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문화제의 하이라이트인 ‘정조대왕 능행차’를 못 본지도 3년이나 지났다. 2019년엔 아프리카 돼지열병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경기도와 수원시의 구간을 전면 취소했다. 서울에서만 펼쳐졌다. 2020년과 2021년은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구간이 취소됐다.

내년엔 볼 수 있으려나?

1996년 수원화성 축성 200주년을 맞아 정조대왕 능행차는 비로소 제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 전에도 능행차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예산과 인력 등의 문제로 대폭 축소된 형태였다. 약간 큰 규모의 가장행렬이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직선제 민선 1기 시장에 당선된 심재덕 시장이 화성문화제를 세계적인 축제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수원화성 축성 200주년인 1996년에 화성문화제, 특히 정조대왕 능행차를 본격적으로 재연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능행차 인원 규모가 수 백 명에 불과했지만 수 천 명으로 확대하고 말도 수 십 필 투입시켰다. 행차 구간을 지지대 고개부터 화성시 융릉까지로 연장했다.

나도 그때 군사복장을 하고 지지대고개에서 융릉까지 갔다. 수원구간 종착지인 수원고교에서 화산릉까지는 버스로 이동했다. 행렬은 장관이었다. 길옆에는 관광객이 넘쳤고 국내외 언론에서는 처음 보는 이 장관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내가 속한 (사)화성연구회도 수원화성문화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회원들은 2001년과 2002년 연이어 조선시대 군사복장을 하고 능행차에 참여했다.

능행차에 참여한 필자.
능행차에 참여한 필자.

능행차 행렬 중엔 ‘청연군주’와 ‘청선군주’가 있었다. 사도세자의 딸들이다. ‘군주’란 왕세자의 적녀(세자빈 소생)로 외명부 정 2품이다.

‘공주’는 왕의 적녀(정궁 소생)이고 ‘옹주’는 왕의 서녀(후궁 소생)​다. 공주와 옹주는 모두 무품인데 품계를 따질 수 없을 정도로 귀한 신분이었기 때문이란다.

‘현주’도 있었는데 왕세자의 서녀로 외명부 정 3품이었다.

군주와 현주는 아버지인 왕세자가 보위에 올라 왕이 되면 비로소 각각 공주와 옹주로 승격했다.

사도세자의 딸인 ‘청연군주’와 ‘청선군주’는 생전에 공주가 아닌 군주로 불렸지만 고종 때 사도세자가 왕으로 추존되면서 함께 공주로 추증되었다. 그렇지만 정조 당시의 능행차를 재연한 것이므로 군주라고 한 것이다.

아무튼 사도세자와 정조, 그리고 사도세자의 딸인 청연군주와 청선군주는 수원과 인연이 깊다.

‘사도세자의 부마, 흥은위 정재화’ 전시회 포스터.
‘사도세자의 부마, 흥은위 정재화’ 전시회 포스터.

수원 화성박물관에서 지난 14일부터 내년 3월 27일까지 ‘사도세자의 부마, 흥은위 정재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정재화는 청선군주의 남편이자 사도세자·혜경궁의 사위다. 1766년 영조는 사도세자·혜경궁의 둘째 딸 11살의 청선 군주를 13살의 정재화와 혼인시킨다. 정재화는 용모가 출중하고 처신이 신중하여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정재화는 세자의 적녀와 결혼한 사람에게 주는 정3품의 흥은부위(興恩副尉)의 품계를 받았고 고종 때 흥은위로 추증됐다.

정재화의 아들 정의는 수원과 깊은 인연이 있다. 1795년(을묘년) 원행 때 수원 화성행궁에서 펼쳐진 혜경궁의 회갑 잔치에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에 어머니 청선군주를 모시고 참석했다.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을 관리하는 현륭원령도 지냈으며 수원판관 시절엔 정조대왕의 영정을 모신 화령전을 관리하는 화령전령도 겸했다. 그 후엔 동부승지와 여주목사, 형조참판 등도 지냈다.

이런 인연으로 흥은위 정재화의 후손들이 관련 유물을 수원시에 기증했고 이번 전시회에서 소중한 유물들을 보게 된 것이다. 2019년 후손들은 대대로 비장해 오던 흥은위 초상화와 왕실 하사품을 포함한 1천여 점의 유물을 수원시에 기증했다.

유물 가운데는 정재화의 아들 정의가 혜경궁과 정조 등 왕실 인물들과 주고받은 한글 편지가 있다.

전시회를 본 수필가 윤재열 선생은 “편지 내용에는 사사로운 왕실 가족의 일상이 남아 있다. 왕실이었지만, 그들도 평범한 고민을 나눴던 문화를 엿볼 수 있다”고 평가한다.

이 전시회에서는 기증 유물 중 일부인 조선 왕실 부마의 전신 초상화와 왕실 하사 유물을 함께 볼 수 있다.

코로나19 방역이 다시 강화되긴 했지만 놓치면 후회하게 될 귀한 전시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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