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해를 보내며 묵상을  좀 오래 해볼까 합니다.

고려시대 유학자였던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신라가 망한 원인들을 쓰는 부분에서 천년을 이어오던 신라가 망하게 된 원인들을 적으면서 신라 불교에 대하여 적은 부분이 있습니다.

'신라 땅에 사찰과 승려가 너무 많았더라'고 적었습니다.

신라 불교는 신라를 지탱하여 온 정신적인 기둥이었습니다.

한 예로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 중에서 신라가 가장 늦게 건국되었고 가장 미약한 나라였습니다.

그런 신라가 3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힘은 신라 불교가 중심적 역할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불교적 가치관의 바탕 위에 청소년 운동으로 화랑도 운동을 일으켜 삼국 통일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그런 신라 불교가 변질이 되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종래에는 신라가 망하는 처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사찰이 많고 승려가 많았던 것이 왜 신라 멸망의 원인 중의 하나가 되었겠습니까?

승려들은 노동을 하지 아니하고 세금을 내지 아니하고 병역 의무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승려가 너무 많아져 생산성이 떨어지게 되니 나라가 망하는 원인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유학자였던 김부식의 글인지라 그대로 다 받아들일 순 없다 치더라도 일리는 있는 지적이라 하겠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신라 말기에는 팔공산 둘레에만 사찰이 7천개가 넘었다 합니다.

내가 새삼스레 신라의 승려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한국교회의 목사에 대한 생각 때문입니다.

내 생각으로는 한국에 신학교와 교회들이 너무 많고 목사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교인들과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목사들이 많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점에서 문제가 됩니다.

물론 맡은 양 떼를 위하여 섬기는 정신이 있는 좋은 목사가 많다면 더 말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형편이어서 염려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에 신학교와 목사가 이렇게 많게 된 것은 1970년대와 80년대 한국교회가 크게 부흥하였던 호황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래서 1970년에 한국교회 신도 수가 390만이었습니다. 70년대 10년간 한국교회는 부흥에 부흥을 거듭하여 1980년에 810만으로 증가하였습니다. 말하자면 한국교회의 최고 호황기를 맞이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시기에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회를 세우면 부흥되고 목사가 존경받고 대우 받는 시대가 되어지니까 온갖 군소 교단들이 신학교를 세우고 목사를 양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시절 신학교가 무려 313 학교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목사 후보생인 신학교 졸업생이 무려 1만6000명이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나 많은 신학교에 그렇게 많은 목사 후보생들이 배출되게 된 원인이 1970년대와 80년대에 한국 개신교가 최대의 호황기를 맞아 목사직이 좋은 직업이 되면서부터입니다.

그 시절엔 목사직의 인기가 교수, 판사에 이어 3위에 오르던 때입니다.

그래서 자질이 안 되는 인사들이 신학교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렇게 되니 신학교를 세우면 안 되는 사람들이 신학교를 세우고 목사를 배출하게 되었기에 문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제 와서 이런 부작용을 어떻게 극복하여 나가야겠습니까?

한국교회로서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앞으로 민족 복음화에 성패를 결정짓는 중차대한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 온 나라와 온 교회가 고통당하고 있는 코로나19 전염병이 한 기회가 되어질 수도 있겠습니다

스님들 중에 스님답지 못한 스님들을 일컬어 '돌중'이라 부릅니다. 그런 식으로 목사들 중에서 목사답지 못한 목사를 부른다면 '사이비 목사'라 할 수 있겠습니다. 문제의 심각함은 예상 외로 사이비 목사가 많다는 점입니다.

성경에선  목사를 목사장이라 부릅니다. 3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는 절도와 강도 같은 목자입니다.

양떼를 지키는 목자에 비유하여 목사를 표현하고 있기에 절도와 강도 같은 목자는 바로 교인들의 등을 치고 괴롭히고 이용하는 사이비 목사입니다.

두 번째 목자는 삯꾼 목자입니다.

목자 직이 그냥 직업이 되어 양들에 대한 애정이 없이 그냥 직업으로서 목자 직을 수행하는 목자입니다. 목사들 중에 태반이 그런 류의 목사인 듯합니다.

목사로서 치열한 사명감을 지니지 못한 채로 한갓되이 직업으로서 목회하고 있는 목사들입니다.

세 번째 참된 목자입니다.

양들을 위하여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 각오가 된 목자입니다.

스님들 중에서도 그런 정신과 삶의 자세를 지닌 스님들을 큰스님 혹은 고승이라 부릅니다.

목사들 중에도 그런 목사들이 있습니다. 사심을 버리고 오로지 교인들을 위하여 헌신하고 있는 목사들입니다.

마지막으로 묵상해 봅니다.

한국불교의 자랑스런 전통이 있습니다. 자기 수행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 큰스님들이 시대마다 있었던 점입니다.

지금도 한국불교의 자랑거리는 수행에 강한 점입니다.

물론 지금도 소위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을 쏟는 돌중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한국불교의 전부가 아닙니다.

지금도 어느 사찰의 어느 암자에서 내공을 쌓는 일에 전념하고 있는 큰스님들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한국교회에서 거의 7만에 가까운 목사들 중에 목사의 격을 떨어뜨리는 목사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인들로부터 빈축을 사고 기독교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있는 목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온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목사다운 목사들이 많습니다.

그런 목사들은 진실하고 겸손하기에 소리 없이 섬깁니다. 그런 목사들이 있기에 한국교회는 여전히 희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형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들 중에도 진실하고 영성이 깊고 한국교회를 이끌어 갈 자질이 있는 좋은 목사들이 있습니다.

모두가 한국교회 전체를 바르게 이끌어 갈 자질을 갖춘 목사들입니다.

물론 이런 큰 교회 목사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맡은 양떼들을 생명 걸고 지켜 나가는 양질의 목사들이 있습니다.

나는 이런 목사들을 보며 한국교회의 장래가 밝다는 인식을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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