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제갈량' 양성지(梁誠之.1415-1482)는 조선 초기의 명신이자 학자다. 

세종때 벼슬에 나아가 문종.단종.세조.예종.성종 대에 이르기까지 조정에 있었던 기간만 무려 40년이다.

이 사이 벼슬은 홍문관 대제학과 이조판서에서 그쳤지만 그의 식견과 경륜, 혜안(慧眼)만큼은 조선의 영의정을 다 합쳐놓아도 못당할 정도다.  

정치면 정치, 군사면 군사, 어느 것 하나 막힘이 없고 거침이 없었다. 심지어 음악까지도 중국과 차별화된 우리 소리의 보전을 외쳤으니, 벌써 그때 한류를 예견한 듯하다. 그리고 그 속엔 군데군데 자주독립적 기상과 함께 부강한 백성과 나라를 지향하는 원대한 꿈이 담겨 있었다.

얼마나 대단했으면, 세조가 그를 가리켜 "눌재(訥齋.양성지의 호)는 해동의 제갈량(諸葛亮)"이라고 했을까.

 

그의 천재적 재능을 엿볼 수 있는 상소 형식의 기록들은 아직도 꽤 남아 있다.

그중 몇 가지 눈에 띄는 주장들은 이런 것들이다.

△(중국 고대의 요임금.순임금을 이상적 군주로 떠받들던 시대에)단군(檀君)을 국조(國祖)로 받들어야 한다.

△우리 영토는 요동(遼東)을 포함해 '만리나 되는 나라(萬里之國)'다.

△(중국역사서만을 일반교과서로 배우고 중국풍속이 유행하던 때에) 우리 동국사(東國史)를 배워야 하며 우리의 고유 풍속을 존중, 보존해야 한다.

△홍문관을 설치하고 서고(書庫)를 세워 조정은 물론 일반 선비들이 지은 서적까지 모두 보존해야 한다.

△문묘(文廟)만 둘 게 아니라 무묘(武廟)도 세워 역대 명장들을 받들고 무풍(武風)을 장려해야 한다.

△각 도. 군.현에 의료기관을 둬 백성들의 질병을 치료해야 한다.

△백정도 양민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이만하면 주자학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있던 당시 조선사회에서 가히 혁명적 발상에 불을 지핀 셈이다.

이처럼 기발하고 훌륭했으니, 3백년 가까이 지난 뒤에 눈밝은 군주였던 정조가 그의 글을 보고 깊이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정조는 그의 말대로 규장각을 세워 가능한 한 나라안에서 발간된 모든 서적들을 구해 소중히 보관했다.

오늘날 조선왕조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기록을 보유한 왕조로 우뚝히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일련의 노력에 힘입은 바 크다. 

또 어명으로 눌재의 문집을 조정에서 간행하고 그 후손들을 우대하는 등 극진한 예우를 잊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조선 실학은 눌재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정조는 바로 이 점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눌재의 이같은 주장과 제안 가운데 특히 두 가지가 좌.우 대립과 국론 분열속에 난마처럼 얽혀 있는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즉 '군주의 도리를 논함(論君道)'과 '변방 방비를 위한 열가지 책략(備邊十策)'에 나오는 군사력 균형을 통한 평화 유지가 그것이다.

눌재의 담론을 따라가 보자.

군주가  늘 마음을 둬야 할 세 가지 요체는 인(仁), 명(明), 강(剛)이다. 인은 이 백성을 사랑하고 의식주를 편안하게 하는 것이요(愛養斯民), 명은 선과 악을 분별하는 것이다(分別善惡).

강은 소인배들을 배척하고 멀리하는 것이다(斥遠小人).

또 군주가 나라를 다스림에 해야 할 세 가지 요체는 적임자에게 맡기며(任人), 간언을 따르고(從諫), 상벌을 분명히하는 것(賞罰)이라고 했다.

군사력 균형을 통한 평화론은 더욱 명쾌하다.

요지는 이렇다.

"만일 적이 침략해오면 '공손한 언사와 후한 선물(卑辭厚幣)'로 한때의 환란을 면할 수 있다고 하는데, 고려때 원나라의 경우에서 보듯 안될 말이다. 우리의 군사력이 대등함을 상대방이 안 뒤에야 감히 군사를 가볍게 움직이지 못하며 그래서 나라를 지킬 수 있다. 이는 고려가 요나라와 금나라에 대처한데서도 잘 드러난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을 눈으로 직접 보기라도 한 듯 이렇게 명쾌한 해답을 내릴 수 있을까.

눌재의 군도(君道)에서 보면 지금 우리 대통령은 어느 지점에 서 있을까.

우리가 당면한 난제들은 인공지능(AI )에게 모든 관련 데이터를 제공하고 처방을 내리도록 해도 속시원한 해답을 듣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와 똑같은 DNA를 가졌던  눌재가 지금 다시 살아 돌아온다면, 대한민국의 면모를 확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3백년 앞을 내다봐 정조로부터 죽어서까지 '간곡한 부름'을 받았고, 심지어 5백여 년 뒤 한국의 일도 미리 알아 전국민 의료 시혜를 먼저 주장했으니 충분히 기대해볼 만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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