공한지 5년 만인 1990년 12월 31일 준공됐다. 이어 1991년 6월 27일 개관 공연을 시작으로 수원지역의 문화 메카로 뿌리를 내렸다. 

2003년 12월에는 재단법인이 되면서 '경기도 문화의 전당'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2020년 3월에는 '경기아트센터'로 명칭이 변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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