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국의 칼잽이(15)] ‘장님 코끼리 만지는 일’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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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국의 칼잽이(15)] ‘장님 코끼리 만지는 일’과 ‘진실’
  • 최형국 박사
  • 승인 2022.06.15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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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국 역사학 박사 / 수원시립공연단 무예24기 시범단 상임연출
『중용』 23장, 其次致曲章(기차치곡장). 작은 것이라도 정성을 기울여야 세상이 변화한다.
『중용』 23장, 其次致曲章(기차치곡장). 작은 것이라도 정성을 기울여야 세상이 변화한다.

세상사는 늘 복잡하다. 이렇게 얽히고, 저렇게 설켜있어 제대로 파악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큰 틀은 이해하기 어렵고, 세부는 자세히 보기가 쉽지 않다. 어찌 보면 큰 틀은 외형적인 모습이나 결과가 될 수 있고, 세부는 본질 혹은 원인으로 볼 수 도 있다. 전체적인 윤곽을 살피며 하나하나 세부적인 내용을 짚어야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장님이 코끼리 만지기’라는 옛이야기가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몇 명의 앞을 못 보는 장님이 코끼리를 보러 갔다. 아니 만지러 갔다. 코끼리는 엄청 큰 동물이다. A라는 장님은 코끼리의 다리만 만지고, B는 몸통만을 만졌다. C는 코끼리의 귀를 만졌고, D는 긴 코만을 만졌다.

이후 코끼리가 어떻게 생긴 동물인가를 함께 모여 의논했다. A는 코끼리가 두터운 기둥처럼 단단하게 생겼다고 말했다. B는 벽처럼 넓고 단단하다고 말했다. C는 넓지만 조금은 부드럽게 움직인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D는 그렇게 두텁지 않고 나름 부드럽게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저마다 자신의 주장이 옳다며 큰 소리를 내며 다퉜다. 3박 4일의 토론 시간이 지나도록 그들의 의견은 좁힐 수가 없었다. 그렇게 헤어진 A·B·C·D는 코끼리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평생을 자신만의 코끼리를 마음속에 그리며 살았다. 저마다 ‘일부’를 ‘전부’로 생각하며 살아갔다고 한다.

그들 한명 한명의 이야기는 모두 맞다. 진정으로 자신의 손끝으로 만졌던 코끼리의 모습은 ‘사실’ 즉, ‘팩트(Fact)’였다. 그 사실은 자신이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모두의 이야기는 각각의 ‘사실’이지만, 전체적인 ‘진실’일 수는 없다. 그렇게 사실과 진실은 다를 수도 있다. 사실과 진실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에 그들은 모두 전체적인 진실에 다가갈 수 없었다. 그렇게 그들의 ‘코끼리’는 사지가 분할되어 대대손손 후세에게 각각의 코끼리가 되어 이어져 갔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이에게는 그 어떤 철학, 어떤 사상도 장님이 만졌던 코끼리의 일부에 불과하다. 오직 내가 직접 경험하고, 내가 내 손으로 만지고, 내가 내 두 눈으로 확인했으니 그것이 진정한 ‘사실’이라고 정리해버린다. 그리고 그에게는 그것이 ‘사실’을 넘어 모든 것의 실체적 ‘진실’이라는 ‘신념’으로 발전한다. 그렇게 되면 다른 의견들은 자신의 ‘숭고한 신념’에 반하는 절대적 죄악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 마음을 닫아 버린다.

우리 모두는 코끼리를 만지는 장님이다. 단지 일부분으로 전체를 이해한 것처럼 속단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전체 속에서 세세한 것을 읽어내고, 세세한 것을 통해서 전체를 살펴봐야 하는데 참 쉽지 않은 일이다.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할 당시 고증을 담당했던 청장관 이덕무(李德懋)는 무예 속에서도 전체를 살피며, 세부를 정밀하게 찾아야 함을 강조했다. 그것을 사람을 치료하는 의술에 비유하여 이렇게 설명했다. 

“성상(정조)께서는 겸양지덕이 있어서 일찍이 『병학통(兵學通)』에서 진법을 움직이는 것을 논하였고, 『무예도보통지』에서는 실제로 가격하는 기술인 기격(技擊)을 핵심으로 삼으셨습니다. 무릇 통한다는 것은 명백하고 해박하다는 것입니다. 그 원리와 응용이 서로 쓰여지고, 본말(本末)이 상응하고 서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병법을 논하는 자가 이 두 가지 병서를 놓아두고 다른 무엇을 이용할 수 있겠습니까? 의학에 비유한다면, 운기(運氣)를 검증하는 경맥(經脈)을 진찰하는 것은 진법이요, 초목(草木)과 금석(金石)은 무기이며, 삶고, 굽고, 썰고, 가는 것은 치고 찌르는 것입니다. 만약 의사(醫師)가 ‘운기를 살피는 경맥을 진찰하는 큰 것만 알면 되는 것이지, 어찌 구구절절하게 약의 재료까지 보좌하는 사람을 둘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다면 그는 용렬한 의사에 불과하옵니다.”

 『병학통(兵學通)』은 군사들의 통일된 단체 진법훈련을 위하여 정조 9년(1785)에 완성한 진법서이고, 『무예도보통지』 정조 14년(1790)에 군사 개개인들의 무예 훈련의 통일화를 위해 만든 무예서다. 이 두 가지 병법서는 전체적인 진법의 움직임 속에서 개개인의 작은 몸 쓰임을 찾고, 군사 개개인의 세세한 몸 쓰임법을 통해 전체의 진법 움직임을 효율화시킬 수 있도록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이를 사람을 치료하는 의술에 비유하며 보다 쉽게 설명한 것이다. 사람의 전체적인 신체상태를 점검하는 진찰이 진법(陣法)이다. 혈관을 따라 전신에 퍼져 신체가 유기적으로 잘 소통되는지 경맥을 살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몸에 문제가 생겼다고 할 경우 약을 처방하는데, 그 약의 재료로 사용되는 풀이나 나무 그리고 금석들이 무기인 것이다. 실제로 군사들은 진법 속에서 맨 몸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창검을 비롯한 무기를 들고 전투를 진행한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비유는 약효를 증대시키기 위하여 그 다양한 약재를 삶고, 굽고, 썰고, 갈아 내는 다양한 방법이 무예의 수련법이라는 것이다. 칼을 잘 베어야 하고, 창은 잘 찔러야 하고, 편곤은 잘 때려야 그 힘을 효과적으로 발현시킬 수 있다. 약재를 다루듯 무기를 활용한 다양한 수련법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醫師)가 그저 전체적인 사람의 신체상태만 점검하고 약의 재료를 다루는 일을 보좌하는 사람에게 맡기면 그것이 용렬한 의사라고 한 것이다. 병자를 살핀 후에는 그 병을 치료하는 약재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약으로 처방하는 것이 좋은 의사다. 

군영에서 의사는 장수(長帥)다. 거대한 진법을 전술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군사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의 특성과 그 무기를 활용한 무예의 속성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전술을 펼칠 수 있다. 만약 진법의 움직임만 겉으로 보고, 그 속의 군사들의 무기나 무예를 신경 쓰지 않는다면 용열한 장수가 되는 법이다. 그렇게 전쟁에 나가면 백전백패(百戰百敗)가 된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하는데, 적도 잘 모르고 나조차도 잘 모르는데 무슨 전투를 제대로 치를 수 있겠는가.

정조가 가장 즐겨보던 경서가 『중용(中庸)』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지키며 정국을 운영하겠다는 의지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 중 이런 내용이 있다.

“其次 致曲 曲能有誠 誠則形 形則著 著則明 明則動 動則變 變則化 唯天下至誠 爲能化” 
(기차 치곡 곡능유성 성즉형 형즉저 저즉명 명즉동 동즉변 변즉화 유천하지성 위능화)
                                               <『중용』 23장, 其次致曲章(기차치곡장)>

 간략히 해석해보면 이렇다. 다음으로 힘써야 할 것은 치곡(致曲:사소한 일에도 극진히 함을 말함)의 문제이다. 그것은 소소(小小)한 사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지극하게 정성을 다한다는 것이다. 그리하면 소소한 사물마다 모두 성(誠)이 있게 된다. 성(誠)이 있게 되면 그 사물의 내면의 바른 이치가 구체적으로 형상화된다. 형상화되면 그것은 외부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드러나게 되면 밝아진다. 밝아지면 움직인다. 움직이면 변(變)한다. 변하면 화(化)한다. 오직 천하의 지성(至聖)이래야 능히 화(化)할 수 있다. 이 정도로 해석이 되는데, 아주 단순하게 설명하면 ‘작은 일에도 모든 정성을 기울여야 누군가를 감동시킬 수 있고, 그런 작은 정성들이 모여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지성이면 감천이다’라는 말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작은 정성을 모으고, 작은 것부터 살펴 전체를 읽어 나간다면 언젠가는 하늘도 그 뜻을 이해할 날이 올 것이다. 그렇게 살다보면, 무덤으로 들어간다 해도 부끄러움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