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임이 사라진 명절 ‘설’.

한 때 원일(元日), 원단(元旦), 세수(歲首) 등으로 불리며 온가족이 모이는 첫날이었지만 과거 일이 되어가고 있다.

덩달아 새해 첫 제를 올리는 차례(茶禮), 새 옷 입는 세장(歲粧)도 사라지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친.인척 어른 찾아뵙고 드리는 세배(歲拜)와 시절 음식을 대접하는 세찬(歲饌), 이와 곁들여 마시는 세주(歲酒)는 구경도 못하는 시절이 됐다.

하기야 부모 형제들도 만나기 애매한 시간의 연속이라 ‘설’의 의미를 따지는 자체가 호사(豪奢)지만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그렇다면 ‘설’ 어원은 어떻게 될까?

정설은 없지만, ‘낯설다’는 의미에서 ‘새로움’, ‘덜 익다’를 뜻하는 ‘설다’에서 왔다는 게 정설이다.

그런가 하면 나이가 ‘몇 살’이라고 할 때의 ‘살’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설날에 나이 한 살을 더 먹으니, 나이를 세는 단위인 ‘살’이 ‘설’로 인식된 뜻이 포함됐다는 것이다.

한글학자 육당 최남선은 ‘설’은 나이 한 살을 더 먹게 돼 ‘섧다’는 뜻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의미로 보면 그동안의 낡은 것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마음을 서로 나누는 날이 ‘설’이다.

거기엔  좋은 일, 고달픈 일 함께 이야기 하며 ‘세월의 매듭’을 지어야 함은 물론이다.

오늘은 이런 명절 전야 ‘섣달 그믐날’이다.

동요 때문에 우리에게 더욱 친숙한 ‘까치설’이기도 하다.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라는 동요 가사처럼 까치설은 아직 오지 않은 설날을 미리 맞이하게 함으로써 우리들의 마음을 기쁨으로 들뜨게 하는 날이다.

하지만 코로나 환란 탓에 고향을 비롯 많은 가정이 썰렁하다.

서글픈 일이다.  그리고 잠을 뒤척이는 부모나, 고향을 찾지 못해 잠을 못 이루는 자식들이나  섣달 그믐날 밤 모두가 불행이다.

김남조 시인의 ‘설날 아침에’라는 시가 있다.

“닭이 울고 날이 새고/설날 아침이다/새해 새아침 아침이라 그런지/까치도 한두 마리 잊지 않고 찾아와/대추나무 위에서 운다. 까치야 까치야 뭣 하러 왔냐/때때옷도 색동저고리도 없는 이 마을에/이제 우리집에는 너를 반겨줄 고사리 손도 없고/너를 맞아 재롱 피울 강아지도 없단다/좋은 소식 가지고 왔거들랑 까치야….”

올해도 어김없이 설 명절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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